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우옌 후예 광장…낮엔 적막함·밤엔 해방구
노트르담 대성당…고딕식 구조에 특이한 내부

1975년 전까지 ‘사이공’이라 불려
위성도시 병합후 ‘호치민 특별시’로
지명, 북베트남 초대 대통령서 유래

넓은 광장…남베트남 통일 궁 ‘멋져’
헬리콥터 대기장 등 전쟁 흔적 남아

‘3층 규모’ 호치민 전쟁 박물관서
‘평화가 답이다’ 대명제 깨달아

시청 인민위원회
시청 인민위원회

베트남 호치민은 17세기 후반 중국 국경지대에서 남하해온 베트남인에 의해 개척이 시작됐다. 당시는 작은 촌락으로 습지가 많았으나, 프랑스인들이 점령한 후 이곳에 배수시설을 설치해 전형적인 식민도시로 만들었다.

1908년 시로 승격된 뒤부터 급속히 발전하였으며, 프랑스풍 관청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이 건축됐다. 또 남부 메콩강 삼각주의 쌀 북서부의 고무 수출을 위해 항구를 축조했다. 1954년 베트남이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남베트남(월남)의 수도가 되었으며 인구도 급격히 증가했다.

북동쪽 식물원에서 남서쪽 옛 대통령관저에 이르는 부근은 도로가 반듯하게 교차하며 푸른 가로수가 늘어선 아름다운 풍치로 ‘동양의 파리’라고 했다. 이 나라 정치경제의 중추적 기능이 집중돼 있었다.
 

호치민 동상
호치민 동상

 

1975년 북베트남(월맹)이 월남을 통일할 때까지 사이공(Saigon)이라고 불렀으나, 1976년 주변의 위성도시를 병합해 호치민 특별시로 개칭했다. 지명은 북베트남 초대 대통령 호치민에서 유래했다. 호텔 바로 앞 그늘이 없는 응우옌 후예(Nguyen Hue) 광장은 낮에는 적막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어슴푸레 찾아오자 광장은 삽시간에 젊은이들과 지역민들로 가득찼다. 각종 포퍼먼스과 공연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귀와 눈을 즐겁게 했고,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 손색이 없었다. 지역 젊은 친구들 해방구였다. 이 광장은 구도심과 신도시를 가르는 강까지 이어져 있고 반대쪽에는 호치민 동상이 있어 현지인들 참배 장소로 외국인에게는 사진을 찍는 장소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동상 뒤로는 마치 호치민을 지키는 것처럼 시청 인민위원회 청사가 노란색으로 자리 잡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노트르담 대성당

 

일요일을 맞아 아들과 함께 미사를 드리러 노트르담 대성당을 찾았다. 프랑스인들은 식민지 땅에 많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었다. 그래서 가끔 파리에 있는 대성당 이름과 같아 혼선이 오곤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 식민지배를 받았던 어디를 가도 노트르담 대성당 건물은 쉽게 볼 수 있다.

성당은 이 시에서 가장 큰 규모였고 미사를 프랑스, 영어, 베트남어로 정해진 시간에 봉헌하고 있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처럼 고딕식 구조를 고집해 지었으며 특이한 내부 구조는 제대 벽으로부터 성가대 제대 그리고 회중석이 있어 우리와 많이 다른 구조로 배치돼 있다. 이곳 역시 젊은이들은 찾기 어려웠고 나이 지긋한 성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성당 옆으로 프랑스식 멋진 우체국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유럽전통의 돔형지붕에 내부는 문화공간과 쇼핑센터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방문했던 건축물 중 베트남 통일 궁이 가장 뛰어났다. 넓은 광장 같은 마당이 펼쳐져 있고 열대지방 직사광선을 막기 위해 외벽에 설치한 구조물이 복도를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시원하게 했다.

이 건물은 통일전 남베트남 대통령궁으로 전시체제에 군을 통제할 수 있는 시설로 미군과 함께 수시로 회의할 수 있는 공간이 별도로 준비돼 있다. 지하에는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지시할 수 있는 벙커로 24시간 전장 소식 모니터링이 가능한 곳이다.

 

 

 

 

전쟁 박물관
전쟁 박물관

 

사이공이 함락되던 시점에 긴박하게 움직였을 이 곳 근무자들을 생각하니 지나간 역사가 부질없어 보였다. 옥상에는 바로 이륙할 수 있는 헬리콥터가 대기하고 있고 3층은 대통령 가족이 거주할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이다. 이곳에서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어 관람하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전쟁으로 희생한 이름 없는 영웅들은 누가 위로해줄까? 호치민 전쟁 박물관이 전쟁의 참상을 설명하고 있다. 얼마나 참혹한 전쟁의 흔적이길래 그곳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바로 삭제하겠다고 창이 뜬다.

이곳은 인간이 전쟁을 시작하면 어떻게 악마로 변하는지 한 눈에 보여준 곳이다. 3층 규모에 수많은 사진과 전쟁물자가 생생하게 그 날을 우리에게 기억시키고 있다. 참전했던 국가의 국민으로 베트남인들 보기가 창피스럽다. 함께 관람한 많은 서양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차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광기로 가득 찬 우리 지도자가 이곳을 방문하면 어떤 생각을 가질지 무척 궁금했다. 본능적으로 갈등과 전쟁을 인간의 고유 특성이라 하나 그 결과는 참혹함과 후회만이 우릴 지배할 것이다. 베트남을 통해 ‘평화가 답이다’란 명제를 분명하게 깨달은 여행이었다.

글·사진/김진환 건축가

 

 

 

 

송사이 강
송사이 강
광장의 퍼포먼스
광장의 퍼포먼스
우체국 건물
우체국 건물
베트남 통일궁 앞에 선 김진환 필자와 아들.
베트남 통일궁 앞에 선 김진환 필자와 아들.
통일궁 내부
통일궁 내부
책방 거리
책방 거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