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폴애드 대표 컨설턴트)

 

김형주 폴애드 대표 컨설턴트

세밑 어수선한 정국 속에 지역 정치권은 여론조사에 요동쳤다. 다가오는 4월 치러지는 22대 국회의원 선거의 흐름을 진단하는 지역 주요 언론사들이 의뢰한 여론조사 3개가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더욱 관심을 끌었다. 총선이 100여 일 밖에 안 남은 시점이다 보니 후보들은 모든 역량을 투여하며 사활을 걸고 대응했다. 반면, 정치적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광주·전남지역임에도 여론조사에 대한 지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기까지 하다. 다수 여론조사에 피로도가 쌓인 것도 있지만, 여론조사에 대한 공감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도 더해졌다. 그렇다 보니 ‘민심을 읽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각 후보자 진영의 ‘조직력을 읽는 여론조사’가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은 총선 100일 전인 새해 1월 1일까지 현역의원 평가를 마무리하고 최종 결과는 공천관리위원회에 넘어가게 된다. 현역 평가항목은 의정활동, 기여활동, 공약활동, 지역활동 등 총 1000점 만점으로 구성되나, 이중 지역활동 평가로 진행되는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누가 낙제점을 받을지 결정된다. 다른 항목들의 평가는 대략 비슷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확실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평가결과 하위 10%는 경선 득표율의 30%를 감산하고, 하위 11%~20%는 20%의 감산을 받게 돼 하위 평가자에 포함되면 경선에서 매우 어려운 위치에 처하게 된다. 이렇듯 현역의원 평가도 사실상 여론조사다.

총선 100일 전에는 공천관리위원회가 구성된다. 공관위가 구성되면, 공천신청을 받고 대략 1월 중순 이후부터 여론조사 방식의 공천적합도 조사가 진행된다. 공관위에서는 정량적 평가인 공천적합도 조사결과와 다양한 항목의 정성적 평가결과를 가지고 경선지역과 경선후보자를 결정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공천적합도 조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공천적합도 조사에서 월등히 앞선 결과가 나오면 계파 안배, 정무적 판단 등의 개입으로도 엎어지기 어렵다는 이유다. 저조한 결과를 받게 되면 ‘컷오프’의 위협도 있다. 민주당 당규에 따르면 1위 후보자와 2위 후보자의 격차가 심사 총점 기준 30점 이상이거나 여론조사(공천적합도 조사) 결과 기준 100분의 20 이상일 때는 단수 후보자를 선정할 수 있어, 후보자들에게 공천적합도 조사는 더욱 중요하게 다가온다. 단수냐 컷오프냐 경선후보자가 되느냐. 이 모든 것도 결국 여론조사로 결정된다.

경선에서는 ‘권리당원 ARS 투표’ 50%와 ‘안심번호 ARS 투표’ 50% 결과를 합산해 최종 후보자를 결정한다. 이중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안심번호 ARS 투표’ 역시 사실상 여론조사다. 결국, 언론사 공표용 여론조사에서 시작해 현역의원 평가, 공천적합도 조사를 거쳐, 안심번호 선거인단 투표까지 당 경선 후보를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여론조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중요한 여론조사다 보니, 언론사 공표용 여론조사에서부터 사활을 거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공천과정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많은 문제점도 가지고 있다. 당의 후보자를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것이 맞냐는 지적도 나온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읽는 게 아니라 조직력으로 대응하는 경기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10%도 채 되지 않는 응답률로 후보 결정을 의존하는 게 과연 적절한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데도, 여론조사는 죄가 없다. 선거 캠페인의 구도와 방향을 결정하는데 여론조사는 매우 유효하다. 문제는 공천시스템이다. 공천을 여론조사로 계속 고집하다 보면, 후보자는 정책개발과 같은 콘텐츠보다 여론조사 대응에만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여론조사에 사용될 직책을 준비하고, 여론조사에 대응할 조직구성에만 몰두하다 보면, 우리 정치는 더욱더 국민의 마음에서 멀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 눈높이라 하지 않았던가? 콘텐츠는 없고 조직력만 있는 후보를 결정한다면, 그것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것인지, 그것이 우리 정치의 방향인지 다시 한번 고민하길 바란다. 그래도 여론조사를 해야겠다면, 수치에 무게 중심을 두는 여론조사가 아니라, 민심의 흐름, 즉 추세를 읽는 여론조사이길 기대한다. ‘후보 결정’이 아니라, ‘민심을 읽는 도구’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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