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 남도일보 주필의 무등을 바라보며

캐슬게이트의 쓸쓸하고 초라한 애국자 묘지
 

류공우 묘비

미국을 방문 중인 기자는 며칠 전 미국 유타 주 카본 카운티(Carbon County)에 있는 캐슬게이트(The Castle Gate) 묘지를 찾았었다. 캐슬게이트는 유타 주도(州都)인 솔트레이크 남쪽으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다. 캐슬게이트는 석탄광산 지대다. 1850년대부터 남부 유럽 이민자들이 이곳에서 일을 했다. 1900년대에는 많은 중국·일본·조선인 노동자들이 흘러들어왔다. 이들은 당초 철도노동자였으나 철도 공사장 일이 없어지자 탄광노동자가 된 것이다.

1924년 3월8일 오전, 캐슬게이트 광산 제2광구에서 대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갱도에 있던 172명 전원이 생매장을 당했다. 희생자 중에는 조선인 광부 3명이 있었다. 공원묘지 입구에 세워져 있는 캐슬게이트 폭발사고 희생자 위령비에는 Ryu, K. W., Eum, Y.S. Park. 이라는 조선인 이름이 새겨져 있다. 류공우, 엄성칠, 박용성이다. 조선에서 건너와 이역만리 머나먼 미국 땅에서 일하던 이들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만 비운의 조선인들이다.

이중 류공우라는 인물은 나라사랑에 불타는 대단한 애국자였다. 일제에 빼앗긴 조국의 현실에 비분강개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상해에 독립운동자금을 보내는 등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했다. 류공우라는 인물은 사실 기자가 발굴해낸 인물이다. 기자는 지난 2000년부터 10년 동안 미 중서부 일대를 대상으로 한인이민사를 연구하던 중 캐슬게이트 묘지에서 허름한 상태의 ‘류공우 묘비’를 극적으로 찾아냈다. 그리고 수년 동안 미국과 한국에서 그의 자취를 추적했었다.

기자는 유타대학 고문서실에 보관돼 있는 ‘커네컷 동광산 근로자 기록카드’와 190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발행되던 ‘공립신보’와 ‘신한민보’에서 류씨 관련 자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근로자 기록카드에는 류씨가 1913년 11월 20일부터 1914년 3월 21일까지, 4개월 동안 커네컷 동광산에서 일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08년부터 1913년까지 류씨 이름은 신한민보에 3차례 등장한다. 애국동맹단 이름으로 신한민보에 몇 차례 의연금을 보낸 사실이 실려 있다.

류씨의 이름은 신한민보 1914년 5월 28일자 (제 325호 3면) ‘셔간도 긔황구휼금’이라는 기사에 다시 나타난다. 당시 조선인 노동자들은 서간도(西間島)에 흉년이 들어 많은 동포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소식에 구휼금(救恤金)을 보내는데, 와이오밍 주 슈피리어 광산에서 일하고 있던 류씨의 이름이 구휼금 송금자 명단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류씨를 포함 ‘백만슈 한셩관 리모 한규현’ 등 5명의 슈피리어 탄광 조선인 광부들이 구휼금을 보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

슈피리어 광산은 록키산맥 일대의 해외독립운동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다. 이곳 조선인광부들은 네브라스카에서 조선독립군 양성을 위해 군사학교를 운영하던 박용만(朴容萬)장군의 영향을 받았다. 조선인광부들은 언젠가 있을 조국광복전쟁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류씨는 광복전쟁을 준비하던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신한민보 1924년 3월 13일자(제860호 1면)에는 류씨와 관련된 두 개의 기사가 있다. 하나는 ‘캐슬게이트의 3·1절’이라는 기사이고 또 다른 것은 ‘류공우씨 부음기사’다.

‘캐슬게이트의 3·1절’이라는 기사 내용은 ‘캐슬게이트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류공우씨 집에서 모여 3·1절 기념행사를 치렀다’는 것이다. 그 아래쪽에는 ‘유타주 탄광에서의 동포 삼인이 참살’이라는 기사가 나란히 실려 있다. 류씨를 포함한 한인광부 3명이 참변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기사내용은 ‘케슬게이트에 있는 정동성씨의 통신에 의하면 3씨는 불행히 광속에서 비명 폐명하였다 하며 동 3씨의 사망 배상 문제를 석탄회사에 교섭하기 위하여 총회장 최진하씨를 나오라 하였다더라’는 것이다.

생전의 류씨는 대단한 애국자였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그의 삶의 일단은 공립신보 1908년 8월 19일자 신문(2면) ‘류씨습日’(柳氏襲日)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알 수 있다. 기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류씨습日=모에파 지방 서인농장에서 우리 동포 오륙명과 일인 오륙명이 같이 일하다가 한 일인이 국제상 치욕되는 말을 말하거날 동포 류공우씨는 원래 애국성이 격렬한 남자라 이 말을 듣고 분기대발하야 일하던 광이로 그 일인을 치니 땅에 꺼꾸러져 일어나지 못하는지라 일당 충돌하기 직전에 서인들이 몰려와 그 연유를 물으매 동포 중 영어하는 김관형씨가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매 듣는 서인들이 다해 씨의 애국성을 칭찬하매 다른 일인들이 부끄럼을 이기지 못하야 다른 농장으로 갔다더라’

3·1절 100주년을 맞아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그러나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했던 미국 땅의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조명과 관심은 시들하다. 캐슬게이트에 자리한 류공우씨의 묘는 초라하다. 정부의 관심밖에 있다. 더구나 유타주는 경기도가 자매결연을 맺은 주이다. 그러나 유타주를 찾은 경기도관계자와 정치인들 중 류공우씨의 묘역을 참배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기자가 캐슬게이트를 찾은 그날도 류공우씨 묘역은 쓸쓸하기 이를 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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