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민(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

 

박수민 광주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이사장

얼마 전, 운전 중 아무 생각 없이 틀어 놓았던 라디오에서 누군가의 사연이 흘러나왔다. 이야기는 아주 담담히 시작했다. 사연을 보낸 이의 아버지는 평소 하던 일의 특성상 작업복을 주로 입었는데, 깨끗한 양복을 입어보고 싶다고 종종 이야기하셨다. 그런데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시게 되어 그 소원을 들어드리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너무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영정사진도 없어 사진관에 일반 사진을 가져가 양복을 합성해 사진을 만들었는데, 너무 잘 어울리셔서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죄송했다는, 참 그게 뭐라고 그 소원 하나 들어드리지 못했을까 참 후회스럽다는…그게 뭐라고. 라디오 DJ는 사연을 읽다가 마지막, ‘참 그게 뭐라고’는 부분을 읽고 떨리는 목소리를 꿀꺽 삼키고 멈췄다. 그리고 아무런 말 없이 음악이 흘러나왔다. 나도 같이 침을 꿀꺽 삼키고 목에서 울컥 나오는 울음에 복잡해진 마음으로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게 뭐라고…

2017년 8월, 장성 저수지에서 한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는 어린이집에서 일을 해오다, 피부질환을 앓게 되면서 일을 하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대학 등록금을 고민하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날이 대학 등록금 납부 마지막 날이었다는 이야기들이 모녀의 죽음 이후 남은 이야기다.

2023년 10월, 광주 한 아파트에서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집 안에서는 빚 문제를 고민하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다고 한다. 어머니는 연금을 받고 있었고, 딸 역시 공기업을 다니고 있어 생활의 문제가 없었다는 이야기, 문제는 아버지가 남긴 빚이었다는 이야기, 모녀는 죽기 전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 상속 개시를 알게 된 날로부터 3개월 내 상속 포기를 하지 않으면 빚이 대물림되는데 이런 내용을 몰랐던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모녀 죽음의 배경으로 설명됐다.

돈과 빚 때문에 이 도시에서 사라진 이들의 이야기다. 그게 뭐라고 말이다. 삶보다 우선인 것은 없다는 말은 그들의 죽음 앞에 공허하다.

나는 궁금하다. 이들이 마주했던 어려움들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 더 이상 이러한 죽음이 이 도시에서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도시에서 사라진 이들이 마주했던 제도의 틈을 메워가야 하지 않을까? 안타깝다는 말은 대책이 아니다. 작동하지 않은 제도를 점검하고 보완하는 것이 실질적 추모이다. 예를 들어 최근 발생한 빚의 대물림의 경우 행정복지센터에서 당사자가 사망신고를 진행할 때 상속 포기, 한정승인 절차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에 있어 단순 안내가 아닌 사후 점검까지를 하나의 프로세스로 개선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이에 더해 빚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또한 중요하다. 돈과 빚으로 고립된 이들이 공적제도 안에서 안전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통로를 찾고 문의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고독사 실태조사를 발표하면서 현재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경제적 취약계층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고독사 사망자의 절반이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고립의 또 다른 지표를 찾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10월 광주에서도 관련한 논의가 진행됐다. ‘빈곤과 불평등에 대응하는 도시’라는 주제로 열린 세계인권도시 포럼 청년 섹션에 참여한 발제자 및 토론자들은 불평등 발생의 다양한 원인을 이야기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다양한 얼굴로 드러나는 취약성을 우리는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광주는 빈곤과 불평등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는 이 도시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기록하는 것부터 제안하고 싶다. 안타까운 감정의 호소가 아닌 그들이 삶의 마지막에 마주했던 고민을 담고자 함이다. 다양한 이유로 너무 일찍 삭제된 삶에 대한 추모, 우리 사회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인지에 대해 잊지 않기 위함이다. 광주라는 도시가 개인들의 아픈 삶들을 그게 뭐라고 치부하지 않고, 따뜻하게 안아주는 도시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사라진 사람들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사회의 틈을 확인하고 반복되는 죽음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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