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수구 희망을 쐈다…금메달보다 값진 첫승 선사

승부 뛰어넘는 스포츠 정신…아름다운 도전
한국 남자 수구 희망을 쐈다…금메달보다 값진 첫승 선사
‘국가의 이름’으로…부탄, 에리트리아 등 3개국 첫 출전
시리아 난민 선수 2명·10대 아프리카 소년 열정 ‘감동’

남자 수구, 감격의 승리
23일 광주광역시 광산구 남부대학교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수구 남자부 15-16위 순위결정전 한국-뉴질랜드 경기에서 대한민국이 승부던지기 끝에 첫 승리를 거둔 뒤 환호하고 있다.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조직위원회 제공
부탄 대표로 광주세계수영대회에 출전한 산제이 텐진과 킨레이 엘헨덥 선수.

절정의 기량을 가진 세계적 선수들이 총 출동하는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선수들이 가장 염원하는 건 바로 메달이다. 그동안 흘린 땀과 열정을 보상받고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는 절호의 찬스인 탓이다.

스포츠는 엄연히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며 세계적 선수들에 열광한다.

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도전도 곳곳에서 존재한다. 메달과 경기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도전’ 그 자체만으로 지구촌에 한 줄기 희망을 선사하는 선수들이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는 스포츠에 환호한다.

반환점을 돈 이번 광주세계수영대회에도 다양한 국적 선수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출전하면서 대회 ‘히든 승자’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 최초 ‘수구 대표팀’ 타이틀=한국 최초로 결성된 남녀 수구 대표팀이 투혼의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 수구 남자 대표팀은 23일 마지막 경기에서 뉴질랜드를 꺾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대표팀은 이날 광주 남부대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수구 ‘15·16위 결정전’에서 승부던지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뉴질랜드를 17대 16으로 제압했다.

개최국 자격으로 첫 출전한 대표팀은 세계선수권의 높은 벽을 실감한 채 그리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카자흐스탄과의 경기에서 모두 완패했다. 대회 목표인 ‘첫 승’이 물 건너가는 거 아니냐는 우려 속에서도 대표팀은 최선을 다해 결국 국민들에게 ‘1승’이라는 결과를 선물하면서 아름답게 퇴장했다.

여자 수구팀은 한 편의 드라마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대회 한 달 반 정에 결성된 여자 수구팀의 이번 대회 목표는 ‘한 골’.

첫 경기부터 강호 헝가리와 맞붙어 0대 64로 대패했지만 불굴의 의지와 ‘할 수 있다’는 패기는 그들을 일으켰다. 두 번째 러시아와의 경기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4쿼터 종료 4분16초를 남겨두고 한국 경다슬의 첫 골이 나왔다. 1대 30으로 졌지만 물속의 동료들은 물론 벤치의 선수들까지 한꺼번에 울음을 터뜨린 기적의 골이었다.

캐나다와의 세 번째 경기에는 2골을 넣으며 희망을 안겼고 지난 20일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13~16위 순위결정전에서는 3골을 더 넣으면서 3대 26으로 졌다

대표팀은 마지막 쿠바전에서 온 힘을 다했지만 0-30으로 전 경기를 마감했다. 주장 오희지는 코피 투혼으로 국민들에게 눈물과 감동을 선물했다.

◆‘국가의 이름으로’ 첫 출전 3개국…힘찬 물길질=부탄과 세인트 키츠 앤 네비스, 에리트리아. 이번 대회에서는 역대 FINA세계수영선수권대회 사상 첫 출전 국가로 이름을 올린 곳은 3개 국가다. 나라를 대표해 첫 출전한 선수들인만큼 그들의 어깨는 더욱 무겁다.

아시아 서남부 히말라야산맥 동부에 위치한 부탄은 광주 거주 인구보다 훨씬 적은 인구 82만 6천229명이 살고 있는 작은 국가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부탄은 지난 2017년 부탄수영연맹(BSF)이 국제수영연맹(FINA)으로부터 공인된 국가회원연맹으로 공식 지위를 받으면서 FINA의 208번째 회원이 됐다.

부탄을 대표하는 선수는 바로 10대 소년 2명. 킨레이 엘헨덥(Kinley Lhendup, 14세) 과 산제이 텐진(Sangay Tenzin, 15세) 선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태국 푸켓에서 3개월간 맹훈련을 거친 끝에 비로소 첫 국제대회 데뷔전을 치르고 있다.

킨레이 엘헨덥(Kinley Lhendup, 14세) 선수는 지난 21일 광주 남부대 주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50m 접영 예선전에 출전해 전체 95명 가운데 93위로 경기를 마쳤다.

세계 무대의 벽을 실감했으나 24일 오전 열리는 200m 개인혼영에 출전해 다시 한번 부탄의 이름을 알린다.

산제이 텐진(Sangay Tenzin, 15세) 선수는 26일 오전 펼쳐지는 남자 50m 자유형에 나서 선수권대회 첫 출발대에 오른다.

비록 메달권과 거리는 있지만 자국을 대표해 첫 출전하는 만큼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 있는 인구 5만 6300여명의 작은 섬나라, 세인트 키츠 네비스에서도 자국을 대표해 제니퍼 하딩-말린(Jennifer Harding-Marlin, 27·여)선수가 유일하게 광주수영대회에 참가한다.

하딩말린 선수의 본업은 변호사다. 원래 국적도 캐나다로 수영은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만 해왔지만 수영에 대한 열정은 어느 누구 못지 않았다. 수영에 대한 열정은 수영 불모지인 세인트키츠네비스에 수영 저변을 확대한다는 목표가 됐고, 5년 전에 시민권을 얻어 현재는 세인트키츠네비스에서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국제규격 수영장이 없어 바다에서 연습했다는 하딩말린 선수는 24일 열리는 여자 50M 배영과 25일 여자 100M 자유형 예선에 출전해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인다.

올림픽 출전권을 얻어 조국에 올림픽 출전의 영광을 안겨주고 싶다는 하딩말린 선수의 다부진 꿈이 이뤄질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아프리카 동북부에 위치한 에리트리아는 하나의 주(州)가 중앙정부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 최초의 국가다. 나라를 대표해 출전한 선수는 바로 다니엘 크리스티안(danile-CHRISTIAN) 선수와 지란 에프렘(ghirane-EFREM) 선수다. 크리스티안 선수는 26일 열리는 남자 100m 접영에. 에프렘 선수는 27일 열리는 남자 50m 배영에 각각 출전해 대회 첫 신고식을 치른다.

◆‘도전’이란 이름으로=국가의 이름이 아니어도 ‘평화’와 스포츠 정신으로 감동을 선사한 이들도 있다.

시리아 난민 출신 남·여 수영선수가 국제수영연맹(FINA) 독립선수 자격으로 21일 광주에서 힘차게 평화의 물살을 갈랐다.

유스라 마르디니(21·여)와 라미 아니스(28)선수는 이날 광주 남부대학교 시립국제수영장에서 열린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접영 예선 100m·50m에 국기가 아닌 FINA 로고가 선명한 수영모를 쓰고 참가했다.

마르디니는 이날 100m 예선에서 1분08초79를 기록해 52명 중 47위를 차지했다. 아니스는 50m 예선에서 94명 중 68위(26초24)에 올랐다. 비록 결선에 오르지 못했지만 이들은 경기 기록과 상관 없이 굳센 의지와 도전 정신으로 경기를 즐겼다.

마르디니는 25일 열리는 자유형 100m 예선에도 출전하는 만큼 아직 광주에서의 아름다운 날갯짓은 끝나지 않았다.

두 선수는 지난 2015년 보트를 이끌어 에게해(Aegean Sea)를 건너는 등 생사를 넘나들며 전쟁터에서 탈출, 난민 자격을 얻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난민팀으로 출전해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17일 여수에서 열린 오픈워터 경기에서 그 누구보다 큰 박수를 받은 10대 소년이 있다. 바로 오픈워터 최연소 선수인 세이셸제도 국가대표 알아인 비돗(15)군이다.

이날 74명의 출전 선수 중 73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한 크리스토퍼 라우자(크로아티아)가 경기를 마친 뒤에도 10여분이 더 지났지만 비돗은 끝까지 팔을 내저었다.

고독한 자신과의 싸움 끝에 마침내 그는 결승선 터치패드에 손을 뻗었고 경기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전광판에 뜬 공식기록은 제한 시간 초과(OTL·Outside Time Limit)였지만 그가 남긴 감동은 제한 시간 무한대(OTI·Outside Time infinity)였다. 특별취재반/정세영 기자 jsy@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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