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일 광주염주체육관서 장례식

 

‘열 손가락 없는’ 몸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좌를 완등한 고 김홍빈 대장의 생전 활동 모습들. 사진/남도일보 DB·광주광역시산악연맹·광주광역시립미술관
‘열 손가락 없는’ 몸으로 세계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8천미터급 14좌를 완등한 고 김홍빈 대장의 생전 활동 모습들. 사진/남도일보 DB·광주광역시산악연맹·광주광역시립미술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도전을 이어간 고(故) 김홍빈 대장. 그의 삶은 온전히 ‘감동의 드라마’다.

196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김홍빈 대장은 순천 매산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산을 동경했다. 본격적으로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3년 송원대학교 산악부에 들어가면서다. 그는 고산 등반을 제대로 하기 위해 술, 담배도 멀리하고 스키, 사이클, 스케이트도 열심히 탔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광주·전남 암벽대회에 출전해 2위에 오를 정도로 기량이 부쩍 늘었고 1989년 에베레스트 원정에 이어 1990년 낭가파르바트 원정에도 참여할 정도로 전도유망한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가 김 대장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그의 나이 28세 때였다. 그는 1991년 동기의 권유로 북미 최고봉 매킨리(6천194m)를 혼자 오르다 탈진해 의식을 잃고 말았다. 16시간 만에 구조돼 겨우 목숨은 건졌지만, 새카맣게 말라든 열 손가락을 모두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2개월 간 7번의 수술을 받았지만 뭉툭한 손만 남게 됐다.

깊은 절망에 빠졌다. 수술받은 부위는 옷깃만 스쳐도 극심한 통증이 나타났다. 혼자서는 옷을 입거나 벗을 수조차 없었다. 산악인의 꿈을 뒤로 한 채 새로운 삶을 살려고 노력했지만, 열 손가락이 없는 그에게는 굴삭기 운전면허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

높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도 김 대장은 좌절하지 않았다. 결국 그가 찾은 해답은 ‘내가 잘하는 걸 해보자’였다. 다시 산에 올랐다. 좌절과 방황의 시간은 길었지만, 불굴의 의지와 주위의 도움으로 다시 도전에 나섰다.

그는 1997년 유럽 엘브루즈(5천642m)·아프리카 킬리만자로(5천895m) 등정을 시작으로, 1998년 남미 아콩카구아(6천959m)·북미 매킨리(6천194m), 2007년 아시아 에베레스트(8천848m)·호주 코지어스코(2천228m), 2009년 남극 빈슨매시프(4천897m)까지 세계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손가락이 하나도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서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처음으로 이뤄낸 대기록이었다. 쉽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자신을 비롯해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르고 또 오르며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됐다.

김 대장은 ‘불가능이란 없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자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 세계 산악인들의 꿈이자 목표인 ‘히말라야 8천m 14좌 완등’이 바로 그것이다. 2006년 가셔브룸 2봉(8천35m)을 시작으로 히말라야 8천m급 등정에 나섰다. 히말라야 14좌 중 13좌를 차례로 오르면서 장애인으로서는 세계최초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14좌 완등 약속을 지켰다. 김 대장은 현지시간 7월 18일 오후 4시 58분(한국 시각 오후 8시 58분)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 고봉인 브로드피크(8천47m)를 정복하며 장애인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라는 역사를 완성했다. 15년 동안 달려온 대도전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14좌 완등은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이며, 비장애인까지 포함하면 세계에서 44번째, 국내에서도 일곱 번째 대기록이다. 특히 열 손가락이 없는 중증 장애를 극복하고 이뤄 낸 위업이어서 그야말로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브로드피크 등정 성공 후 하산하다가 현지시간 7월 19일 0시께 해발 7천900m 부근서 조난 사고를당했다. 한때 광주 지인과 위성전화가 연결되고, 현지 등반가들이 구조활동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려와 ‘무사 귀환’ 희망을 품게 했지만, 발견소식이 끝내 전해지지 않았다. 파키스탄과 중국 당국의 헬기 수색작업도 성과를 못내면서 가족들은 ‘수색 중단’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김 대장은 미래 꿈나무인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에도 앞장섰다.

전남도교육청과 함께 출범한 ‘히말라야 희망학교’가 대표적이다. ‘히말라야 희망학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을 포함한 중·고교생들에게 등반 등을 통해 호연지기를 길러주고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2018년 김 대장은 히말라야 희망학교 원정대와 함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를 등반했다. 네팔 포카라를 출발해 8천91m 세계 10위 봉인 안나푸르나가 바라다보이는 베이스캠프(4천130m)까지 올랐다.

이처럼 산악인으로서 김 대장이 걸어 온 길은 ‘역사’ 그 자체다.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을 실천한 지구촌의 ‘희망 영웅’이었다. 이제는 산에 오를 수 없는 몸이지만 김 대장은 히말라야의 별이 돼 우리들을 비추고 있다.
/안세훈 기자 ash@namdonews.com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