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전남미래, 섬과 바다
남도일보 정용식 상무의 남도 섬 이야기-흑산도<上>흑산도 아가씨와 귀양객 37명의 恨…아름다운 다도해

남도일보 정용식 상무의 남도 섬 이야기-흑산도<上>
흑산도 아가씨와 귀양객 37명의 恨…아름다운 다도해
 

흑산도45
흑산도 전경
홍도에서 뱃길 따라 30여분 달리면 역동적인 섬 흑산도에 이른다. 멀리서보면 산과 바다가 모두 검푸르게 보인다 해서 흑산(黑山)도라 했단다. 동백꽃마저 검푸르고 처녀가슴도 그리움에 지쳐 검게 타버린 곳 흑산도.
흑산도 밤바다를 배경삼아 섬 여행이 주는 ‘느림과 기다림’ , ‘여유와 관대함’을 느껴보자. /위직량 기자 jrwie@hanmail.net

#흑산도엔 아가씨가 없다

홍도에서 뱃길 따라 30여분 달리니 역동적인 섬 흑산도, 홍어간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멀리서보면 산과 바다가 모두 검푸르게 보인다 해서 흑산(黑山)도라 했던가? 동백꽃마저 검푸르고, 처녀가슴도 그리움에 지쳐 검게 타버린 곳, ‘흑산도’ 1호 일주버스에 몸을 실었다. 배시간 연착으로 예정시간보다 늦게 도착하다보니 1시간반 동안 흑산도 둘레 일주관광을 해야하니 버스기사님이 바쁘다. 특별히 최고의 일몰을 시간 안에 도착해서 보여줘야한다는 의무감에 ‘지석묘’, 지극한 남녀사랑의 ‘연리지 나무’등을 스치듯 지나간다. 열두구비 구불길을 달려 올라가니 해상왕 장보고가 해적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했다는 ‘상라산성’이 우뚝 나타나고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다. ‘트로트의 여왕’ 이미자의 어린시절 애절한 목소리에 실려 노랫말이 스피커를 통해 반복하여 울려 퍼지고 있다.

29일자 흑산도 절경
흑산도 절경

“한없이 외로운 달빛을 안고/ 흘러온 나그넨가 귀양살인가 / 애타도록 보고픈 머나먼 그 서울을/ 그리다가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 흑산도 아가씨 ”

상라봉 전망대에서 두루두루 살펴보니 통일신라시대부터 해상교류의 요충이였음을 느끼게하는 흑산항의 아름다운 자태와 다도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육지로 나가고자하는 섬아가씨들의 한(恨)과 흑산도로 유배온 37명의 귀양객들이 한양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며 지었을 한숨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여기서 10㎞쯤 가면 ‘유배 문화공원’이 있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멀리 방파제 입구에는 섬을 지켜온 아낙네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기 위해 흑산도 아가씨 조형물이 등대를 바라보며 세워져 있다. 홍어보다 더 유명세를 탄 흑산도 아가씨, 노래는 무한 반복 재생되고 있지만 정작 흑산도엔 아가씨들이 보이지 않는다.

#천도천색 천리길! 신안섬 종주길

전망대에서 5분만 올라가면 상라산 정상에서 흑산도의 색다른 느낌을 감상해 볼 수 있으련만, 쫓기는 시간에 ‘천도 천색 천리길’ 인증 표지판를 보며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천개의 섬에서 천가지 색다른 자연환경을 버라볼 수 있는 천리길’의 의미일까? 압해도에서 시작하는 500㎞에 달하는 신안섬 자전거 종주길의 흑산도 일주구간 25.4㎞를 의미하고 있다. 신안섬 종주길 여행,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주버스 기사는 달리는 내내 녹음기를 틀어놓은 마냥 흑산도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구비구비 굽은 길을 달리는 승객들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70대 촌부의 똑같은 톤의 섬 말투는 뒷좌석에 앉은 나로서는 도저히 해독할 수가 없어 아쉽기만하다.

일주버스에 가이드를 태워 관광객들과 소통하면 좋으련만…. 잠깐 잠깐 정차하여 흑산도의 속살을 비춰봤으면 더 좋겠는데 내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속절없이 내달리고 버스기사는 쉼 없이 혼자 말투로 설명만 한다.

멀리 바다위 한반도 지도 바위가 보인다. 영락없이 대동여지도다. 중국의 황산 여행길에서나 봤음직한 해안 절벽 수직바위에 교각 없이 만든 하늘다리를 지나간다. 여행 가이드를 겸한 기사님은 의자손잡이를 꼭 잡으라 겁박(?)한다. 깎아지른 한쪽 벽면에는 흑산도의 역사를 그린 480m의 거대한 벽화라는데 버스는 그냥 휑하니 지나간다.

급하게 달린 버스는 최고의 일몰장소에 도착했으나 이미 해는 넘어가고 주변만 붉게 물들어 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먼 섬이 아마도 ‘홍도’겠지 하며 멋진 바닷노을에 아쉬움만 띄워놓고 또다시 얼마를 내달렸다.
 

29일자 자산어보공원마을
자산어보공원마을

#흑산도는 유배지다

한참을 돌고 돌아 정약전(1760~1816)선생이 15년간 유배 생활했던 사리마을에 내렸다. 유배체험(?)하는 유배공원이다. 자산어보를 집필한 곳이라는 사촌서당과 생활했던 초가집을 복원했는데 웬지 억지(?)스럽고 낯설다. 아담하고 이쁜 성당은 천주교도로서 신유박해(1801년)로 유배된 정약전과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물고기 솟대, 흑산도 역대 유배인물비와 도표 등이 눈에들어온다. 조카사위 황사영과 셋째 형제 정약종은 처형되고 둘째 정약전은 흑산도로, 넷째 정약용은 강진으로 낙심천만의 유배를 갔다. 기구한 가족사, 절해고도(絶海孤島)! 김훈의 장편소설 ‘흑산(黑山)’은 먼바다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는 정약전의 뱃길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서 물고기를 들여다보다가 죽은 유자(儒者)의 삶과 꿈, 희망과 좌절을 생각했다” 는 김훈의 말처럼 “정약전은 유배지 흑산에서 눈앞의 물고기를 바라보며 실증적인 어류 생태학 서적 ‘자산어보’를 썼다. 한때 세상 너머를 엿보았으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배반의 삶을 살았다” (‘흑산’ 서평에서)라고 했다.
 

29일자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흑산도아가씨 노래비

흑산도 유배인 도표에는 1693년 나인이었던 정숙이 해괴한 짓을 했다는 이유부터 1898년 김홍록 뇌물수수까지 37명의 유배인과 유배이유가 기록되고 개인별로 행적비가 세워져 있다. 당론,간언,역옥,상소,어의 도둑질에 이르기까지 유배이유도 다양하다. 좌의정부터 판서, 군수 나인, 스님까지, 조선말기 유학자이자 애국지사 최익현(1833~1906년)선생도 일본과의 통상조약에 반대하다 흑산도에서 잠시 유배생활을 했다. 그 머나먼 바닷길. 험한 뱃길에 흑산도에 도착도 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유배객들은 없었을까하는 괜한 걱정도 해본다.

29일자 흑산도 성당
흑산도 성당

#느림과 기다림의 섬여행

움푹 들어간 바닷가에 위치한 리조트 20여개동의 주황색 지붕이 편안하다. 리조트 개장했을 때 올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미 주인이 바뀌어 아쉽다. 교통편이 불편해서 였을까? 편안한 휴식이 필요한 가족 관광객들이 많아지면 이곳도 잘 될 것 같은데.
 

29일자 흑산도 등대
흑산도 등대

대형버스 운전 시험코스로 최적인 굽이굽이길 일주도로 여행길은 완전히 어둑해서야 원점으로 돌아왔다. 십수년전엔 허름하고 불편했던 기억의 숙소가 리모델링하여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그날 저녁처럼 오늘도 싱싱한 홍어정식의 상차림을 받았으나 예전의 맛은 느낄 수 없다. 요리사가 부모에서 자식으로 바뀌어서일까? 아님, 내 입맛이 변했을까? 화려한 야경은 없지만 작업하는 밤배의 밝은 조명등의 멋스럼속, 40여년된 홍탁집, 폐차된 버스안의 포차 등에서 주말이건만 고즈넉하기까지 한 흑산도의 밤바다를 배경삼아 섬여행이 주는 ‘느림과 기다림’ , 그리고 ‘여유와 관대함’을 밤의 문화를 통해서 나마 느껴본다.
 

29일자 흑산도 밤바다
흑산도 밤바다

새벽시간까지 어묵국과 국수에 막걸리, 소주지만 웃고 떠들며 하루의 피로를 씻어냈다. 밤새 불 밝히며 수산냉동창고 앞에서 작업하는 고깃배의 어부들도 그렇게 흑산도의 밤을 함께 보냈다.사진/ 김미정 사진작가 제공
 

29일자 흑산도 유람선
흑산도 유람선
29일자 흑산도 초가집
흑산도
29일자 선창포차
선창포차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용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