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간 구례 천은사 통행료 무단징수 해결 청신호
‘사찰 자력 운영 기반’ 합의…4월 중 MOU 체결후 입장료 폐지
1987년 이래 계속된 민원, 크고 작은 마찰 종지부 상생의 길로
전남도·구례군·천은사·국리공원공단 등 관계기관 머리 맞대
 

통행료 무단 징수로 계속된 민원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어온 구례군 천은사 매표소(왼쪽)와 전남도와 구례군이 각각 10억 원씩 모두 20억 원을 들여 주차장 옆에 있는 2동의 건물(식당과 편의점 용도)을 리모델링 해 주기로 한 천은사 휴게소. 동부취재본부/유홍철 기자 yhc@namdonews.com

지난 30여년 동안 지역사회의 숙원이었던 구례군 천은사 통행료 무단 징수문제 해결에 청신호가 켜졌다.

17일 전남도와 구례군, 천은사 등 관련기관에 따르면 천은사 통행료 폐지를 위한 관계기관 협의회를 1월 중순 첫 모임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여러 차례 가진 끝에 통행료 폐지로 손실을 입게 되는 천은사에 ‘자력 운영기반’을 마련해 주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안을 토대로 4월 중순쯤 관계 기관간 업무협약(MOU)이 체결되면 4월말께 통행료 폐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1987년 이래 지역사회의 최대 현안이자 골치 거리였던 천은사 통행료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됐으며 통행료 무단 징수로 계속된 민원과 크고 작은 마찰은 종지부를 찍고 상생의 길로 나설 수 있게 됐다.

◇ 방안

전남도를 중심으로 구례군, 한국농어촌공사, 국립공원공단, 천은사 등 관계기관이 천은사 통행료 문제 해결을 위해 ‘천은사 자력 운영기반 조성’ 방안을 두고 수차례 협의를 가졌다.

이들 관계기관들은 지방도 861호선의 지리산 성삼재로 향하는 차량에 대해 1인당 1천600원의 통행료를 징수해서 연간 5억여 원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천은사가 유명사찰이 아닌데다 입지여건상 통행료가 주 수입원이라는 점에 착안, 묘수 찾기에 나섰다.

다시말해 천은사가 통행료 폐지로 잃게 되는 5억여 원에 상응하는 수입원을 확보해 주고 사찰에 일정한 명분을 주는 안을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직접적인 보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천은사 내의 수익시설을 확충하고 사찰 주변의 경관을 활용해 관광객이 많이 찾을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착수한 것이다.

우선 전남도와 구례군이 각각 10억 원씩 모두 20억 원을 들여 천은사 주차장 옆에 있는 2동의 건물(식당과 편의점 용도)을 리모델링 해 주기로 한 것이 한 예이다. 전남도는 지방도에 편입된 사찰부지 매입비용으로 5억 원을 따로 확보해 두고 있다.

이와함께 국립공원공단과 농어촌공사 등의 지원을 받아 숲길을 조성하고 천은제(저수지)에 수변데크와 야간 경관조명 시설을 설치하는데 대략 30억 원을 투입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다각적인 천은사의 자생방안을 토대로 말사 천은사와 본사 화엄사측을 설득해서 최근 긍정적인 답을 얻었고 4월중 MOU가 체결되면 곧바로 통행료 징수도 폐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각종 시설에 투입될 예산은 각 기관별로 올해 추경예산에 반영해서 올해 안에 사업착수에 나선다는 복안이다.

◇ 배경

천은사는 지리산국립공원에 위치해 자연공원법상 공원문화유산지구로 지정돼 있고 공원문화유산지구의 입장료는 공원관리청과 협의해서 징수할 수 있게 돼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입장료 징수위치 부적절 등을 이유로 협의를 하지 않았지만 천은사는 입장료 명목으로 징수를 강행해 왔다.

더구나 자연공원법상 통행료의 부당징수에 대한 제제규정 또는 처벌 규정이 없어 주관부서들이 실효적인 제제를 하지 못했다.

그동안 각종 민원에 가장 많이 시달려온 구례군도 매표소 철거와 입장료 징수 위치 변경을 수차례 요구하는 수준에 그쳤고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입간판과 바리케이트 제거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 전남도와 구례군 등 관계 기관들은 천은사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도로를 막고 통행료를 부과하는 상황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다. 법과 정의가 바로서야 한다는 관점에서 반드시 시정해야 할 해묵은 과제였던 셈이다.

관계당국의 해결책은 매표소 철거와 같은 강제집행이 아닌 간접 보상이라는 우회로를 통한 상생의 길을 택한 것이 해결의 단초가 됐다.

특히 각종 민원사항을 직접 맞닥뜨려야 하는 구례군의 경우 욕설이 섞인 전화민원을 처리하느라 휴일 당직자들이 겪어야 하는 애로를 감안해서 열악한 재정사정에도 불구하고 적극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것도 도움이 됐다.

통행료 징수를 강행 해온 천은사도 사찰과 스님들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여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급기야는 대한불교 조계종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기에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수준에서 전남도를 비롯한 관계 기관의 수습책에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

◇ 경과

논란의 단초는 1970년 정부가 속리산 탐방객을 상대로 국립공원 입장료와 법주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합징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1987년 천은사를 비롯해 15개 사찰로 통합징수가 확대됐다. 1997년 국립공원공단에서 분리 징수를 시도했지만, 사찰 측이 ‘산문 폐쇄’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유야무야 됐다.

이후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자 사찰들은 문화재 관람료를 직접 징수하고 나섰다. 매표소도 공원 입구에 지어지면서 사찰 문화재 관람 의사가 전혀 없는 일반 등산객들도 사찰 측의 관람료를 징수에 맞서는 일이 잦아져 곳곳에서 마찰이 일었다.

특히 천은사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리산 서쪽 성삼재에 이르는 861호 지방도로를 옆에 끼고 자리잡은 천은사는 861호 도로에 들어서게 되면 사찰 경내도 아닌데 무조건 문화재 관람료를 내야 했다.

이 문제는 급기야 소송전으로 번졌다. 2000년 참여연대가 지리산 천은사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2013년에 승소했으며 집단소송에 참여한 73명이 1인당 10만 원까지 위자료를 받아내기도 했다.

당시 재판부는 “도로 부지 중 일부가 천은사 소유라고 하더라도 지방도로는 일반인의 교통을 위해 제공된다”면서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없는 사람에게 관람료를 내야만 도로를 통행할 수 있게 한 것은 불법”이라고 해석했다.

법원은 일반 등산객들한테까지 관람료를 징수하는 행위는 위법하다고 했지만, 천은사측은 현재까지 관람료를 받아왔다.

현재 국립공원 내 사찰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곳이 27곳이다. 도립·군립공원까지 합치면 총 64곳에 이른다. 동부취재본부
/유홍철 기자 yhc@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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