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고산지대 ‘계단식 논’ 향수(鄕愁) 불러 일으켜
베트남서 눈을 볼 수 있는 곳 ‘사파’
척박한 땅 효율적으로 일구기 위한
‘라이스 테라스’ 세계 관광지로 변모
중국 출신 조상…전통 지키며 살아
20대 초반에 이미 엄마가 된 가이드
“이른 세상살이 삶 응원하고 싶어”

김진환 작가
김진환 작가
마을 풍경
마을 길

 

누구나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는 방식은 다르다. 나는 여행을 통해 사람과 소통하며 학교와 직장에서 배우지 못했던 인문학적 지식을 쌓았다. 내가 하는 여행은 여행 전 그 나라 역사, 문학, 음악, 영화 등을 통해 학습하고 여행 중에는 확인하며 그들과 소통하고 여행 후에는 정리한다. 내게 여행은 혼자 출발해 내 내면의 다른 나와 함께 둘이 되어 돌아오는 순례 같은 여정이다. 55세 젊은 나이에 은퇴하고 세계를 떠돌았다. 독자들께 그동안 킬리만자로를 등반하고 북인도의 거친 땅을 두 발로 밟으며 누볐던 경험을 나누고 싶다.

일반적으로 많은 한국인은 베트남이 작은 나라로 알고 있으나 국토면적은 한반도에 1.5배이며 인구는 약 1억 명으로 남북길이가 3천 ㎞인 큰 나라이다. 전 국민의 평균 연령이 세계에서 가장 어린 약 30살 정도로 세계 모든 기업의 최고 관심 지역이다. 도시나 농촌 어디를 가도 북적이는 인파와 젊은이들의 생기를 느낄 수 있다.

사파는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눈을 구경할 수 있을 정도로 북쪽의 고산 지대로 원주민들이 아직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원시가 살아 있는 곳이다. 잃고 사는 고향 향수를 느끼고 싶다면 사파를 방문하라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 여행길에는 버스나 열차를 5시간 이상 타는 건 보통이다. 열악한 도로 환경과 남북 간 길게 뻗은 국토가 이동 거리를 길게 했다.

하노이에서 출발한 슬리핑 버스가 6시간을 달렸다. 우리에게 생소한 이 버스는 베트남인들 체형에 맞추어 3줄로 누워서 갈 수 있는 의자가 설치된 이층 버스로 몸짓이 큰 서양인은 불편한 구조였다. 탑승하면 바로 기사가 비닐봉지에 신발을 넣고 보관하며 휴게소에서는 그곳에서 제공하는 슬리퍼를 신고 화장실을 다닌다. 사파는 베트남 북부지방으로 중국국경 근처 지역이다. 우리에게 石林(석림) 지질공원으로 널리 알려진 윈난성 쿤밍 인근 지역이며 이곳 주민들 옷이며 사는 집이 그곳과 비슷해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이곳에 많은 조상이 중국 출신이라고 했다.

현대인은 개발 우선주의에 밀려 고향이 추억 속에 있기에 영혼 끝자락에는 항상 고향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이중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파가 그들의 잠자는 고향에 관한 영혼을 깨워 준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멀고도 험한 길을 달려 불편함을 감수하며 자신의 내면을 찾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다. 프랑스인이 최초로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건 유럽인들 시각이고 먼 옛날부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민족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척박한 이 땅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산허리를 질러 라이스 테라스라는 논을 만들었고 이것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것이다.

하노이가 3모작인데 이곳은 여름이 짧아 아직도 1모작이다. 14살부터 결혼을 시작해 20대 초반이면 이미 아이 출산을 마친다. 젊은 엄마에게 태어난 이 많은 아이 미래가 무척 기대되었다. 우리 중학생만 한 키에 관광객을 인솔한 현지인과 20대 미만에 가장이 되어 관광객을 상대로 행상하며 살아가는 어린 얼굴의 여자를 보고 있자니 내가 불편해했던 일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역시 행복은 추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찾는 대상이다.

주인이 내준 일명 ‘해피 워터’(베트남식 소주)를 마시며 남편이 자기를 찜해 이곳 풍습에 맞추어 데려온 일, 여성의 가사노동과 고부간 갈등을 자기 고백처럼 이야기했다. 이 여성의 삶을 응원하며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라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었다. 설날 풍습이 여성들에게는 종일 음식 장만, 설거지와 바느질로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2주 동안이라니 살인적이다. 거침없는 영어 표현에 어떻게 배웠냐고 묻자 홈스테이와 가이드 일을 하기 위해 미리 교육을 받았다고 했다. 그렇지만 말만 할 수 있지 읽고 쓰는 표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배웠던 영어 방식과 정반대였다.

21살에 남편과 두 아들의 엄마로서 세상을 짊어진 이 여인을 응원하고 싶다. 전통 복장을 곱게 차려입고 행복해하며 찍은 가족사진 속 풍경처럼 이 가족의 행복한 미소가 영원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이 여행을 통해 행복이 넘친 나를 발견했다. 이탈리아 출신 한 쌍, 김치를 좋아하는 프랑스 아가씨,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독일 아가씨, 그리고 남자 같은 체력을 자랑하는 네덜란드 여성과 저녁 식사 후 긴 밤을 보내며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인간다운 아름다움이 있었던 사파 시골 마을 하룻밤은 여행만이 내게 줄 수 있는 행복이다. 서로 배려하며 듣지 못하면 천천히 설명해 주는 친절함이 넘친 밤이었다. 안개가 마을을 집어 삼킬듯한 하얀 구름 속을 걸었던 어제와 달리 새벽녘 마당에서 구름 사이 떠 있는 별빛을 보며 네팔의 촘롱에서 밤새며 쏟아지는 별빛 속 황홀경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파의 아침은 대지의 기운을 받은 정기가 되살아나는 것 같다. 산하나를 지렁이 선을 긋듯 지형에 맞춰 계단식 논을 만들어 삶의 터전을 일군 이들의 조상이 한없이 존경스럽다. 사파가 자본에 종속되어 본질을 잃은 촌락으로 변치 말고 10년 후 내가 다시 찾을 때 오늘 그 모습으로 나와 마주하길 간절히 응원한다.
글·사진/김진환 건축가

사파 광장 상징물
사파 시내 상점
민박집 아침상
현지 안내인
마을 풍경
계단식 논
계단식 논
계단식 논
동네 아주머니
동네 가게
사파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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