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간 지나자 강대판이 똘마니들을 인솔하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외항선이 들어올 시간이 임박하자 똘마니들에게 임무를 부여할 생각으로 그들을 인솔해온 것이다. 강대판이 소파에 늘어지게 앉아있는 김도창을 발견하고 주춤 놀라더니 꾸벅 인사했다.

“수사관님, 여긴 어쩐 일로…”

그들은 구면이었다. 김도창이 실눈으로 넌지시 강대판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똘마니들을 내보내라고 손짓을 한 다음, 그들이 나가자 강대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살만한가?”

“파리 날립니다.”

“그래, 파리 날리면 안되지. 우리 남자답게 아싸리하게 얘기해 보자구.”

이 자가 눈치를 챈 건가. 강대판은 불쾌감이 확 들었다. 그가 은밀히 추진하는 밀수 작업을 냄새맡고 선수치겠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냄새를 맡지 않았다면 그가 이렇게 나올 사람이 아니다. 중앙에서 파견되었지만, 그는 목포와 도서지방을 관장하고 있었다.

“오야지가 조용하면 한 구찌 들어온다는 것 아닌가?”

며칠내로 캐나다로부터 곡물을 싣고 들어오는 외항선에 밀수품이 묻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번 구찌는 상당히 컸다. 값나가는 보석과 패물은 물론 양주와 양담배, 일부는 마약도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세관에도 손을 보고, 경찰은 물론 검찰 쪽에도 손을 뻗쳤다

“강 오야지 본업이 뭐요?”

그가 시비쪼로 다시 물었다. 니 하는 짓 내가 다 안다는 식이다. 강대판은 소리없이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반응이다.

“아싸리하게 우리 놀아볼까?”

“아싸리하게 노는 거, 내 평소 지론입니다. 수사관님, 필요한 것 있습니까?”

“파리 날리니 밀무역을 하겠다, 이거 아닌가? 하지만 그 사업이 권장할만한 사업인가? 국가경제를 좀먹는 반역 아닌가? 나는 국가에 충성하는 범위 내에서 경제활성화를 위해 조금씩 하는 것은 묵인하는 편이오. 하지만 지나치면 목이 나갈 수 있지.”

국가에 충성하는 범위 내라는 말은 일부 이익금을 내놓던지, 아니면 쓸만한 물건을 상납하라는 수사법이다.

“국기 문란과 체제 반대론자들과 가깝게 지내면 안되겠지요?”

그는 염탐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는 강대판이 일본의 야쿠자 조직과 재일동포 세력과 일정 부분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업을 하면 섭섭지 않게 해드리는 것이 우리의 상도(商道) 아닙니까. 국기 문란이란 당초 맞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영명하신 지도력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분골쇄신하는 모습은 우리 국민이 높이 추앙해 받들어 모시지 않습니까. 저는 미약한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자나 깨나 국가재건과 산업발전을 두 손 모아 빌고, 각하를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가 엉뚱하게 말했다.

“쓸만한 여자가 들어왔다지? 물좋은 여자 들어왔다던데?”

이 자식이 어떻게 냄새를 맡았나. 그러나 그는 수사관 특유의 촉으로 건너짚었을 뿐이다. 물좋은 것들은 언제나 수급이 되고, 미모에 따라 삼학도에 남거나, 요정으로, 혹은 서울로 진출한다. 이런 그의 예단에 걸려든 강대판이 당황하며 응답했다.

“함부로 내놓을 애가 아닙니다.”

“왜?”

“나의 돛대입니다.”

“오야지의 돛대?”

돛대란 담배를 필 때 가장 아끼는 마지막 담배가치를 말한다. 강대판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그는 어떤 확신을 갖고 있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수사관 특유의 노하우다.

“궁금해지네. 과연 제수씨 맞나 구경해볼까?”

“데려오겠습니다.”

강대판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김도창이 불쑥 내질렀다

“장난하나? 전화로 부르면 될 것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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