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남(주필)

 

오치남 남도일보 주필

민선 8기 출범 한 달을 맞는 광주·전남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 목민관( 牧民官) 29명의 ‘희망 고문’(希望拷問·거짓된 희망으로 오히려 괴로움을 주는 행위)이 이어지고 있다. 너무 의욕이 넘친 나머지 마치 광주·전남이 천지개벽(天地開闢)할 것처럼 들떠 있다. 지역 발전 청사진을 내놓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비어 있는 지방 곳간은 안중에도 없다. 장사(사업) 종잣돈을 좀 달라고 애걸복걸할 사람도 찾지 못한 채 텅 빈 곳간이 곧 채워져 벼락부자가 될 환상에 빠져 있다. 요즘 하루 세끼 먹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묻지 말라. 아파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도 묻지 말라. 광주지역에서 결식 우려 아동만 8천여 명에 이른다. 뜨거운 선풍기 바람이나 부채에 의지한 채 폭염에 시달리는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도 10만 명에 가깝다. 우리가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 못하는 사이에 이들의 삶은 더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광주·전남은 나라 곳간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더욱더 안타깝다. 그래서 첫 광주시 목민관에 오른 강기정 시장과 두 번째 전남도 목민관에 성공한 김영록 지사가 가장 절실하다. 두 목민관은 지난 18일 광주시청에서 나라 곳간의 제1 감독자(심의·확정)인 국민의힘 지도부와 예산정책협의회를 가졌다.

이날 강 목민관은 ▲국가지원형 복합쇼핑몰 유치 ▲인공지능 2.0+반도체 특화단지 조성 추진 ▲상생형지역일자리 수요맞춤형 지원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완성 ▲광주 군공항 이전 국가사업화 ▲영산강·황룡강변 Y벨트 익사이팅 사업 등의 지원을 요청했다. 김 목민관도 ▲광주·전남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 ▲전남에 국립 의과대학 설립 ▲해상풍력 인·허가 통합기구 설립 특별법 제정 ▲전라선(익산∼여수) 고속철도 예타 면제 ▲광주~영암 초고속도로 국가계획 수정 반영 ▲지방소멸대응기금 확대 등의 지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명쾌한 답변을 하지 않아 두 목민관에겐 별 소득 없는 모임이란 평가를 받았다. 특히 강 목민관은 복합쇼핑몰 사업비 9천억 원(디지털 기반 광역통합유통센터 3천억, 트램·도로 등 연결망 구축 6천억 원) 지원을 건의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핀잔을 받았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복합쇼핑몰 지원안은) 이날 현장에서 처음 봤다”며 “규모도 굉장히 크고 쇼핑몰을 국가지원으로 만드는 것이 다른 지역과 형평성에 맞는 것인지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민간주도형 복합쇼핑몰’ 건립에 무게를 둔 발언이다. 오히려 신중한 검토와 고민 없이 트램과 복합쇼핑몰을 연결해 논란만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시민회의도 지난 19일 “‘국가지원형 복합쇼핑몰’유치를 위한 9천억 원의 국비 지원 요구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광주 복합쇼핑몰은 이미 대기업이 앞다퉈 진출을 선언하고 있어 시는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대기업과의 협의를 통해 실효성 있는 소상공인 지원방안을 마련하면 되는 단계”라며 “뜬금없이 트램 설치를 복합쇼핑몰과 억지로 연결해 국비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기에다 힘을 모아야 할 광주·전남 지역구 국회의원 나리들도 눈총을 받고 있다. 21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이 완료된 가운데 상임위원회 배정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때문이다. 광주는 상임위에 비교적 고루 배치된 반면 전남은 특정 상임위 쏠림 현상을 보였다. 상임위원장은 아예 없어 정치력 부재를 드러냈다. 전남 10명의 의원 중 절반이 농도(農道)임을 내세워 농해수위에 배정되면서 나라 곳간에서 지방 곳간을 채우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지 걱정스럽다.

27명의 광주·전남 고을 목민관들도 나라 곳간을 활용하지 못하면 코로나19 장기화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달래줄 수 없다. 나라 곳간 열쇠를 쥐고 있는 나리들을 만날 수조차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는 한 고을 목민관의 하소연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지방 곳간을 보충하기 위해 중앙 부처를 찾아 남도민요를 구성지게 불렀던 민선 1·2기 진도군 목민관처럼 시쳇말로 ‘세일즈맨’과 ‘팔색조(八色鳥)’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백성들은 무지몽매(無知蒙昧·아는 것이 없고 사리에 어두움) 하지 않다. 4년 뒤 한 표만 달라고 다시 머리를 조아려도 쳐다보지 않을 목민관을 이미 가려낼 채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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