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민(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

 

박수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

유독 뜨거운 여름이었다. 평소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잠깐의 야외활동에 몸이 땀으로 끈적해지곤 했다. 선풍기 바람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더위를 에어컨 바람으로 식히면서 이 더위가 빨리 끝나길 바랐다. 올해가 가장 무더운 여름이라는 무서운 기사들 속에 기후 위기라는 말은 그 심각성에 비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손에 잡히지 않는 대책은 그저 이 상황을 어쩌나 하는 한탄으로 끝났다. 그리고 8월의 끝자락에서 아침, 저녁 시원해진 바람에 지나가는 여름과 다가올 가을을 생각했다. 처서, 볕이 뜨거운 이유가 벼가 익으려고 그런다는 엄마의 말에 노랗게 익어가는 들판을 상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 출장을 위해 지하철을 타러 걷던 중 아스팔트 공사를 하는 현장을 지나게 됐다. 여전히 체감온도 33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는 8월 한낮이었다.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마주했다. 그저 길을 걷는 것만으로 옷이 젖는 날이었다. 이렇게 뜨거운 날, 꼭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일까? 라고 생각하던 중 뉴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8월 2일 동구에서 60대 여성이 폐지 수거작업을 하고 귀가한 후 쓰러진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는 내용이었다. 사망 당시 체온은 41.5도였다. 더위가 재난이 되는 현실에 대해 그저 복잡한 마음으로 안타까움을 내뱉고 일상을 살아가던 중,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곳곳에서 펼쳐지는 위험들을 마주할 때 내가 위험을 타자화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폐지 수거작업 중 숨진 사건과 관련해 정의당 광주시당은 기록적인 폭염에도 생계를 위해 도로 위로 나올 수밖에 없는 노인분들을 위해 긴급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광역시에서도 즉각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 광주광역시 재활용품 수거인 지원 조례에는 물품으로만 지원하게 돼 있고, 근거가 없으면 선거법 관련 문제로 현금성 지원이 당장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조례 개정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결국 올해 여름에 지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광주시에서도 재난이 발생할 경우 취약계층에 대한 대상자 선정 등의 반복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며 조례 개정과 관련한 개선 필요성을 인정했다.

사실, 무더위에 폐지를 줍다 숨진 노인분들의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늦은 밤이나 새벽 리어카를 끌고 도로를 지나다 교통사고 등 안전사고에 쉽게 노출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먹고 사는 일이 위험과 동의어가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매년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의 위험을 우리의 위험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광주광역시 재활용품 수거인 지원 조례는 2015년 5월 15일 제정되었다. 해당 내용에는 효율적인 사업 계획 수립을 위해 실태조사를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실태조사를 한 내용을 시청 홈페이지에서 찾아보기는 힘들다. 물론 의무 조항은 아니기에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장의 상황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해당 조례에서 지원 대상을 65세 이상인 사람,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 이외 실태조사 등으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시장이 인정하는 사람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실태조사는 중요한 사안이다. 현재 당장 현금을 지원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를 넘어 누가 위험한 상황에도 도로로 나서는가를 확인하기 위함이고 왜 그들이 위험에 노출되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더 나아가 노인 빈곤 문제에 대한 지역사회의 깊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면서 재난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작스레 도래할 수 있고, 그 재난은 우리 사회 가장 취약한 대상들에게 위기를 넘어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취약성은 특정한 누군가의 문제가 아닌 누구나 위기에 노출될 수 있음을 말이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앞으로 심해지면서 극단적인 기상 상황에 따른 재난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뜨거운 여름이 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무서운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한 감각이 땀이 식는 속도만큼 짧아지는 것 같아서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을 맞고 차가운 겨울의 입구에서 계절만 바뀌고 비슷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나는 또 한숨만 쉴 것인가. 재활용품 수거인들의 안전을 위해 방한용품 몇백 개를 지원했다는 무서운 기사를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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