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훈(광주NGO지원센터장)

 

서정훈 광주NGO지원센터장

내년도 시민사회 단체 예산이 대폭 삭감된다. 그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예산은 주민자치회와 관련한 예산이다. 지난 10년 동안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의 제도화를 목표로 시범사업을 실시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들어 주민자치회의 제도화는 멈추었고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그동안 주민자치회를 향해 열심히 준비해 온 주민들에게는 허무감만 주고 있다. 10년 쌓은 공든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면서 서울시마저 행안부에 부화뇌동하고 있으니 우리의 풀뿌리지방자치가 각자도생의 길에 서 있는 형국이다.

천만다행인 것은 광주광역시와 자치구가 주민자치회의 발전을 위해 자구책을 만들고 있는 점이다. 5개 자치구가 주민자치회의 중요성을 깊게 인식하고 정책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점은 큰 희망을 주고 있다. 동시에 자치구 의회의 노력과 의지 또한 무척 고무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문제로 삼은 주민자지회의 주체역량 문제와 재정 의존성의 문제는 제도화를 회피하기 위한 명분일 따름이다. 사실 주민자치에 있어서 주체 역량과 재정문제는 자치운동의 기본 전제이자 항상적으로 제기되는 핵심 요소에 속한다. 따라서 주체역량과 재정문제를 지방자치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기본전제이자 극복과제로 삼아야 마땅하다. 현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주민 스스로 자치 역량을 기르고 자치 기반을 조성해 가야 한다. 주민 스스로 자치재정을 만들어 운영하라는 말이다. 좋다. 주민자치가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발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도 스스로 감당해야 할 역할과 책무만큼은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주민자치권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에 속한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지방자치의 정착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책무를 다하란 말이다.

나머지는 주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자율성 확보가 기반 확보의 시작이 된다. 자율성을 확보하는 만큼 자치 역량과 자치 영역이 확대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을과 지역의 일들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설정하고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역량이 생겨난다. 이로부터 주민자치회의 역량이 쌓이면서 마침내 자치권력의 형성으로 발전하는 일련의 과정을 공유하고 싶다. 그러나 자치권력은 절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국가의 탄생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다. 아테네 민주주의와 프랑스혁명에서와 같이 시민권력을 통해 탄생한 국가가 있는 반면, 우리나라와 같이 급조된 헌법체계로 시민권력이 없는 상태에서 탄생된 국가가 존재한다. 이는 오직 국가만이 권력과 통치의 주체가 되고 국민은 그저 통치 대상일 뿐이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민 권력의지, 나아가 주민 권력이 작동되게 해야 한다. 필자는 공론장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주민이 권력으로부터 소외되어서는 삶이 개선될 수 없다. 더 이상 국가권력에 저항하거나 요구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우리는 이제껏 선거를 통해 권력을 줄 줄만 알았지 권력을 챙길 줄은 몰랐다. 이제 일상에서 주민의 뜻과 의지를 결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직결되고 우리의 행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의제를 가지고 주민권력을 생성하는 공간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공론장은 삶의 영역에서 미시적 권력을 생산하는 공간이다. 공론장은 조직이나 이념 체계가 아니라 과제 중심의 네트워크다.

공론장은 그 자체로 주민참여 활성화의 통로이자 열린공간이다. 공론장은 소통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지방자치의 학습장이자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공론장을 통해 비로소 지역공동체의 역량이 강화되고 공론장 합의를 통해 주민 권력을 형성해 나가는 유력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필자가 주창하고 있는 주민공론장의 활성화가 곧 주민자치의 활성화라는 확신에서 동 자치센터마다 공론장 만들기라는 현실적 과제가 명료해 진다. 자치운동의 현실과 과제를 진단하면서 느낀 공론장에 대한 재발견이자 희망이다.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