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주문공 후예, 고구려 때 한반도 동래
형옹 시조·형병 중시조로 세대 이어
형세영 도암 입향 후 500년 가문 역사
민요마을 가꾸고 세계유산 보존 힘써

세계적 문화유산 보존한 뿌리깊은 가문

종가가 있는 도장마을 전경
종가가 있는 도장마을 전경

전남 화순 도암의 도장마을은 청동기시대 고인돌유적(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이 현존하며 밭노래 등 민요 80여곡이 전승돼 화순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민요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도(道)와 의(義)를 숭상하며 기록물을 잘 보존해 왔는데, 그 중 1972년부터 77년까지 마을에서 주고받은 문서 620건 5,317쪽이 UN 빈곤퇴치에 교훈을 주는 새마을운동의 현장 기록물로서, 유네스코가 현대생활사의 대체불가능한 가치를 인정해 2013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새마을운동 기록물’이다. 이 마을에서 5백년을 세거하며 유형·무형의 문화유산을 지켜 온 화순 진주형씨(晉州邢氏) 병사공파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주나라 문공 후예 형대보 동래
형씨는 중국 하북성 형태시에 존재했던 춘추전국시대 형나라에서 비롯된 성씨로서 주나라를 세운 무왕의 동생 주 문공 단(통칭 ‘주공’)의 후예다. 주공은 어린 조카 성왕을 위해 섭정해 건국 직후 정국 불안을 안정시키고 장성하게 된 성왕에게 권력을 돌려줬다. 성왕은 그의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주공의 넷째아들 정연을 형후에 책봉해 형나라를 세우게 했다. 정연의 후손들은 형나라 형씨의 성을 쓰게 됐다.
주공 36세 형옹의 9대손 형대보는 당태종 때인 634년 고구려 영류왕의 초청을 받은 8학사(남양홍씨, 장흥위씨 등) 중 한사람으로 우리나라 유교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벼슬은 삼중대광보국을 지냈다. 형대보의 후손들은 형옹을 한반도로 동래한 형씨의 시조로 모시고 경기도 남양에 세거했다.

◇왕조마다 충신·청백리 배출
한반도의 형씨는 족보를 발간하면서 고려 이부상서를 지낸 형병(850~?)을 중시조로 모셨다. 그의 아들 형적(875~928)은 고창 등에서 견훤의 후백제군을 격파한 개국공신으로 신호위상호군을 역임했으며 임존성(충남 예산) 전투에서 전사했다. 3세 형순(895~?)은 예빈경으로 고려 건국을 도왔고 문장과 지모로 왕건을 보좌하여 밀직사에 추봉되었다. 5세 형연기(965~?)는 검교상서 우복야를 지냈다. 13세 형방은 문과급제해 문하시중평장사에 올랐고, 진주 반성에 정착했다. 그의 손자인 15세 형공미는 문하시중상서좌복야를 지내고, 1280년 수군을 이끌고 왜구 정벌에 공을 세워 지밀직사사로 진양군에 책록됐다. 진양이 진주로 개칭됨에 따라 형공미의 후손들은 진주를 본관으로 세계를 잇게 된다.
18세 형군철(1421~1483, 호는 묵암)은 진사시에 합격하고 무과에 급제한 문무겸장으로서 강계부사를 거쳐 충청병사를 역임하고 나주 남평 화지촌(우산리, 차산)에 정착했다. 그가 병사공파를 열었다. 21세 형자관(1488~1546)은 생원시에 합격해 중부참봉, 남평현감, 하양현감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로서 임금의 포상을 받았다. 그의 동생 형자홍(1495~1567)은 무과 급제해 군기시주부, 벽동군수를 역임했다.

◇고문서 500년 보존·뿌리찾기 힘써
22세 형세영(1514~1581, 호는 도곡)은 조광조, 양팽손과의 인연으로 도곡정을 짓고 효우를 근본으로 도학을 본보임으로써 유림의 존경을 받아 경릉참봉에 발탁됐으나 사양했다. 그가 진주형씨의 1519년(기묘) 도암 입향조다. 24세 형운창(1555~1597)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창의해 전라우수사 이억기 막하에서 공을 세우고 칠천량 해전에서 순절했다. 선무원종공신에 올랐고 충북 보령 호국사에서 추모한다. 25세 형승윤은 1646년 화순 현감을 역임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27세 형수화(1672~1750, 호는 회옹)는 영조의 특명으로 가자를 받아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에 임명됐고, 28세 형극태는 18세기 화순의 대표 문장가로 알려졌으며, 33세 형학문(1825~1906, 호는 죽은)은 가선대부 칙명을 받았다.
2019년으로 입향 5백년을 맞은 종가는 병사공파 문중 구성원들과 합심해 도장마을 입구에 기념비를 세우고 가문의 유래와 역사를 대외에 알렸다. 대종회는 2018년 중국 저장성을 방문해 형씨족보를 열람하고 형씨의 동래 연원을 확인하는 등 족보 내용 고증과 뿌리찾기에 나섰다. 도장마을에 세거하는 진주김씨 가문과 더불어 민요 전승, 자료 보존 등 미풍양속의 역사가 넘쳐 흐르는 전통마을로 가꾸고 있다. 형씨와 김씨 가문이 주축이 됐던 마을공동체 활동자료 중 1970년대 자료 620건이 ‘새마을운동 기록물’로서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을 얻었다. 이로써 2000년 등재된 화순 도암 고인돌과 더불어 ‘1동 2세계유산’을 자랑하는 도장마을이 됐다. 비록 종택과 사당 등 건축 유적이 노후 멸실됐지만 1444년 세종대왕으로부터 형군철(병사공)이 받은 교지를 비롯한 고문서를 보존하고 마을의 전통문화 전승에 앞장서면서 선조가 남긴 가훈 ‘효우시례’(孝友詩禮 효도·우애하며 시와 예를 다하라)를 지키고 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종가 안채
종가 안채

 

진주형씨 입향 5백년 기념비
진주형씨 입향 5백년 기념비
도장마을 표지석
도장마을 표지석

 

종가가 있는 밭노래마을 안내도
종가가 있는 밭노래마을 안내도
도장 밭노래마을 입구 표지판
도장 밭노래마을 입구 표지판
교지보관함
교지보관함

 

형군철 진사시 합격 교지 / 종가후손 형광석 사진제공
형군철 진사시 합격 교지 / 종가후손 형광석 사진제공

 

형군철 강계병마절제사 임명 교지
형군철 강계병마절제사 임명 교지

 

형군철 충청도병마절도사 임명 교지
형군철 충청도병마절도사 임명 교지

 

형용인 진사시 합격 교지
형용인 진사시 합격 교지
형자관 생원시 합격 교지
형자관 생원시 합격 교지

 

형자관 남평현감 임명 교지
형자관 남평현감 임명 교지
하양현감 형자관에게 주어진 특몽(포상) 교지
하양현감 형자관에게 주어진 특몽(포상) 교지
형자관의 청백을 특몽(포상)한 중종의 교지
형자관의 청백을 특몽(포상)한 중종의 교지
형옹 초상. 한반도 형씨는 형옹을 시조로 모신다. / 종가후손 형광석씨 이미지 제공
형옹 초상. 한반도 형씨는 형옹을 시조로 모신다. / 종가후손 형광석씨 이미지 제공
주문공 초상. 형씨는 중국 주나라 문공의 후예로서 그의 아들이 세운 형나라로 인해 형씨 성을 사용한다. / 종가후손 형광석씨 이미지 제공
주문공 초상. 형씨는 중국 주나라 문공의 후예로서 그의 아들이 세운 형나라로 인해 형씨 성을 사용한다. / 종가후손 형광석씨 이미지 제공
형수화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임명 교지
형수화 절충장군 행용양위부호군 임명 교지
형학문 가선대부 임명 칙명 교지
형학문 가선대부 임명 칙명 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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