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잠적한 이기반의 동선도 체크하기 바란다.”

“이기반이라뇨?”

“김민배 친구 아닌가. 그 자가 잠적한 지 5개월이 지났다. 그의 뒤를 캐는 일은 임자도 간첩단 사건과 같은 대어를 낚을 수 있는 또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 간첩단 사건으로 자결한 김한범과 연루된 놈들이다. 이들을 적발하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주요 사건들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하면 할 수 있다.”

조장 김도창은 몇 해 전 임자도 간첩단 사건 일망타진 때 수사관으로 관여했다. 그 중 김한범을 맡아 집중 다구리하며 자백을 받아냈었다.

혹독한 고문에 의한 자백이지만 본인이 진술했으니까 틀린 것은 아니다. 김한범은 황해도 연백에서 6·25가 터지자 월남했고, 임자도와 해제면-운남면-안좌도로 들어가 살면서 지방 고첩들과 접선했다.

그 중 해제면 보천동에서 머슴살이하면서 이기반의 어린 동생 이기호에게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가르쳐주며, 사상 교육을 전파했다. 그것만으로도 묶는 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그 뿌리가 남아있다고 보는 것이다.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데, 그런 정도의 증거라면 훌륭하게 한 건 만들 수 있다.

더군다나 김한범 진술의 뼈대가 엄연히 증거로 남아있다. 각본대로 꾸민 것이라 할지라도 유일의 진술서가 증거로 남아있으니 이것을 여러 각도로 활용하면 된다. 허위 진술한 것이라 해도 그가 죽었으니 이를 허위라고 증명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물론 그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한 것도 밝혀낼 방법이 없다. 가난하고 외롭고, 일가붙이 하나 없는 것이 더욱 그의 의문사를 밝혀낼 수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 억울함을 덜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끝까지 살아남아서 좋은 세상이 와야 하는데, 그는 좋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생을 마감했다. 야만과 광기의 희생자라고 해도 누구 하나 인정해주지 못하는 사람인 것이다. 일가붙이 하나 없는 것이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에 더 노출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만 하늘이 알 뿐이다. 그리고 오늘날 그의 진술만이 유일한 삶의 족적이 되어버렸다. 왜곡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유일의 그의 삶의 이정표인 것이다.

김도창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말했다.

“내 판단으로는 이기반이 잠적하고, 그 동생이 고3 재학 중이다. 그 동생을 체포해 이기반의 동선을 캐고, 죽은 김한범과의 관계를 엮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면 의외로 큰 건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수사관 박이 받았다. 박도 역시 김도창과 함께 임자도 간첩단 사건 수사팀의 일원으로 참여한 신분이었다.

“글쎄요, 다른 경로를 뚫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뭔데?”

“삼학도에 들어가있는 송숙자인지, 송숙미인지의 그년 뒤를 캐는 것이 더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쪽이 더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무슨 냄새?”

“보안법 위반 사건을 엮는 데는 약발이 있습니다. 김한범과의 연루를 엮을 수 있습니다. 그러는 일방으로 집장촌의 생태계를 빠삭하게 궤뚫는 것이지요. 우범지역이면서 의외로 많은 시국사건들이 잠복해있을 수 있습니다.”

“바른 지적이다. 그럼 수사관을 증원할테니 외곽부터 샅샅이 뒤져라. 나는 오야지를 만나겠다.”

“오야지라뇨?”

“재일교포라고 떠벌이는 강대판 말이다.”

“최정선의 어머니 뒤를 밟는 것은 어떻게 하려고요?”

“그 여잔 허당이야. 남편과 관련이 없어. 최달곤과는 이미 남이다. 딸자식 때문에 연을 맺고 있을 뿐이야. 일본인 처와 살고 있으니 이혼녀이고, 그래서 복수심으로 그를 거부한다. 그러므로 둘 사이의 교류는 없는 것이다. 그 딸의 행선지를 찾으면 된다.”

B팀 조장은 중앙으로부터 수사 인력을 증원받아 활동을 개시했다. A팀과도 횡적 유대를 강화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단독으로 움직였다.

조장 김도창이 강대판의 사무실을 예고도 없이 찾았다. 강대판은 자리에 없었다. 김도창은 사무실의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강대판이 오기를 기다렸다. <계속>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