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년 이래 점령군들 ‘본거지’서 ‘수도’로 변신
하노이 중심 광장에 호치민 묘지 축
국회의사당·박물관·주석궁 등 자리

혁명박물관, 식민지 시절 관련 전시
독립 향해 흘린 피·땀…후대에 전달
전시 둘러보며 ‘양분된’ 한국 현실 자각
시내 곳곳 프랑스식 건축물 ‘눈에 띄어’

호치민 묘지
국회의사당
박물관

아들과 함께 여러 해 동안 여행을 했다. 아들이 어려서 발견한 발달성 장애로 의사소통이 어렵지만 조기 교육을 꾸준히 받은 결과 어느 날부터 엄마랑 떨어져 나와 함께 여행할 수 있어 이탈리아, 캐나다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그래서 부자지간만이 알고 있는 소중한 추억이 있다.

이번 여행도 둘이 베트남에서 2주 머문 기록이다. 호텔에서 만난 네덜란드 친구와 빈센트 반 고흐와 히딩크 감독을 주제로 이야기 중 그 친구가 아들을 보고 금방 알아본다. 스포츠를 통해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는 선생님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며 아들과 몇 가지 몸동작을 통해 금방 친해졌다. 그 친구를 만났던 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인 하노이로 여행을 떠나본다.
 

네덜란드 친구
거리 이발사
혁명박물관 학생과 서양인
호치민 판화
남부로부터 온 흙 조각상
길거리 음식
광장
배달부
자전거 릭사
도로통제 야시장 준비중
세 과부
결혼화보 촬영중

1010년 베트남의 왕조가 도읍지로 삼은 뒤 여러왕조와 19세기 후반부터 인도차이나를 지배한 프랑스도 이곳을 수도로 정했다. 1940~1945년 인도차이나를 점령한 일본군도 하노이를 본거지로 삼았으며, 1945년 9월 베트남 독립 후 수도가 되었다.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된 뒤에는 하노이는 공산 베트남의 본거지가 됐으며 1976년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됐다.

현재 하노이 중심에는 호치민 묘지를 축으로 국회의사당, 박물관 그리고 주석궁이 자리 잡고있다. 특히 묘지와 주석궁에서는 보안상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으며 관광객은 눈으로만 볼 수 있다. 광장을 벗어나 호수 입구에 이르면 꽌탄도교사원이 밖엔 빨간 깃발 날리며 안쪽은 중국식 향을 피우는 사람들로 연기로 가득했다. 무언가를 위해 간절히 빌고 있는 현지인들을 보니 신이란 존재는 시 공간을 떠나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 수 있었다.

이른 아침 혁명박물관을 찾았는데 입구에 프랑스 식민지 시절 고문했던 도구를 전시한 공간에 학생들이 바닥에 앉아 선생님의 역사 가르침을 받는 사이로 서양인이 관람하는 모습이 내게 기이하게 보였다. 저 서양인은 백인들의 범죄 행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리고 베트남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상처받았던 역사 중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둘 사이의 긴장감이 내 눈에는 기이하게 보였다.

외세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의 과정을 잘 정리해 후대에 길이 남길 수 있는 공간이었으며 이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세계 최고 강대국이라는 프랑스와 미국을 물리친 과정을 보니 민족의 자유와 독립은 하늘에서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었다. 지치지 않고 싸워온 민중들 피땀의 보상이었다. 이들이 부러웠다.

우리는 아직도 반으로 갈라졌고 청산하지 못했던 역사가 부메랑으로 다시 우리 심장을 겨누고 있는 현실에 고개를 떨굴 뿐이다. 혁명박물관을 나오면 바로길 건너에 역사박물관이 있다.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그림과 조각의 소재는 아직도 전쟁이 중심이며 잊을 수 없는 상처가 깊게 자리하고 있어 작품을 보고 있는 동안 가슴이 아팠다. 하루 빨리 치유되어 행복한 삶과 미소가 주제인 예술로 발전하길 기도했다.

시내를 걸으면 많은 프랑스식 건축물을 볼 수 있다. 그중에 오페라 하우스가 가장 돋보였다. 하얀색 돔형의 아담한 건축물은 식민지 시대 백인들이 원주민 수탈을 통해 자신들 문화적 욕구 충족을 위해 지은 건축물일 것이다. 지금도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한 민중은 세계각지에서 비슷한 비극을 겪고 있음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더 많은 그림과 조각작품은 Vietnam Fine Arts Museum에 있다. 하노이 제1의 미술관 명성에 걸맞게 입구에 그림을 거래하는 가게가 집단 성업 중이다. 미술관은 3층 규모로 인상적인 조각이 있다. ‘남부로부터 온 흙’란 제목으로 남쪽이 고향인 가족이 전쟁 중에 찾아볼 수 없는 고향의 흙 한 줌을 보며 향수를 달래는 모습이었다. 38선 갈라진 우리 모습이 겹쳐 한동안 발을 뗄 수 없었다. 3명 여자가 전쟁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각자의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그림 앞에서는 내 일처럼 설움이 복받쳐 올라 대상이 누군지 모를 분노가 치밀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했던 국가의 국민으로서 베트남인들 보기가 참으로 미안하고 창피했다.

글·사진/김진환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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