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남도

기온이 오르며 봄기운이 완연하다.

지난 겨울부터 지속된 가뭄을 조금이나마 해갈하려는 듯 봄비가 내린다. 여기 저기서 새싹 돋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도 한다. 가을의 단풍이 곱게 물든 경치도 좋지만 형형 색색의 연한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한 지금의 숲속 풍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 전국의 어디를 가든 흔하게 볼수 있는 느릅나무과의 팽나무, 풍게나무가 있다. 남쪽의 곡창지대에 팽나무가 많은데, 이는 팽나무의 싹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해 풍·흉년에 대한 점을 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옛날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 팽나무잎, 느티나무잎, 쑥은 허기를 면할 수 있는 중요한 식물이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남겨둔 곡물을 섞어 먹으며 허기를 면했던 것이다. 우리 인간들도 먹으며 고비를 넘겼던 식물들을 애벌레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다. 팽나무와 유사하지만 잎의 거치가 상반부에만 있는 팽나무와 달리 기부를 제외한 전체에 거치가 있는 풍게나무가 있다. 열매도 흑색으로 익고 엽질도 더 얇으며 측맥이 3~4쌍이다.

2020년 4월 15일, 화순 너릿재에서 수레바위산으로 오르는 능선길에서 봄맞이에 분주한 풍게나무를 만났다. 잎이 나오며 동시에 꽃도 피는데 수꽃은 가지의 아래쪽에 달리며 양성화는 가지 위쪽의 잎겨드랑이에 달린다.

잎이 자라면 어떤 녀석들이 찾아 올까?

2021년 8월 10일, 특이한 애벌레들이 제법 많이 관찰되는 담양 금성산성을 찾았다. 아직 애벌레는 만나 보지 못한 검은띠쌍꼬리나방, 어른벌레를 못 본 솔밭가지나방 애벌레를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조금 더 오르다 보니 눈에 익은 풍게나무가 보인다. 이리 저리 살펴보니 멋진 애벌레 한 마리가 있다. 머리에는 검은색 무늬가 있고 몸통은 약간 짙은 녹색이며 배 2, 5째마디 윗면에 검은 점무늬가 선명하게 있다. 보라애기가지나방 애벌레다. 내가 본 녀석은 4령으로 보인다. 종령이 되면 몸은 녹갈색으로 변한다. 종령보다는 4령 애벌레가 더 멋져 보인다.

한창 잎이 무성할 시기인 7월이면 보라애기가지나방 애벌레를 볼 수 있다. 유충길이는 15㎜정도니까 크지는 않다. 광주·전남 지역에는 풍게나무를 심심찮게 볼 수 있어 애벌레를 쉽게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보이질 않았다. 역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돌아 다녀야지 대충 다녀서는 어림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몸집을 불린 보라애기가지나방 애벌레는 낙엽에 대충 실을 붙이고 번데기가 되어 1주일이 지나면 우화한다.

보라애기가지나방은 어떻게 생겼을까?

어른벌레를 만난 것은 상당히 오래전 일이다. 2014년 8월 10일, 함양 오도재에서 보라애기가지나방을 만날 수 있었다. 나방들이 불빛에 날아오는 시간대가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보인다. 초저녁부터 오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밤이 깊어야 보이는 녀석도 있다. 보라애기가지나방은 새벽 2시가 넘어서 만났다. 오도재 주차장에 짐을 풀고 밤새 지리산제일문에 올라 시간대 별로 관찰한다. 보통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관찰했다. 어른벌레 앞뒤 날개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 무늬가 있다. 어디를 봐도 보랏빛은 보이질 않는다. 헌데 이름은 보라애기가지나방이다. 애벌레를 봐도 어른벌레를 봐도 보라색은 없는 것 같은데 국명에 보라가 들어가 있다. 기억하기 상당히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암튼 아직까지 애벌레와 어른벌레를 짝짓지 못한 많은 녀석들을 빨리 찾아야 하는데 그저 마음만 바쁘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