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자(동화작가)

 

이성자 동화작가

요즈음은 날마다 불안하다. 솔직히 말하면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는 정부와 의사님들이 두렵다. 갑자기 내가 혹은 주변의 누군가가 아프거나 다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오늘도 별일 없기를 바라며 출근을 하는데 문득 의사 장기려 선생님이 생각났다. 그는 약 처방 대신 “이 환자에게는 닭 두 마리를 살 수 있는 돈을 내 주세요”라는 엉뚱한 처방전을 써서 하루아침에 바보 의사가 되었다. 그런다고 존경하는 의사 선생님한테 바보라니! 바로 ‘이상희’ 작가가 쓴 ‘선생님, 바보의사 선생님’이라는 동화다.

책의 줄거리를 보면, 동화 속 주인공 ‘기오’는 다리가 많이 아프지만 치료비가 없어 병원에 갈 수 없다. 어느 날 엄마는 돈 없는 사람들에게 치료비를 아주 조금만 받는다는 복음병원의 소문을 듣고 기오를 데리고 간다. 그곳에서 기오는 의사인 장기려 박사를 만나게 된다. 기오는 다리 수술 전에 자신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하고, 수술 후에도 병실에 찾아와 자신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의사 선생님에게 호기심과 동시에 깊은 정을 느낀다.

기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장기려 박사의 아름다운 삶을 그린 동화는 독자들에게 이 세상에는 병들고 가난한 그들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편안함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총알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 요즘처럼 각박한 현실에서도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향한 조건 없는 건강한 사랑이 우리의 삶과 사회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의사 장기려 박사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가치 있는 삶의 모습을 가르쳐 준다.

김일성 의과대학에서 일했던 장기려는 월남 이후인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 병원을 설립하였고, 피난민들과 전쟁 부상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기 시작했다. 그 후 서울대, 부산대 의대 교수, 부산 복음병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장기려 박사는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막막해 하고 있을 때, 이를 눈치 채고는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게 해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언제나 가난한 환자들의 어려움을 헤아렸고, 자신의 모든 것을 가난한 환자들에게 나눠 주었던 참으로 훌륭한 의사였다.

어디 그것뿐이랴. 그는 국가보다 10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의료보험 창설자였다. 월 보험료 60원에 뜻있는 사람들과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을 설립하여 1989년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이 확대될 때까지 20만 명의 영세민 조합원에게 의료 혜택을 베풀어 주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바보라는 말을 들었지만 그의 삶은 성공한 인생이었다”라고 말한다. 뇌경색으로 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무의촌 진료를 다니기도 했다.

요즈음 정부의 의대 증원과 그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현장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어 국민들의 불안도 점점 더 깊어진다. 양쪽 모두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계속 강대강으로 이어진다면 그 결과는 뻔한 일이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와 국민의 몫이 될 것이다. 당장 대표성 있는 협상단체를 구성해서 정부와 의료계의 감정의 골이 하루빨리 메워질 수 있는 ‘특별한 처방전’이 내려져야한다. 그래야만 정부는 물론 의사, 일반 국민 모두가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그리워지는 의사 장기려 박사, 어려운 이웃들에게 참사랑의 인술을 펼친 그였지만 북에 두고 온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일평생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죽을 때까지 반듯한 방 한 칸 없었지만 가난한 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의 보금자리를 준비해준 훌륭한 의사였다. 장기려 박사가 우리 곁을 떠나던 날 언론은 ‘한국의 슈바이처’ 혹은 ‘살아있는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아쉬워했다.

자신을 내세우면 교만이요, 자신을 내려놓으면 겸손이라는 말이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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