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어느 날 갑자기 파직을 당해 쫓겨나는 신세가 된 조대감은 화선에게 잘 있으라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야밤에 짐을 싸서 서둘러 낙향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운이 좋아 그냥 파직만 당하고 말았으니 망정이지 한양으로 압송(押送)되어 사헌부(司憲府)에 붙들려가 온갖 곤욕(困辱)을 치렀다고 한다면 두고두고 씻지 못할 치욕(恥辱)이 될 것이었다.
조대감은 주변에 쉬쉬하면서 그냥 벼슬에 뜻이 없어 낙향한 선비라도 되는 듯 모양을 꾸미고 이쯤에서 천만다행(千萬多幸)이라고 가슴을 쓸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함께 지냈던 화선에게 씁쓸한 위로의 말 한마디 못하고 돈 푼이라도 손에 쥐어 건네주고 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가슴에 얹힌 체증(滯症) 인양 깊은 후회가 물밀 듯이 가슴에 밀려오기도 하는 것이었다.
매사에 주도면밀(周到綿密)하지 못한 데다가, 살아오는 동안 호주호색(好酒好色)에 또 재물다탐(財物多貪) 하면서 항상 남 앞서 송곳처럼 불쑥불쑥 잘난 척 매사관여(每事關與) 하며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이었으니 언제라도 사방팔방 가는 곳마다 불행의 불씨는 활활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대감은 요사이 자신의 그 모습을 돌아보곤 하면서 가슴을 쳐보았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아들 옥동이라도 잘 길러서 자신의 장단(長短)을 깊이 성찰(省察)하고 잘 간수(看守)하여 반듯한 삶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었다.
또 남은 것이 있다고 하면 언젠가 화선을 찾아가서 지난날을 변명하며 남은 회포(懷抱)를 풀고 따뜻한 손 한번 잡아주고 오고 싶었던 것이었다.
"어어 흐흠!……"
과거를 회상하던 조대감은 신음 같은 헛기침을 했다. 기세를 타고 하늘 높이 오르는 바람은 뒤돌아볼 새가 없는 것이었고, 기세가 떨어져 산 계곡 깊은 바닥에 곤두박질한 바람은 제아무리 훌륭한 앞을 계획했다 하더라도 앞날이 캄캄한 것이었다. 기세등등(氣勢騰騰) 좋은 호시절(好時節)일수록 기세 떨어질 먼 앞날을 위하여 항상 자신을 성찰(省察)하며 인의실천(仁義實踐) 애민적덕(愛民積德)하여야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조대감이 평생토록 쌓아온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막말로 사정없이 그 꼬락서니를 지껄여 볼라치면 주색전권(酒色錢權)에 아집교만(我執驕慢) 아니었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조대감은 깊이 한숨을 몰아쉬었던 것이었다.
세월은 유수(流水)처럼 흘렀다. 그새 옥동이 윤처사 집에 가서 공부한 지 일 년이 다 되었다. 못 견디겠다고 뛰쳐나올 것이 걱정이었건만 옥동은 지난 일 년을 잘 견디어 내고 있었다. 그러도록 조대감은 윤처사 집에 가지 않았다. 나무지게 지고 일하는 옥동이 보기도 싫었고 또 윤처사의 그런 처사가 마음에 전혀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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