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 숙향에게 빠져 윤과부에게 빼앗아가다시피 한 돈 백 냥을 쥐고 주막집에 들렸다가 술을 많이 마시고 쓰러져 자다가 칼을 든 화적떼가 들이닥쳐 온통 빼앗겨 버렸노라고 도무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또 저 무시무시한 곤장이 날아들 것이었다.“아이고! 사또 나리, 실은 최부자 집 마님이 준 그 돈 백 냥을 들고 오다가 그만 저기 산 너머에서 숨어있던 화적떼들이 들이닥쳐 죄다 털리고 말았습니다요!”박옥주가 숨넘어가듯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사또 나리, 저 박옥주의 말은 거짓입니다. 최부자댁 마님에게 돈 백 냥을 받은 것은 저
“아이구! 사또 나리, 모두 다 저 박옥주가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이옵니다! 저희는 오직 박옥주가 하라는 대로 한 죄밖에 없사옵니다!”윤과부가 고개를 납작 수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 아니오! 사또 나리, 저 여자가 먼저 최부자 부인 마님이 꼽추 아들 중신을 부탁했다며 김진사 댁 규수가 좋지 않겠느냐고 하며 저에게 계책을 내보라고 소개를 해주었습지요! 저 여자로 인해 모든 것이 이렇게 되었사옵니다!”박옥주가 다급하게 끼어들며 말했다.“아이구! 사또 나리, 그것은 사실이오나 반짇고리 안에 금반지와 은비녀를 몰래 가져다 두고
박옥주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사또 나리, 사실은 관아의 이방 유재관이 저와 이종사촌 관계라 이번 송사에 대하여 소인이 협조를 부탁하였습니다.”“어허! 그래! 과연 그렇구나! 김규수의 말이 틀림없도다! 백성을 보살펴야 할 관아의 아전 놈이 범죄인과 결탁을 하여 송사를 유리한 쪽으로 이끌려 하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당장 이방 놈을 붙잡아 포박하라!”이사또가 노발대발(怒發大發) 분기폭발(憤氣爆發)하여 소리쳤다.“예! 사또 나리!”나졸들이 크게 대답을 하고 이방 유재관을 붙잡으려고 보니 제 자리에 없었다. 나졸들이 이
이사또의 심문이 송곳 끝처럼 날카롭게 이어지고 있었다.“아! 그 그건……”박옥주가 잠시 머뭇거렸다.“다시 곤장 맛을 보아야 하겠느냐? 어서 숨김없이 말하라!”이사또가 재촉을 했다.“아이고! 사또 나리, 그건 단양장에서 채소 장사를 하는 윤과부가 팥죽 장사를 하는 신과부를 시켜 화장품 장사로 분장해 김진사 집에 들어가서 아무도 몰래 가져다 놓았습지요.”박옥주가 말했다.“여봐라! 어서 단양장으로 가서 윤과부와 신과부를 붙잡아 오도록 해라!”이사또가 포졸에게 명령했다.“예이! 사또 나리! 분부대로 하겠습니다.”포졸 대장이 크게 대답을 하
이사또 아래 서 있던 이방 유재관도 붙잡혀 오는 박옥주의 꼴을 보고는 깜짝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며 ‘아! 아니, 저 저자가 그새 잡혀 온달 말이냐! 어이구! 저 바보천치 버러지 같은 놈!’하고 속으로 가슴을 치면서 두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얼굴색이 금방 새까맣게 변해 버렸다.정신이 오락가락 이제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는 최부자의 엉덩이에 그사이 곤장 열 개째가 떨어졌다.“형리는 곤장을 멈추어라!”이사또가 형리에게 말을 하더니, 백성들에게 붙들려와 무릎을 꿇고 앉은 박옥주를 바라보고 말했다.“네놈은 어찌하여 저 백성들에게 붙들려
그런데 아뿔싸! 박옥주가 발목이 접질렸는지 일어나지를 못하고 그 자리에서 ‘아이쿠!’ 하고 비명을 지르며 풀썩 고꾸라지고 말았다. 박옥주가 길길이 날뛰며 벗어나려 했지만,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었다.“네 이놈! 박가 놈아! 나를 속여먹고 거짓말 마라! 돈 혼자서 다 처먹고 잘될 줄 알았더냐! 에잇! 더러운 놈! 퉤! 퉤!”윤과부와 신과부가 동시에 달려들어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어라! 저 과부년이 모든 것이 다 네년 때문이다! 어서 저년을 잡아라!”박옥주가 절뚝거리며 달아나려고 용을 쓰며 소리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윤과부가 신과부
최부자와 이방 유재관의 눈빛이 순간 마주쳤다. 이방 유재관이 깜짝 놀란 눈빛으로 고개를 외로 틀고 저으며 입술을 질끈 물어뜯었다.그것을 본 최부자가 입을 열려다 말고 고개를 푹 수그려 버렸다.“어허! 이놈 봐라! 어서 곤장을 매우 쳐라!”이사또가 노기 띤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형리가 곤장을 하늘 높이 쳐들었다가 최부자의 벌건 엉덩이를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아! 아이고오!”‘딱! 딱! 딱!’ 넷, 다섯, 여섯을 계속해서 곤장을 내리치도록 최부자는 이를 벅벅 갈며 버티고 있었다. 자존심 강한 최부자가 차마 제 죄를 제 입으로 도무
이사또가 높은 관아의 마루 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최부자와 그의 꼽추 아들을 내려다보며 호령했다.“네 이놈! 어찌하여 너는 여염집 규수에게 없는 일을 뒤집어씌워서 강제 혼례를 치르러 하였더냐? 어서 함께 공모한 자들을 숨김없이 이실직고(以實直告)하라!”“아이고! 사또 나리! 이놈이 무얼 잘못했다고 이리 핍박하시는지요!”최부자가 고개를 치켜들고 이사또를 바라보며 말했다.“어허! 아직 저자가 자기가 지은 죄를 모르는 것인가 보구나! 여봐라! 저자를 형틀에 묶고 곤장(棍杖) 열을 쳐라!”이사또가 형틀 옆에 서 있는 형리들을 바라보며 말했
사실 이 사또는 어린 김규수의 비범한 지혜에 깜짝 놀랐으나 어찌 나오나 보려고 거짓을 한 까닭을 사납게 추궁해 캐물어 본 것이었다.“여봐라! 지금 당장 관아 마당에 형틀을 차리고 죄인 최 부자와 아들을 붙잡아 포박하라!”이 사또가 우렁찬 목소리로 명령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예이! 사또나리!”밖에 있던 포졸이 크게 대답했다.청백관리(淸白官吏)로 소문이 난 이사또는 이방 유재관에게 한 푼의 뇌물도 건네받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박옥주가 한밤중에 유재관에게 건네준 그 오천 냥의 뇌물은 어찌 된 것일까? 이방 유재관이 애초에 신관 사또 이
만약 최부자의 뇌물을 꿀꺽 삼킨 이사또가 작정을 하고 밀어붙인다면 김규수로서는 도무지 헤어날 방법이 없을 것이었다.고개를 깊이 조아리고 있던 김규수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이사또를 바라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사또님! 지당(至當)한 말씀이오나 어찌 새를 잡기 위하여 쓴 올가미를 탓할 수 있으며, 물고기를 잡기 위하여 쓴 그물이나 멧돼지를 잡기 위하여 쏜 화살을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나 곰을 잡은 사냥꾼을 어찌 탓할 수가 있겠으며 독사를 잡는 땅꾼을 탓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을 탓한다고
“어허흠! 고얀 지고! 어찌하여 너는 지엄한 이 자리에서 왼쪽 팔에 없는 기미를 있다고 들먹이며 새빨간 거짓을 아뢰었단 말이더냐?”이사또가 김규수를 잔뜩 노기 띤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김규수는 올리고 있던 왼팔을 자신도 모르게 아래로 스르르 내리면서 무릎을 꿇고 긴장한 얼굴로 이사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사또님, 그 그건……”“듣기 싫다! 국법을 논하는 지엄한 자리에서 재판관인 관리를 속이고 거짓 증언을 아뢰었다는 것은 신성해야 할 이 법정을 기만하고 모독한 것이 아니더냐? 위로는 선왕으로부터 훌륭한 집안으로 시호(諡號)를
마침 최부자는 오늘 자신의 송사가 있다는 단양 관청의 기별을 받고는 아침 일찍 와서 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별관 문이 벌컥 열리고 이방 유재관이 들어와 다급하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최부자 아드님을 사또 나리가 즉시 대령하라 합니다. 집으로 나졸(邏卒)을 보낼 터이니 속히 데리고 오십시오!”“아! 그래요. 이방 어른 지금 재판은 어찌 되어가는 것이오?”최부자가 궁금하던 것을 물었다. 그 말에 이방 유재관이 주위를 살피더니 최부자의 귀에 대고 나지막이 무어라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 유재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사또와 아버지 김진사의 눈빛이 김규수의 왼팔로 가서 꽂혔다. 김진사는 속이 바삭바삭 타들어 가는 얼굴로 입을 굳게 다문 채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딸을 넋 나간 듯한 눈빛으로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가냘프지만 깡마른 새하얀 손, 그러나 야무지게 주먹을 쥔 여인의 손, 그 손이 허공에서 여름 담장 위 박꽃처럼 파르르 떨렸다.김규수가 가느다랗고 긴 오른손 손가락을 놀려 자신의 왼팔의 저고리 소매를 천천히 걷어 내리기 시작했다. 이사또는 목 안이 바싹 마르고 숨이 막혔다. 이 순간 이사또 또한 극한 긴장감이 몰려온 것이었다. 절세
김진사 부녀가 있는 밀실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은 이사또는 김규수를 지엄(至嚴)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껏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여봐라! 방금 듣자 하니 최부자의 아들이 한 말이 너의 왼팔에 엽전만큼 크기의 검은 기미가 있다고 한 너의 말과 전혀 다르지 않으니 이는 어찌 된 까닭이냐? 일점추호(一點秋毫)의 거짓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명심하렷다!”“예! 사또님!”그렇게 대답을 한 김규수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두 무릎을 꿇고 방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말을 이었다.“소녀, 사또님께 청을 올리겠습니다. 이젠 이
“예이! 사또 나리! 명 받들겠습니다!”방 안에 있던 이방 유재관이 크게 대답을 하고는 재빨리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이사또는 휴정(休廷)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최부자의 꼽추 아들이 관아로 불려 왔다는 전갈이 득달같이 이사또에게 전달되었다.“사또 나리! 최부자의 아들을 관아로 즉시 대령(待令)했습니다!”이방 유재관이 소리쳐 말했다.“그래, 그렇다면 최부자 아들을 다른 밀실로 당장 들이거라!”이사또가 최부자의 꼽추 아들을 다른 밀실로 들게 하여 따로 만났다. 최부자의 꼽추 아들을 본 이사또는 내로라하는 양반 집 김규수가
김규수의 목소리가 또랑또랑하게 울려 나왔다. 그런데 금반지와 은비녀가 왜 김규수 규방의 반짇고리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인지가 무엇보다도 이 사건의 가장 중요한 핵심관건(核心關鍵)이 될 것인데 왜 김규수는 그것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해버리는 것일까? 최부자 아들에게 절대로 김규수가 그것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여기서 수천 번 말해보았자 도무지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기에 김규수는 과감하게 그것을 받아들여 용인해 버린 것일까?딸의 말을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김진사는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가슴이 뛰는 것이었다. 김규수가 다
“여봐라! 관청 마당 안에 있는 저 백성들을 모조리 문밖으로 나가도록 하라!”이 사또가 관아의 사령을 보고 호령했다.“예! 사또나리!”방망이를 든 사령이 우렁차게 대답하더니 우글거리던 백성들을 문밖으로 내모는 목소리가 들렸다.“백성들은 어서 관청 문밖으로 나가시오!”그 소리에 썰물 빠져나가듯 백성들이 삽시에 문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 백성들 안에는 박옥주도 와서 섞여 있었다. 물론 윤 과부와 신 과부도 그 안에 있었다. 윤 과부와 신 과부는 재판 소문을 듣고 함께 와있었는데 재판 결과도 궁금하였지만, 무엇보다도 돈 백 냥을 주지도
오동이가 조용히 말했다.“나는 장사를 함께 해서 벌어들일 돈은 생각하지 않고, 먼저 장사를 함께할 사람을 본 것이지요.”“허허! 장사라는 것은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그렇게 했더란 말인가?”사람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사람 나오고 돈 나왔지, 돈 나오고 사람 나왔느냐?’는 말이 있지요. 요는 돈보다도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이지 않겠습니까? 그리하여 나는 장사를 함께 할 삼용이를 우선 생각해 본 것이지요. 어릴 적에 삼용이 집에 놀러 갔는데 그의 어머니가 나를 보고는 밭에서 막 따온 참외를 먹으려고 하다가 감추는 것을 보았
총각이 마당 가운데서 똥 두엄을 내는 것을 본 처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홱 돌아서 가버렸다. 아주머니가 화가 나서 그 총각을 보고 소리쳤다.“도대체 자네, 장가들 생각이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처녀가 신랑 될 총각을 보러 온다는데 없는 옷이라도 깨끗하게 차려입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지저분하게 저깟 똥 두엄일랑은 왜 쑤셔대고 있는 것인가?”“아주머니, 달랑 아래 두 쪽 밖에 가진 것 없는 놈이 장가는 가서 무슨 수로 식구들 거느리고 먹고 살 수 있겠나요? 인물이 아무리 곱더라도 이렇게 열심히 두엄을 뒤집고 일하는 사내를 보고
어차피 그 일 때문에 사또를 만났다고는 하지만 사또가 바로 질문을 하고 들자 김진사는 말문이 큭! 막혔다. 딸 방의 반짇고리 안에 귀신도 모르게 들어있던 금반지와 은비녀의 까닭을 무슨 수로 증명해 보인단 말인가?“예! 사또님, 실로 괴이하고 참담한 일을 당해 참으로 소녀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또님께 말씀 올리기 전에 먼저 청이 있사옵니다. 지금 관청 마당에 몰려온 사람들을 다 물러나게 하시면 말씀 올리겠사옵니다.”김규수가 가득 몰려든 관청 마당의 사람들을 물러가도록 말했다. 이사또가 김규수를 보니 둥근 이마에 발그레한 얼굴빛이 고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