(40)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들

의(義)와 충(忠)이 부딪친 기록들, 서로 다른 갑오농민항쟁

동학사-전투에 참가한 오지영이 저술한 책으로 사료가치 커

순무선봉진등록, 양호우선봉일기 등 관군측 토벌기록 많아

오하기문, 일사, 금소정의록 등 유생들 기록은 농민에 비판적
 

매천(梅泉) 황현(黃玹) 선생
전남 광양 출생으로 구례에서 성장했다.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낙향하여 제자를 양성하며 지내다가 1910년 강제한일합병체결을 통탄하며 음독 자살했다

■오하기문(梧下記聞))

<오하기문>은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이 1864년부터 1907년까지 조선말기의 역사를 월일별로 기록해 놓은 책이다. 오하기문은 모두 7필로 구성돼 있다.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부분은 1필에서 3필까지이다.

황현 선생은 구례에 은거하던 1894년 당시 동학농민혁명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동학농민군을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러나 무능한 조정과 부패한 관리 때문에 ‘동학난’이 발생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동학농민전쟁과 관련해 가장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일사(日史)

전남 강진 작천 유생 강재(剛齋) 박기현(朴冀鉉)이 남긴 일기이다. <日史>는 박기현 선생이 28살 때인 1891년 7월부터 40세인 1903년까지 13년 동안 쓴 일기다. 갑오년을 전후한 장흥·강진 일대의 동학농민군과 관군 측의 동향 및 당시 전투상황 등이 소상히 실려 있다.

박기현 선생은 매우 보수적인 시각에서 1894년에 강진·장흥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농민군의 움직임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선생은 강진 병영에서 살고 있었기에 병영과 장흥 일대의 상황에 대한 그의 기록은 매우 사실적이다.

■<박후의적(朴侯義蹟)>

장흥 안양면 여암리(餘巖里) 출신의 유생 백영직(白永直: 1841~1912)선생은 육유재유고(六有齋遺稿)라는 8권 3책의 문집을 남겼다. 4권4저(卷四 雜著)에 <박후의적>이라는 글이 실려 있다.

<박후의적>에는 갑오년 당시 장흥지방에서 벌어진 동학농민군과 수성군간의 전투에 관련된 여러 사실들이 기록돼 있다. 장흥부사 박헌양의 행적에 관한 글이 많다. 저자의 증손인 백일선(白日善)씨가 소장하고 있다.

■취어<聚語>

이 책은 1893년 충청도 보은관아가 1893년 보은집회에서 오간 동학도들의 논의사항과 결정내용 등을 수록한 것이다. 필사본 1책으로 되어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발발과 전개상황 등이 기록돼 있다.

주요 내용은 보은집회 시 동학의 보은관아통고와 창의의 목적을 밝힌 동학 교단의 방문(榜文), 양호순무사 어윤중(魚允中)의 효유문, 국왕의 칙유문 등이다. 보은집회의 전개상황 및 정부의 대책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규장각에 소장돼 있다.
 

매천야록
황현 선생이 1864부터 1910년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6권 7책.

■양호초토등록(兩湖招討謄錄)

양호초토사 홍계훈(洪啓薰: ?~1895)이 장위영군과 강화영군 등 경군을 인솔하고 서울을 출발한 4월 초 3일부터 전주성을 되찾은 5월 16일까지 양호초토사가 수행한 일을 일기체로 수록한 자료이다.

대부분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해 남하했을 때의 초토활동 기록이다. 양호초토사의 변명이 많으나 제1차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진압군의 초토 활동에 대한 풍부한 내용이 실려 있어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규장각에 소장돼 있다.

■동학사(東學史)

이 책은 오지영(吳知泳)이 쓴 것으로 동학의 발생과 1930년대 천도교 혁신 운동까지 수록하고 있는 동학 또는 천도교의 역사책이다. 4책으로 돼 있다. 저자가 직접 농민전쟁에 참여해 겪은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1894년 당시 농민전쟁의 이념과 목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자신의 경험담과 사실을 이 책에 기록하고 있다. 갑오농민전쟁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서술이 담겨져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금성정의록(錦城正義錄)

전라도 나주의 유생 이병화(李炳壽: 1855~1941)가 나주와 장흥일대의 동학농민혁명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갑,을, 병(甲, 乙, 丙) 3편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의 시문집 <겸산유고(謙山遺稿)>에 수록돼 있다.

고부봉기와 나주의 수성 사실, 나주접주 오권선(吳權善)과 농민군지도자 최경선(崔慶善) 등의 활동상, 전봉준의 나주목사 설득 사실, 2차 봉기 후 농민군의 나주공격, 남평 장흥 영암 등지의 농민군 활동상이 기록돼 있다. 원본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오남집(五南集)

<오남집>은 장흥 흥룡동(현 부산면 내안리 내동)출신으로 갑오년 12월 7일 강진 보암면 도통장으로서 강진현을 사수하다 동학농민군에 의해 희생당한 김한섭(金漢燮: 1838~1894)의 문집이다. 13권 7책이다.

김한섭이 장흥 묵촌 출신의 동학접주 이방언에게 동학과 인연을 끊을 것을 권유하는 글인 ‘경시적도문’(警示賊徒文)이 담겨져 있다. 김한섭과 이방언은 동문 수학한 관계다. 원본은 장흥 부산면 김태경(金太璟)옹의 집에 보관돼 있다.
 

강재일사
강진의 유생 강재(剛齋) 박기현(朴冀鉉)이 남긴 일기이다. <日史>에는 갑오년을 전후한 장흥·강진 일대의 동학농민군과 관군 측의 동향이 자세히 담겨 있다. 상권에는 1891년부터 1896년까지의 일기가, 하권에는 1897년부터 1903년까지의 일기가 수록돼 있다.

■영회당사집(永懷堂史輯)

장녕성 싸움에서 희생당한 장흥부사 박헌양과 수성군 95인을 추모하기 위해 1898년 건립한 영회당의 관련 자료를 모은 책. 우선봉 이두황(李斗璜)이 박헌양의 공적을 알리는 장계(狀啓)가 수록돼 있다.

건립자금 염출의 방법을 적은 영회계안, 기우만이 박헌양과 순절인에 관한 비문, 영회당을 기리는 시서와 관련 문건, 이건할 때의 영회당이건상량문, 영회당중건기, 영회제참기 등과 순절인 96인의 명단이 기재돼 있다.

■영회단(永懷壇)

장흥·강진일대 농민군 활동을 개괄하여 쓴 문건이다. 갑오년 7월 이후 이방언의 활동과 장흥부사 박헌양이 이방언의 귀화를 권고한 사실, 이방언이 거짓 귀화했다가 재봉기한 과정, 농민군 지도자 구교철, 이사경, 이인환의 활동, 보성 농민군과 금구 김방서의 합류사실과 장흥 강진전투 전개과정등이 적혀 있다. 끝에는 박헌양 등의 죽음과 장례관련 내용이 기재돼 있다. 필자는 미상(未詳)이나 현재 보성군 회천면 회녕리에 거주하는 문재국(文在國)씨가 소장하고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
전북 순창 피노리에서 체포돼 한양으로 압송되고 있는 전봉준 장군.

■순무선봉진등록(巡撫先鋒陳謄錄)

이규태(李圭泰)가 거느린 군대가 갑오동학농민전쟁의 진압·토벌과정에서 주고받은 공문들을 수록한 책이다. 기간은 1894년 10월 11일에서 1895년 2월 5일까지이다. 공주전투 이후 전라도 지방에서의 농민군 소탕 상황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공문에는 각 부대의 군수보급 상황, 각지 수령이 거느리는 포군과 선봉진과의 합동활동상황, 각지에서의 일본군에의 군량진배 상황, 농민군을 토벌하기 위한 유회(儒會)와 민회소(民會所) 등 민간인의 동향이 적혀 있다. 고려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양호우선봉일기(兩湖右先鋒日記)

순무영 예하 선봉장(1894년 11월 26일부터는 양호우선봉장) 이두황(李斗璜)의 진중일기이다. 1894년 9월 10일부터 1895년 2월 18일까지의 일기체 기록이다. 이두황은 경기·충청도 일대의 농민군을 토벌했으며 공주전투에도 참여했다.

일본군 사령관 남소사랑(南小四郞)의 지휘 하에 전라좌도 남원 방면으로 진출해 순천·광양 등지에서 농민군 토벌에 나섰다. 1894년 12월 20일부터 1895년 1월 8일까지 장흥에 주둔하면서 농민군을 토벌했기에 장흥 관련 내용이 많다.

■선봉진일기(先鋒陣日記)

순무선봉장 이규태(李圭泰)의 진중일기이다. 1894년 9월 21일부터 12월 12일까지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 일기체로 기술해 사건 일시가 정확하며 다른 기록보다 내용이 풍부하다.

동학농민군의 2차기포시 각처에서 벌어진 정부군과 농민군과의 전투 상황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정부군의 진압 대책과 더불어 농민군의 동향을 알 수 있는 기본 자료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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