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동화작가)

 

이성자 동화작가

고향 입구에는 당산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긴 세월 마을에서 일어난 갖가지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이테에 기록하고 있을 것 같은 우람한 당산나무다. 그런데 사람 사는 일이 궁금했을까? 언제부터인가 땅 밑으로 뻗어야할 뿌리 중 몇 가닥이 땅 위로 당당하게 올라오는 게 보였다. 제법 굵게 자란 뿌리는 신기하고 대견하기까지 했다. 비바람에 씻겨 미끈해진 뿌리는 누구라도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 역할까지 톡톡히 해냈다.

당산나무 바로 옆에는 주인이 떠난 허름한 빈집이 있었는데, 몇 년 전 젊은 도시 사람이 그 집을 사들여 창고를 지었다.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 겉으로 드러난 뿌리까지 시멘트로 덕지덕지 발라버렸다. 자기 땅이라서 제 맘대로 했겠지만, 분명 당산나무는 마을의 보호수였다. 그렇다고 젊은 주인과 싸울 수도 없고 이미 굳어버린 시멘트를 파낼 수도 없었다. 노인들만 몇 명 살고 있는 마을이라 누구 하나 나서서 안타까움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다.

한 그루 나무에도 분명 정령이 있을 텐데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도록 시멘트를 발라버렸다며, 창고 주인을 향한 마을 사람들의 원망이 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산나무는 양쪽으로 뻗은 우람한 가지에 수많은 이파리들을 피워내 넉넉한 그늘방석을 만들어주었다. 들판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며 땀을 식히기도 하고, 점심을 먹기도 하고, 더러는 가꾸었던 채소나 과일을 가져와 주고받는 배려의 나눔터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가 먹고 사는 일에 바빠 고향을 잠시 잊고 있는 동안에도, 마을 앞 당산나무는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고, 모진 아픔도 참아내며 우리 대신 꿋꿋하게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버스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쭉 내밀고 행여 고향 떠난 사람들이 돌아오는 지를 날마다 확인했을 것 같다. 당산나무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인 듯 언제라도 우리가 찾아가면 반갑게 맞이해줄 것 같이 넉넉해 보였다. 어디 당산나무뿐이랴. 주변의 크고 작은 나무란 나무들은 어느덧 우리가 알아볼 수 없게 쑥쑥 잘도 자라 숲을 이루고 있었다.

몇 년 전 산소일 때문에 잠시 고향에 들렀을 때였다. 당산나무 한쪽 가지에만 이파리가 너울거리고, 다른 한쪽 가지는 거의 말라 가고 있었다. 걱정이 되어 고향을 지키며 살고 계시는 아저씨에게 당산나무가 죽어가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며 근심 가득한 얼굴을 했다. 오래 전에도 이런 현상이 있었을 때, 마을의 젊은 사람이 사고를 당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순간 창고주인이 떠올라 안부를 물었더니, 하는 사업이 잘 안 되는지 요즈음은 아예 창고를 찾지도 않는다고 하셨다.

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나무시장에서 편백나무 묘목을 몇 그루 사들고 고향을 찾았다. 우리 가족을 환영하듯 당산나무가 긴 가지를 흔들어댔다. 말라가던 한쪽 가지도 어느새 푸르러 있었다. 몸통을 어루만지는 내게 ‘그동안 살아내느라 많이 힘들었지?’라고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은 바로 우리를, 우리 인생을 보람차게 가꾸는 일이라는 걸 당산나무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세상 살기가 힘들고 팍팍하다고 느껴지거든 그동안 우리 대신 고향을 지키고 있는 당산나무를 찾아가서 묻고 들어보면 그 해답이 나올 지도 모를 일이다.

4월에는 우리 모두 좋아하는 나무 몇 그루 사들고 고향에 한 번 다녀오면 어떨까? 준비해간 나무도 정성스레 심고, 작년에 심었던 나무도 잘 자라고 있는지 살펴본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더 나아가 뒷산의 크고 작은 나무마다 칡넝쿨이 휘감고 올라가서 제 세상을 만들고 있다면 조심스레 걷어내 주고, 개미가 구멍을 내서 곧 쓰러질 것 같은 나무 밑에는 다시는 접근 못하도록 개미 약을 뿌려주면 무척 고마워할 것이다. 마을 앞 당산나무는 우리가 다녀간 흔적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이테에 정성껏 새겨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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