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현(재미 피아니스트 겸 작가)

 

이인현 재미 피아니스트 겸 작가

그날도 그렇듯 오전 6시에 일어나 클래식 라디오를 켜고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득 내 귓가에 들리는 ‘세이지 오자와 (Seiji Ozawa)’의 죽음 소식에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 앉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재빨리 뉴욕 클래식 라디오로 채널을 돌렸다. 역시나 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정도면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법도 하건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컴퓨터를 켜고 구글창에 그의 이름을 적었다. 많은 신문사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세이지 오자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좀 더 깊은 공부를 해보겠다고 미국에서 석사공부를 시작하던 그 때는 참으로 외로웠다. 열정과 패기가 가득했던 20대 중반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머리도 식히고 기분전환도 할 겸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다.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미국 3대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으며, 그 당시에는 내한(來韓)하는 게 쉽지 않았기에 그들의 공연을 직접 보는 건 음악 공부를 하는 나에게 큰 영광이었다. 연주 전 자리에 앉아 프로그램을 살펴보던 중에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일본사람 이름이었다. 프로그램 첫 장에 보이는 ‘세이지 오자와’라는 이름을 보았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이 단체를 이끄는 음악가 중의 한 명이 동양인이라니…. 그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갑자기 자신감이 생겼다.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에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의 등장이었다. 나는 그렇게 그와 첫 만남을 가졌다.

세이지 오자와는 1935년 중국 선양에서 태어났다. 치과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선양과 베이징에서 거주하다 1941년 그의 가족은 그들의 모국인 일본으로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피아노를 시작했지만 지휘에 큰 관심을 가졌던 그는 지휘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인 지휘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25살에 프랑스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그의 이름을 유럽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 콩쿠르의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찰스 먼치(Charles Munch)의 주선으로 그는 미국에서도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의 첫 연주는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였다. 그렇게 그와 그 단체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의 출중한 지휘 실력은 번스타인, 카라얀 등 당대 내노라 하는 지휘자들의 눈을 번쩍이게 만들었고, 그들과의 지휘공부와 연주를 통해 그는 미국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많지 않았던 동양인 음악가 중 한 명이었고, 특히 지휘자로서는 거의 유일했기에 그의 거취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었다. 그는 자신을 처음 미국에 발을 들이게 해준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음악감독으로서 정식 계약을 하였고 그의 이러한 결정은 그를 위해서도 단체를 위해서도 윈-윈 결정이었다. 그는 1973년부터 2002년까지 보스톤 심포니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미국에서 탄탄하게 만들었고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오스트리아 빈 국립 오페라단의 음악 감독으로서 미국 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그의 입지를 탄탄하게 만들었다. 그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건강이 악화되기 전까지 음악활동의 끈을 계속 이어갔으며, 거취는 일본이지만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에서 음악활동을 해 나갔다.

그는 동양인으로서 그 어떤 서양연주자보다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 냈다. 미국 내 보수 연주 단체 중에서도 손꼽히는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의 29년간의 생활은 그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입증해주었다. 나는 그가 살아 생전에 연주하는 걸 직접 눈으로 본적은 없지만 내가 공부하던 시절 프로그램에 적힌 그의 이름만으로 동양인인 나에게 큰 자부심을 주었다. 그가 죽기전에 꼭 그의 연주를 보고싶다던 나의 소원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그의 연주 영상을 볼 때면 절제와 열정 속에서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의 모습에 아직도 큰 영감을 얻고 있다.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적절한 밸런스를 지켜내며 자신만의 색깔을 분명히 보여주는 그의 지휘에서 진정한 음악의 힘을 느낀다.

그가 죽고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도 그의 연주 영상을 많이 찾아보았다. 유행과 트렌드가 클래식 음악에도 생기면서 신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요즘, 그의 영상은 진짜 우리가 추구하는 클래식 음악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혹시 기회가 되신다면 유투브에서 ‘세이지 오자와’라는 이름을 검색해보고 그의 연주를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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