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인데 ‘왜’ 잠자리처럼 투명날개 가졌을까?
왕머루, 나무 타고 10m 이상 자라
노란색 몸통·배 윗면엔 쑥색 줄
짧고 긴 방사형 털 다발로 덮여
5~7월 왕머루·담쟁이 먹고 흙속으로
흑갈색 반타원형 고치 붙여 번데기化

왕머루(2015년 10월 25일, 추월산)

4천여종에 가까운 나방들이 알려져 있지만 투명한 날개를 가진 나방은 흔치않다. 알락나방과 몇 종 그리고 유리나방과의 찔레 유리나방, 털알락나방과 노랑털알락나방의 날개는 투명해 날개맥이 뚜렷하게 보인다. 왜 잠자리처럼 투명한 날개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2019년 7월 28일, 함양 마천 음정마을에서 벽소령으로 오르며 그곳에 사는 나방들을 찾는다. 나방 애벌레나 어른벌레들이 많아 자주 찾는 곳인데 오늘따라 영 신통치 않다. 얼룩갈고리나방과 붉은매미나방이 한가로이 쉬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뭔가 특별한 애벌레를 만나길 기대했지만 자주 보이던 애벌레도 잘 보이질 않으니 좀 힘이 빠진다. 더운 날씨였지만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서늘한 느낌이 든다. 그나마 다행이다. 묵묵히 오르다 보니 참나무갈고리나방 애벌레, 창날개뿔나방 애벌레 그리고 참물결가지나방 애벌레가 보인다. 힘이 난다.
 

포도유리날개알락나방애벌레(2019년 7월 28일, 음정마을)

제법 넓은 임도 양쪽을 왔다 갔다 하며 애벌레가 있을만한 곳을 집중적으로 살핀다. 왕머루가 키큰 나무를 타고 오르며 무성한 잎으로 덮고있다. 잠깐 쉴겸 그늘에 앉아 왕머루잎을 뒤적이다 보니 애벌레 한 마리가 보인다. 노란색 몸통에 쑥색 줄이 배 윗면 양쪽에 2개씩 선명하게 나 있다. 짧고 긴 방사형 털 다발이 있으며, 그 속의 긴 털은 검은색이다. 포도유리날개알락나방 종령 애벌레다. 초령 유충은 미색이며 길고 흰 털이 있는데 아직 보질 못했다. 같은 알락나방과의 실줄알락나방 애벌레도 왕머루와 담쟁이덩굴을 먹고 사는데 남쪽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것 같다. 중부 이북지방에서 관찰되는 것 같아 올해는 집중적으로 찾아 보려 한다. 오래 전 소개한 바 있는 털보꼬리박각시 애벌레도 왕머루를 먹고 산다. 포도과의 왕머루는 전국의 산지에서 볼 수 있는데 낙엽 덩굴성 목본이며 다른 나무를 타고 길이 10m 이상까지 자란다. 잎은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은 심장형으로 가장자리는 흔히 3~5갈래로 갈라지고 치아상의 톱니가 있다. 머루에 비해 잎 뒷면에 거미줄 같은 갈색 털이 거의 없는 점이 다르다. 거기서 거기 같지만 다름을 알아가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5~7월 싱싱한 왕머루 잎을 충분히 먹고 잘 자란 애벌레는 흙 속에 들어가 막으로 된 흑갈색 반타원형 고치를 딱딱한 곳에 붙이고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4월 우화한다. 털보꼬리박각시 애벌레도 그랬지만 포도유리날개알락나방 애벌레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직접 사육하여 우화시킨 허운홍 선생에 의하면 흔히 보이는 종이지만 어른벌레로 우화시키기는 어려웠다 하신다. 고치와 포도유리날개알락나방 사진은 허운홍 선생께서 제공해 주셨다. 날개는 투명하며 시맥은 검은색이고, 앞날개 후연도 역시 검은색이다. 포도과의 왕머루, 담쟁이덩굴을 먹이식물로 하고 유리처럼 투명한 날개를 가져서 포도유리날개알락나방이라 이름붙였나 보다.

투명한 날개를 가진 알락나방과 나방들은 몇 종 더 있다. 찔레나 벚나무 등 장미과 식물을 먹고 사는 장미알락나방, 담쟁이덩굴과 왕머루 등 포도과 식물을 먹는 실줄알락나방이다. 장미알락나방은 여러곳에서 관찰한바 있는데 아직 어른벌레는 만나질 못했다.

꽃샘추위로 아침 기온은 조금 낮지만 파릇파릇 새순이 돋는다. 머잖아 알에서 깨어나는 애벌레도, 두꺼운 낙옆층에서 겨울을 지낸 애벌레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곳 충청도 지역에는 어떤 녀석들이 살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부지런히 발품을 팔다보면 멋진 녀석들을 많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포도유리날개알락나방애벌레(2019년7월 28일, 음정마을)
포도유리날개알락나방(2019년 4월 26일, 시암재)
포도유리날개알락나방 고치(2019년 4월 27일)
포도유리날개알락나방(2019년 4월 26일, 시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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