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남도

오랫동안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고 000나방 애벌레로 남아있는 녀석이 있다. 딱 한번 보고 지금껏 만나지 못했던 녀석이라 더욱 아쉬움이 많았던 애벌레.

허운홍 선생과 함께 애벌레 채집을 다니면서도 항상 그 녀석에 대한 애타는 마음을 토로하곤 했었다. 그냥 비취반지 애벌레라고 이름 붙이고서 최선을 다해 찾아보자 다짐했지만 아직껏 만나지 못했다. 언제인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허운홍 선생이 녀석을 채집해 관찰하고 있다는 소식을 주셨다. ‘드디어 녀석의 정체를 알 수 있겠구나’잔뜩 기대했었는데 실패했는지 반가운 소식은 없다. 이렇게 녀석에 대한 기억은 사라져 갔다.

지난 설 연휴 하루 전 허운홍 선생께서 나방 사진 한 장을 부탁하신다. 비취반지 애벌레라 불렀던 녀석을 몇 년 전에 우화시켰는데 비늘이 다 없어서 동정을 못하고 생식기 검경을 의뢰했는데 그 결과가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다행히 노트북을 가지고 출근한지라 바로 사진을 보내드리니 맞다는 답이 온다. 드디어 녀석의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었다. 끝검은쐐기나방이다.

2018년 8월 11일, 전북 장수의 덕산계곡으로 숲기행에 나섰다.

무더위가 한창이라 시원한 계곡물과 함께 할 수 있는 좋았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어떤 나방의 애벌레들이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아는 녀석들이 제법 보인다. 헌데 참나무류 잎에 비취빛 도는 타원형의 뭐가 붙어 있다. 나뭇잎 색과 비슷해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 같다. 일단 궁금해서 카메라에 담으며 ‘참 신기하게 생겼구나’하는 생각만 하고 돌아서서 다른 녀석들을 찾아 나섰다.

집에 와서 자료를 정리하면서 다시 녀석을 보니 나방 애벌레가 분명해 보인다. ‘왜 채집을 하지 않았을까’하는 후회가 막심하다. 꼬마쐐기나방이나 꼬마얼룩쐐기나방 그리고 흰점쐐기나방 애벌레와 같은 비슷한 모양새라는 것을 도감을 보면서 알았다.

2021년 12월에 소개한 적이 있는 흰점쐐기나방 애벌레와 모습이 흡사하지만 외형이 매끈하고 반지 알같이 조각해 놓은 것처럼 보인다. 끝검은쐐기나방 애벌레다.

어릴적 쐐기나방에 쏘여 엄청 아팠던 기억으로 나방 애벌레하면 도망가고 그랬던 쐐기나방과에는 끝검은쐐기나방을 비롯해 23종이 알려져 있다. 쐐기나방류의 애벌레는 쐐기 모양 독침으로 덮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녀석은 영롱한 비취반지 같다.

2023년 9월 5일, 천안의 광덕산에서 꼬마쐐기나방 애벌레를 만났는데 이 녀석과 비교 해보면 좋을 것 같다. 꼬마쐐기나방은 아직 만나지 못했는데 어른벌레를 만나면 다시 소개해 드릴 계획이다.

끝검은쐐기나방이 언제 우화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다른 쐐기나방류들이 8월이나 이듬해 봄 우화하는 것으로 보면 녀석도 아마 그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끝검은쐐기나방은 어떻게 생겼을까?

2012년 6월 25일, 무등산 기슭의 충민사 뒤쪽 골짜기에서 불을 밝혔다. 나방이 뭔지도 모를 그 시절이다. 머리위와 꼬리 그리고 다리에 무성한 털로 무장하고 있는 녀석, 앞날개는 오렌지색 또는 황갈색 바탕에 검은색 흰색 무늬가 있어 화려하게 보이기도 하다. 시정부에 크고 검은 무늬도 있어 인상적인 끝검은쐐기나방을 만났다. 매혹적인 애벌레가 이런 나방으로 바뀐다는게 신기할 뿐이다. 무작정 카메라에 담고, 단 한권밖에 없던 도감을 뒤져가면서 이름을 붙이던 그때가 새삼 그리워진다.

2024년 2월 14일, 오랜만에 숲해설가광주전남협회에서 강의를 했다. ‘나방과 함께 하는 숲으로의 여행’이라는 주제로 2시간여의 강의였는데 많은 숲해설가분들이 함께 해 주셨다. 그동안 남도일보에 소개했던 나방들의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었지만 남도일보를 검색해보면 더 많은 내용들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