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동화작가)

 

이성자 동화작가

지난 주말이었다. 손녀들이 생일 선물로 보내준 편지봉투를 받고 모처럼 손편지를 읽어볼 수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런데 봉투 안에서 꺼낸 예쁜 편지지에는 ‘만수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사랑해요’ 등 모두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짧은 내용들이었다. 글씨 옆에 그려놓은 깜찍한 그림들을 보니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은 것 같았다. 혹시 진짜 손편지가 봉투 안 어딘가에 들어있는지, 다시 기웃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풋 웃음이 나왔다.

최근 교육현장에서도 ‘디지털 선도학교’가 선정돼 다양한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2025년부터 수학, 영어, 정보 과목에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AI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다. AI를 기반으로 한 수업은 학생의 특성에 맞는 맞춤 수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의견들이 대부분이다. 더 나아가 AI 디지털교과서는 선생님을 도와 학생들에게 다양한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낼 것으로 보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칠판이 있던 자리에 터치스크린 화면이 설치되고, 선생님의 업무도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요즈음은 자신이 하는 일을 AI와 함께 협업하는 게 일반화되었다. 작가들 역시 글을 쓰면서 더러는 AI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이처럼 인간이 AI와 함께 일을 하면 얼마나 더 효과적일지 생각해본다. 물론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점점 우리를 게으르게 하지는 않을까? 더 나아가 개개인의 게으름이 확산하여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안타까운 의문도 든다. 이런 현상들은 사회적 태만을 발생하게 할 것이고,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는 여러 가지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사회적 태만이란 1913년 프랑스의 농공학자 링겔만 교수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그는 동물인 말의 능력을 연구하면서 말 두 마리의 능력이 한 마리의 말이 끌 때 보여주는 능력의 두 배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음으로 사람을 상대로 밧줄을 당기는 실험을 진행했는데, 역시 사람 사이에도 사회적 태만 현상이 나타난다는 걸 발견했다. 결국 AI와의 지나친 협업이 인간의 머리를 태만하게 만들어 기발한 상상의 기회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AI가 더 많은 편리함과 교육의 효과를 높인다 하더라도 교육현장에서 종이책을 통한 수업과 손글씨 연습, 책 읽기 교육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여러 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만 우선 학교에서 태블릿PC를 보거나 키보드를 사용하는 시간, 온라인 검색하는 시간을 줄여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교육현장에 정책적으로 반영한다면 문해력을 비롯한 학생들의 학습능력은 더욱 향상될 것이다. 학생들 스스로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기 전에 종이책을 읽고 바른 글쓰기 연습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문장을 정확히 알아야 할 단계의 학생들이 몇 줄의 문자와 이모티콘으로 자신의 마을을 전하곤 한다, 그래서인지 요즘 학생들은 긴 문장을 쓰지 않고, 긴 글을 읽는 것 역시 부담스러워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은 문장으로 된 책은 아예 외면하는 눈치다. 이런 사회현상인데 손편지를 기대한다는 건 지나친 욕심일지 모르지만, 누군가를 배려하고 챙기는 부지런한 마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기에 더욱 절실해진다. 편지지 한 장을 빼곡하게 채울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기다려진다.

교육은 지식의 전달만으로는 부족하다. 가슴과 가슴으로 전해지는 정서가 이어졌을 때 교육의 성과는 더욱 확실해지리라 여겨진다.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손글씨에는 지나온 나의 시간이 고스란히 녹아있어 상대방에게 진솔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정성스럽게 쓴 손글씨를 통해 나와 너를 이어주고, 이해하고, 받아들여지는 아름다운 삶을 기대해 본다. 올 가을에는 부모님에게, 자식에게,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직접 손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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