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현(재미 피아니스트 겸 작가)

 

이인현 재미 피아니스트 겸 작가

사람들과의 첫 만남에 꼭 빠지지 않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그들의 피아노 학원 경력이다. 신기하리만큼 필자와 인사를 했던 대부분의 사람은 피아노 학원을 다닌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단지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들이 바이엘을 끝내고 체르니 몇 번까지 쳤다는 이야기를 빠짐없이 하곤했다. 뒤이어 지금은 악보조차 읽지 못한다며 피아노 칠 줄 아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말을 꼭 덧붙였다.

필자와 동년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주어진 피아노 교재는 오직 바이엘과 체르니가 만든 책이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의 책이 가르치는 선생님에 따라 학생에게 소개되지만 우리 때는 그러지 못했다. 바이엘과 체르니가 만든 교재는 음악이나 피아노에 대한 흥미유발보다 손가락의 기술적인 면을 주로 강조하는 책이기에 피아노를 처음 접한 아이들에게 피아노가 지루한 악기라는 인식을 주기엔 충분했다. (필자 역시 그랬다.) 또한 주입식 레슨과 강압적인 연습을 요하는 피아노 학원들의 스타일에 어린 아이들은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피아니스트가 된 이후 아이들을 가르칠 때면 항상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우리는 바이엘과 체르니가 만든 책으로 피아노를 배워야 했는지 말이다.

우리가 피아노를 처음 배울 때 만났던 페르디난드 바이엘은 1803년 독일에서 태어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그는 주로 합주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거나 사람들이 치기 쉬운 음악을 작곡하는 음악가였다. 그가 작곡한 많은 곡들 중에 현재까지 알려진 건 우리가 잘 아는 피아노 교재이다. 이 책은 1860년에 출판되었으며 피아노를 갓 배우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 당시 피아노 교육에 대한 책을 만드는 작곡가가 흔하지 않았기에 이 책은 많은 피아노 교육학 부분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많은 나라의 피아노 교육의 근간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에 이 책이 처음 소개된 건 일제 강점기 시절이었으며, 그 이후 피아노 학원계의 교과서로 자리를 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은 독일에서 더이상 쓰이지 않고 있으며, 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1860년에 만들어진 교재가 21세기 교육의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필자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동안 피아노 교육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의심없이 교재로 계속 사용되어 왔다는 게 피아니스트로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바이엘 교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피아노 교재가 바로 체르니 교재이다. 카를 체르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이자 교사 및 작곡가이다. 아빠를 통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피아노 연주에 놀라운 두각을 나타내며 10살 때 베토벤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 피아노 연주 뿐 아니라 작곡, 그리고 가르치는 영역까지 모든 부분에 큰 재능을 가진 체르니는 15살부터 레슨을 시작했다. 베토벤으로부터 배운 음악과 여러 음악가의 스타일을 익힌 그를 찾는 학생은 꽤 많았다. 우리가 잘 아는 낭만 시대의 거장이라 불리는 프란츠 리스트 역시 그가 가르친 제자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을 가르치면서 그가 만든 교재가 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체르니 교재, 바로 연습곡이다. 그가 만든 수많은 연습곡 중에 4개의 곡이 100번, 30번, 40번, 50번으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소개 되었다. 이 또한 일제 강점기 시절, 바이엘과 같이 우리에게 전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세상이 변화하면서 아이들 교육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에 발 맞추어 음악 교육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도 계속 되고 있다. 그들은 단지 피아노만을 위한 교재를 넘어 음악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있으며 피아노를 통해 음악에 관심을 유도하고 음악의 기초를 다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각자 다른 음악학자들이 만든 책이기에 책마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은 학생이나 부모가 이 모든 책을 섭렵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들을 분석하고 책을 선택하는 건 선생님의 몫이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귀찮을 수 있지만 미래가 밝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되어진다. 만약 필자가 과거에 바이엘과 체르니 교재로 흥미롭게 피아노를 배웠다면 과거 유산이라 말하며 추천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일인으로서 변화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음악이 곁에 있다면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래서 처음 음악을 접하는 피아노 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들이 음악을 즐겁고 신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선생님의 몫이 매우 크다고 본다. 좀 더 가볍고 즐거운 책으로 아이들의 음악 생활 기초를 만들어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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