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단편소설 ‘4월의 상가(喪家)’-13<完>

시골 친구들의 막욕 섞인 대화가 이렇게 정감 어린 것을…. 선엽은 친구들의 대화에서 어린 시절 잊고 지낸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자정이 지나 시침이 한시를 알리자 문상객이 거의 빠져나가고 상주(喪主)의 친구들만 남았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친구들은 삼삼오오 상가 옆 빈방에 덕석이 놓인 윷놀이 장소로 모여 들었다. 상가의 윷놀이 판은 선엽이 자란 고향만의 특이한 풍속이었다. 망자(亡者)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기 위한 지인들의 진심 어린 몸부림이었다. 친구들은 이곳이 상가(喪家)란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 채 서로 편을 가르며 윷놀이를 즐겼다.

어느덧 슬픈 상가의 모습은 사라지고 망자의 마지막 길, 이승에서 못다 한 한(恨)을 달래주기라도 하듯 한바탕 흥겨운 윷놀이를 통해 망자를 배웅하고 있었다. 간혹 이런 풍속이 없는 지방에서 온 문상객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이 지방만의 의식이란 사실을 전해 듣고, 윷놀이 굿판에 모인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곤 했다.

윷판이 펼쳐지고 이내 적막한 상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시끌벅적한 친구들의 굿판이 상가의 새벽을 깨우듯 시간은 어느덧 새벽을 향해 가고 있었다. 선엽은 눈을 돌려 상주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상국은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죽은 아내의 영정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초췌한 얼굴로 일어나 영정 앞에 꺼져가는 향을 피우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다 선엽은 몸을 일으켜 상주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겨 상국과 마주 앉았다.

“상국아! 네 잘못이 아니야! 자책하지 말고 아마 먼저 간 제수씨도 너에게 미안하게 생각할 거야. 상국아.”

“그래도…. 내가 알았더라면 이 같은 악몽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는 자책하고 있었다. 상국은 자신을 모질게 채찍질하며 죽은 아내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에서인지 영정사진을 향해 눈물을 글썽이며 무거운 침묵 속, 무언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새벽녘에서야 선엽은 상국이 있는 상가(喪家)와 이별을 고(告)하고 서울행 첫차에 몸을 실었다. 어느새 동쪽 하늘 밑, 지평선(地平線) 너머 여명(黎明)이 밝아 오고 있었다. 나이 오십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느끼자, 선엽은 자신을 향해 반문했다. 인생은 어디로 향해 가고 있을까! 끝은 어디로 가는가! 머릿속에서 끝없이 꼬리를 문 인생 여정을 생각하다 문득 버스 창밖을 바라보자, 붉은 태양이 4월의 대지(大地)에 생명의 근원을 뿌리며 내일의 태양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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