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우화…어른벌레로 겨울나기
나로도, 복수초·노루귀 등 야생화 많아
애벌레, 머리·몸통 연두색 세로 ‘흰선’
단풍나무·물푸레나무·신갈나무 먹이
나방, 약간 누런색…날개엔 사선 줄무늬
날개 퇴화한 암컷, 냄새 풍겨 수컷 유혹

 

 

검은점겨울자나방(2016년 2월 10일, 봉래산)
검은점겨울자나방(2016년 2월 10일, 봉래산)

대부분의 나방은 번데기로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우화한다. 일부 종들은 은신처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애벌레 상태로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새로운 먹이를 찾아 이동하는데 추위에 죽는 경우도 많다. 또 애벌레 상태로 낙엽층 아래 자리잡고 겨울을 나기도 한다.

한편 자나방과(Geometridae) 겨울자나방류의 나방들은 어른벌레 상태로 겨울을 보낸다. 나방 이름에 겨울자나방이 붙는 녀석들이다. 추운 겨울이면 낙엽층 밑에 숨어 지내는 애벌레를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기에 애타게 봄을 기다리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겨울에도 나방을 만나 볼 수 있다. 겨울자나방류의 나방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주항공의 중심지가 된 고흥 나로도. 수많은 섬들을 내려도 보며 우뚝 솟은 봉래산이 자리하고 있다. 남녘의 봄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곳이기에 자주 찾는 곳이다.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등 많은 야생화를 만날 수 있어 매년 1월 말이나 2월이면 몇 번 씩 봉래산 구석 구석을 찾아 다닌다. 물론 나의 주 목적은 애벌레를 만나는 것이지만 말이다. 따뜻한 남쪽이라해도 아직 새순이 돋지 않아 애벌레를 보기가 쉽지는 않다.

2016년 2월 10일, 몇몇 숲해설가분들과 함께 봉래산을 찾았다. 노루귀, 변산바람꽃, 복수초 등이 봄이 왔음을 알리며 활짝 피어 우리를 맞는다. 멋진 녀석들을 찾아 이리 저리 옮기며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데 웬 나방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앵글에 담는다. 약간 누런색이 나는 날개에 사선으로 줄 무늬가 있고 앞날개 중실 끝에 검은 점무늬가 선명하다. 외횡선은 전연 가까운 곳에서 안쪽으로 많이 꺾이고, 안쪽은 색이 짙어 보인다. 이름은 알 수 없었으나 겨울을 어른벌레로 나는 것으로 보아 겨울자나방인 것은 알 수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도감을 펼쳐든다.

하지만 한국 밤 곤충도감에도 나방 애벌레 도감에도 비슷한 녀석이 없다. 결국 미동정 나방으로 남겨 둘 수밖에….

2016년 7월, 허운홍 선생이 나방 애벌레 도감2를 내시고 순천으로 내려 오셨는데 자필 서명한 도감을 선물로 받았다. 그 도감에 녀석이 있다. 검은점겨울자나방이다.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아직 암컷은 보질 못했는데 날개가 퇴화되어 없다. 날개가 없어 이동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암컷이 냄새(페르몬)를 풍기면 수컷이 더듬이로 감지해 짝짓기를 한다. 사촌격인 나비에 비해 더듬이가 발전한 나방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검은점겨울자나방 애벌레는 어떻게 생겼을까?

검은점겨울자나방 애벌레를 만난 것은 한참 후인 2019년 5월 1일, 무등산 용추폭포 가는 길에서다. 신갈나무잎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머리와 몸통 모두 나뭇잎과 비슷한 연두색이다. 세로로 가느다란 흰 선이 희미하게 있다. 주로 어린잎 뒤에 붙어서 먹는데 녀석은 잎 옆면과 가운데 구멍을 내서 먹고 있다.

허운홍 선생이 편찬한 도감에는 종령의 가슴과 배가 흑자색으로 나와 있어 동정을 잘못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내 검은점겨울자나방 애벌레가 맞는지 물어 보았더니 비슷한 녀석들이 너무 많지만 맞는 것같다는 답을 주신다. 4~5월에 애벌레를 볼 수 있고, 먹이식물은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신갈나무 등 여러 활엽수의 잎을 먹는다. 다 자라면 흙속으로 들어가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12월에 우화한다.

추운 겨울을 어른벌레로 나는 겨울자나방류도 몇 종이 있다.

벌레를 보기 힘든 요즘같은 때 수원의 광교산을 찾아 볼 계획이다. 겨울자나방류가 많은 곳이니까~.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검은점겨울자나방 애벌레(2019년 5월 1일, 용추폭포)
검은점겨울자나방 애벌레(2019년 5월 1일, 용추폭포)
검은점겨울자나방 애벌레(2019년 5월 1일, 용추폭포)
검은점겨울자나방 애벌레(2019년 5월 1일, 용추폭포)
검은점겨울자나방(2016년 2월 10일, 봉래산)
검은점겨울자나방(2016년 2월 10일, 봉래산)
노루귀(2016년 2월 10일, 봉래산)
노루귀(2016년 2월 10일, 봉래산)
복수초(2016년 2월 10일, 봉래산)
복수초(2016년 2월 10일, 봉래산)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