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동화작가)

 

이성자 동화작가

오래 전 일이었다. 내가 맡은 1학년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가 앙앙 울어대며 교실로 뛰어 들어왔다. 허리에 메고 있던 책보자기가 풀려 책들이 화장실에 쏟아져버렸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달려가 봤지만 재래식 화장실이라서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교사용 책을 꺼내 보자기에 싸주었지만 자기 것이 아니라며 절대 받지 않았다.

다시 긴 막대기를 들고 화장실로 가서 빙빙 돌리며 꺼내는 시늉을 했으나 책들은 더 깊게 가라앉고 말았다. 지독스런 냄새 때문에 코를 막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아이는 “선생님, 내 책 꼭 꺼내주세요”라며 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에 내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갑자기 울음을 뚝 멈춘 아이가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더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며, “선생님, 울지 마세요. 나는 책 없어도 공부 잘 할 수 있으니까요”하는 것이다. 다음 날 아이 손을 잡고 학교에 같이 온 엄마는 책가방을 못 사줘서 그런 일이 생겼으니 용서하라며 내 손까지 잡고 미안해했다.

나는 그때 아이와 엄마가 내게 주었던 뭉클한 감동 때문에 교직을 천직으로 알고, 아이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동시와 동화에 담으며 평생을 아동문학작가로 살았다. 학교 현장을 떠났지만 지금도 작가초청을 받아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난다. 함께 동시와 동화를 읽고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면, 며칠 동안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던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아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 모 초등학교 선생님이 학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토록 순수했던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은 정말로 다 사라진 것일까. 솔직히 선생님의 가슴에 감동이 꿈틀거릴 때 그 감동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며, 긍지가 느껴질 때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열정 넘치는 에너지로 아이들을 돌볼 때 사랑스런 아이들은 양쪽 어깨에 날개를 달고 쑥쑥 성장할 것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다.

신은 우주만물과 인류를 창조하고 구원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 신이 혼자 힘으로 인류를 모두 구원할 수 없어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만들어 개개인의 학습을 두루 가르치고 구원하도록 한 것일 게다. 그런데 학부모들은 선생님에게 아이의 모든 것을 책임지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학부모가 원하는 모든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영역 안에서 도울 수 있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가르치는 일이 아닌 학부모의 민원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면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할 수 있을까.

혹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학교와 학부모,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문제들이 더욱 많아진 건 아닐까. 마스크만 쓰고 살았던 코로나19의 시간이 자신에 대한 집착과 이기주의가 남을 공격하고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의 스트레스, 아픔, 상처가 굳어져 표출되는 건 아닐까. 그 아픔을 누구에겐가 핑계 대고 싶어서 뾰족해지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사사건건 참지 못하고 던지는 송곳 같은 말과 행동은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를 내게 되고 그 상처는 또 다른 사람에게 옮겨질 게 뻔하다

우리 조상님들은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고 했다. 지혜롭게도 신을 대신한 직업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우리는 신 앞에서 얼마나 순결하고 정성스런 마음으로 의지하는가. 그러니 선생님의 영역 또한 진심으로 존경하고 믿음을 가졌을 때, 우리 아이들은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에게 아이들을 어떻게 관리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고 흥분해서 따지지 말 일이다. 신도 엇나가는 아이를 당장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오늘따라 작은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던 사랑스런 아이가, 따뜻한 가슴으로 마음을 나누었던 그 아이의 엄마가 눈물 나도록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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