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애벌레이고 어디가 줄기인가 ‘위장의 달인’?
애벌레, 얼핏보면 잎없는 줄기
줄기에 딱붙어 날씬한 몸 ‘자랑’
‘개여뀌’ 먹고 9월에 움직임 활발
어른벌레, 날개 끝엔 둥근무늬
외횡선엔 물결무늬가 선명하게
나방 애벌레를 찾아 다니다 보면 참 위장을 잘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애벌레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려 있으므로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도 천적의 입장에서 보려고 무던히도 애써 보지만 정말 어렵다. 교묘히 위장하고 있는 애벌레를 발견하면 속으로 가만히 속삭여본다.
‘넌 이미 죽은 목숨이야. 나에게 발견되었으니 천적의 눈에는 더욱 선명하게 보였을 것이니까’
2013년 6월 30일, 화순 이양면의 어느 임도를 찾았다. 많은 애벌레를 만나길 기대했지만 영 신통치 않다. 애기얼룩나방, 구름무늬들명나방, 검은띠밤나방 애벌레 등이 보인다. 흔하게 보이는 큰자루긴수염나방은 엄청 많다. 그래도 멋진 털보다리유리나방을 선명하게 담은 것은 큰 수확인 것 같다.
일단 숲에 들어오면 나방종류가 아니더라도 무엇인가는 만날 수 있다. 곤충류와 나비들이 제법 보인다. 열심히 두리번 거리다 보니 오이풀 줄기에 뭔가 눈에 들어온다. 얼핏보면 잎이 없는 줄기 같다. 몸은 아주 가늘고 매끈하다. 가슴다리를 완전히 몸에 붙인 채 줄기나 나뭇가지처럼 가만히 있다. 처음엔 정말 줄기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애벌레다. 유충의 머리부분과 배 끝부분은 붉은색이고, 몸은 아주 가늘며 1배마디에 검은 무늬가 있다. 6배마디의 다리와 항문다리는 마치 나무의 겨울눈 같아 보이는게 흥미롭다. 끝무늬애기자나방 애벌레다. 자나방과(Geometridae)에 속하는 나방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끝무늬애기자나방을 비롯해 683종 이상이 알려진 매우 큰 무리다. 어른벌레는 해 질 무렵에 활동하는 종도 있으나 대부분 밤에 활동한다. 등불에 자주 날아오고 대량 발생하는 종이 많다.
2017년 7월 12일, 진도 접도에서 끝무늬애기자나방 애벌레를 다시 만났다. 산딸기 줄기에 나뭇가지처럼 가만히 있어서 처음엔 애벌레가 아닌 줄 알았다. 신경쓰고 보지 않으면 도저히 발견할 수 가 없다. 먹이식물은 개여뀌로 알려져 있는데 오이풀과 산딸기에서 관찰했다. 여러가지 식물을 먹고 사는 녀석인지 햇갈린다.
애벌레의 활동시기도 도감에는 9월로 되어 있지만 6월말과 7월에 관찰되어 발생시기도 꽤 긴 것으로 보인다. 접도에서 본 끝무늬애기자나방 애벌레는 1배마디의 검은 무늬를 선명하게 보여 준다. 이양면의 임도에서 본 애벌레는 배 아랫면만 담아서 아쉬웠는데 등쪽을 담을 수 있어서 비교할수 있으니 좋다.
다 자란 애벌레는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3월 우화한다.
끝무늬애기자나방 어른벌레는 제주도 산방산에서 처음 만났다. 7월 26일, 가족들과 함께 한 여행에서도 나의 관심은 나방이어서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산방산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운좋게 녀석을 만난 것이다. 앞뒤 날개 중횡선은 약간 둥그스름한 편이고, 외횡선은 물결무늬가 선명하다. 날개 끝 가장자리에 둥근 무늬들이 있다. 내횡선 안쪽에는 검은 점무늬가 하나 있다.
2019년 4월 20일, 함양 마천의 벽송사에서 끝무늬애기자나방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제주도 산방산에서 봤던 녀석보다 색상은 조금 연하지만 날개를 활짝 펴고 있어 선명한 무늬를 보여준다. 한참을 지나서 만나도 반가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같다. 애벌레의 모습은 특이해서 기억하기 좋은데 어른벌레는 날개 끝의 무늬로 이름을 유추해야 하는지 망설여진다. 먹이식물인 개여뀌 사진을 뒤져봐도 자료가 없다. 이삭여뀌, 가시여뀌 등의 자료는 있으나 이름앞에 ‘개’자가 들어가 있는 개체는 하찮게 여긴 탓인지 무시하고 지나갔나 보다. 나방을 보면서 자연의 모든 구성원 중 하찮은 존재는 없다고 항상 생각해 왔는데 이런 나를 보면서 편협한 내가 참으로 부끄럽다. 앞으로 더욱 겸손해야 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