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남(남도일보 주필)

 

오치남 남도일보 주필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 중심에 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탈당 및 상임고문 사퇴 선언 후 24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12월부터 파리경영대학원(ESCP) 방문교수 자격으로 프랑스에 머물렀던 송 전 대표가 당초 예정된 7월보다 앞당겨 귀국한 것은 당 안팎의 거센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됐으나 연루 의혹을 부인하며 조기 귀국 요구를 거부했던 그가 끝내 백기를 든 모양새다. 송 전 대표도 ‘단말마(목숨이 끊어질 때의 고통)의 4월’을 보내고 있는 당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현재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에다 ‘2021년 전대 돈 봉투 의혹’까지 전·현직 대표의 ‘쌍끌이 악재’로 카오스(혼돈)에 빠져 있다. 당 역사상 최악의 사태를 극복하지 못하면 내년 4월 제22대 총선은 없다. 169석의 거대 야당 간판을 내려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송 전 대표 귀국 후 검찰이 바로 그를 출국금지하는 등 ‘돈 봉투 의혹’ 수사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하지만 수사 결과에 상관없이 민주당 전대 과정에서 수천만 원이 뿌려졌다는 의혹 자체만으로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미안해요 엄마, 2만 원만 보내주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등진 20대 청년 등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피맺힌 절규. 생활고에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일가족. 점심 밥값도 버거운 봉급생활자들. 치솟는 물가에 장바구니를 들고 나가기 두려운 주부들. 이태원 참사 등 대형 인명 사고를 부른 허술한 사회 안전망. 민생은 내팽개치고 끝없는 대립과 정쟁만 일삼는 정치권에 대한 배신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돈 봉투 의혹’과 관련, 윤관석 의원과 이정근 전 사무총장의 대화 녹취록에 ‘호남 자극성 발언’이 나오면서 ‘텃밭’ 민심이 들끓고 있다.

이런 대형 악재 속에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은 송 전 대표는 전남 고흥군 대서면 깡촌 태생이지만 6남매 중 5남매가 사법·행정·외무고시에 합격한 이른바 ‘수재 집안’ 출신이다. 5선 국회의원이자 인천광역시장을 지냈다. 영어·일어·불어·중국어·러시아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보기 드문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그의 정치 인생에 크고 작은 굴곡이 없지 않았으나 20여 년 전 자신의 후원 포럼인 ‘동서남북’이 결성될 정도로 든든한 ‘후방 지원 세력’을 구축하면서 대권의 꿈을 키워왔다. 사석(私席)에서 본인 스스로 차기 대선 민주당 후보가 반드시 되겠다는 야심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귀국해서도 저로 인해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제가 책임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도 ‘돈 봉투 의혹에 대해 잘 모른다’는 기존 입장엔 변함이 없었다. 귀국에 앞서 1997년 입당 후 26년간 ‘사랑하는 민주당’을 떠난 적이 없다던 송 전 대표는 스스로 탈당 및 상임고문 사퇴를 결심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민주당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정치적 명예회복을 다짐했다. 정계 은퇴 압박에 선을 그은 셈이다.

사실 송 전 대표는 이미 당 대표로서 지난해 3·9 대선 패배와 6·1 지방선거 서울시장 낙선 등을 책임지고 정계를 떠나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렸다. ‘86세대 맏형’이란 정치적 부담감과 함께 우람한 체구에다 우직하면서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붙여진 별명인 ‘황소’ 이미지는 되레 그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이제 송 전 대표는 마지막 정치 생명을 걸고 검찰과 한판 승부를 벌여야 한다. 아직도 1억8천만 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사는 등 물욕(物慾·재물을 탐내는 욕심)과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진 그가 돈 봉투 의혹 사건 수사에서 ‘검찰의 칼날’을 비켜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당 내에서도 신정훈 의원이 전대 정치자금 9천400만 원 살포 의혹에 대한 169명 의원 전수조사와 ‘진실 고백 운동’을 제안했다. 그러나 누가 자기 목에 방울을 달겠는가. 게다가 검찰 수사에서 ‘돈 봉투 의혹’ 실체가 드러날 경우 민주당은 더 깊은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국민 여론도 민주당과 송 전 대표에 부정적이다. 비단 우리 당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일부 의원의 오판에 대한 반감과 돈 봉투 의혹과 무관하다는 그를 믿지 못하겠다는 기류가 깔려 있다.

‘돈 봉투 의혹’ 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돼 ‘영욕의 정치인’으로 정치 인생을 마감할지, 모든 난제를 이겨내고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바람처럼 ‘자생당생(自生黨生·자신도 살고 당도 산다)’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송영길 전 대표 자신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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