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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7·혁명속 인연>

그 말을 이어나가면서 윤희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정길의 눈을 바라보더니 이내 무릎을 꿇고 임신한 배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길과 자신의 배를 번갈아 보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여보 용서해 주세요! 아가야 용서해줘!…. 이 못난 엄마를….”

그러면서 정길의 사랑을 이용했고 이젠 떳떳한 아내와 엄마로 태어나겠다고 정길에게 용서를 구했다.
정길은 생각했다. 이 가련한 여인에게 무슨 잘못이 있는가.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진다는 말인가. 얼마나 힘든 세월을 견뎌 왔을까! 누구에게 이런 고민에 대해 터놓고 얘기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녀의 아픔이 나의 아픔인 양 정길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고 둘은 부둥켜 앉고 말없이 울고 있었다.
이내 먹구름에 가렸던 달빛이 강물에 반사되어 윤희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정길은 무릎을 일으켜 세우며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아 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여보! 이제 걱정 마. 당신과 아이는 내가 반드시 지켜주리다.”
“길문 그 개자식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리다.”
그녀는 또 다시 눈물을 흘렸으나 정길은 이제 울지 말 것을 주문하면서 길문에게 평상시와 다름없이 행동할 것을 주문했다.

정길은 짐승보다 못한 길문에게 치가 떨렸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 같은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이용해 자기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하다니…. 그리고 내 아내 윤희를 이 지경이 되도록 짓밟은 길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정길은 길문을 완전히 제거할 계획이 필요했다. 그날밤 윤희는 손가방 속에 담아온 중요 문서들을 비닐로 포장해 정길의 속옷 복대를 만들었다. 그리곤 그날 밤 아무도 모르게 속옷 복대를 정길의 품속에 넣어 다니도록 했다. 그 사실은 정길 부부밖엔 몰랐고 길문은 윤희가 배신했으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피난길에 올랐다. 칠월하고도 초하루였다. 정길은 그날의 일을 잊을 수 없었다. 아침부터 매미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며 아내의 입덧으로 트럭 앞칸의 매캐한 냄새가 역겨워 우린 트럭 짐칸으로 장소를 이동했다.
앞칸엔 길문이 우리를 대신해 탔으며 그날따라 길문은 기분이 좋았는지 운전기사에게 시종일관 시시콜콜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남으로 가고 있었다.

피난민들과 무리를 이루어 트럭은 거북이걸음으로 힘들게 부산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갑자기 피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정길은 어떤 상황인지를 알기 위해 일어서려는 찰라, 피난길 신장로 주위엔 포탄 서너 발이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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