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훈(광주NGO지원센터장)

 

서정훈 광주NGO지원센터장

한 해를 회고하고 정리하는 시간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들의 일상이 그리 순탄치만 않았던 해였다. 2023년 봄은 전 세계적으로 가뭄이 심각하게 발생한 시기였다. 에디오피아에서는 4만3천명이 가뭄으로 타죽고, 한국은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기록했다. 광주시의 상수원인 동복댐의 저수율이 19%까지 내려가고 주암댐마저 20%대 초반을 겨우 유지할 정도로 우리의 식수원이 고갈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폭염 일수가 늘어나더니 홍수가 발생하면서 재난피해로 이어졌다. 강수량 패턴이 점점 불규칙해 지면서 폭염과 홍수를 동시에 겪어야 했다. 문제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불길하다.

기후 변화에 더해서 우리를 시종 우울하게 한 것이 바로 인구감소, 지역소멸론이다. 2006년 유엔 인구포럼에서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는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인구가 사라질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았다. 문화적 시각이 바뀌지 않으면 한국의 결혼율과 출산율 반등은 어렵다는 시각이었다. 2023년 9월 인구동향을 보면 3·4분기 합계출산율이 0.7%명을 기록했다. 역대 최저치 출산율을 분기마다 갱신기록 중에 있다. 0.5%까지 가는 데는 시간문제라고 한다. 절반 이상의 시·군이 지역소멸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국가소멸이라는 끔찍한 통계를 접하며 살고 있다. 이쯤되면 인구 위기를 넘어 인구재앙인 것이다. 역대 정부는 2006년부터 15년간 380조원 넘는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합계출산율 0.7명이 말해주듯 출산정책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국가소멸로 가는 마당인데 당장 인구 위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나 그 어떤 정치인도 이런 위기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 대전환을 서둘러야 할 시점에서 정치권은 오로지 정쟁(政爭)에만 몰입해 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정치권의 한없는 무책임과 무능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런가하면 지역 시민사회에서 벌어진 다양하고 훈훈한 시민 활동이 한 해의 의미를 더 해 준다. 첫번째 사례는 역사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모금운동의 성과이다. 1년 전 윤석열 정부가 대법원 배상 판결 취지를 무시하고 정부의 제3자 변제를 본격화하자 지역 시민사회는 이에 항의하며 강제동원 굴욕해법 저지와 ‘역사정의를 위한 시민모금’에 들어갔다. 2023년 7월 강정채 전 전남대 총장을 비롯한 지역인사들이 앞장서서 금배지를 내놓거나 아끼던 아코디언을 내다 팔고, 축의금 일부를 모금에 보탠 신랑신부도 있었다. ‘제2의 독립운동’으로 규정하고 참여했다. 이런 감동 사연이 모아져서 지난 11월 20일 현재 모금 참여 건수는 8천564건, 모금액은 6억4천여만원이 모아져서 양금덕 할머니 및 이춘식 할아버지 등 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원씩 총 4억원을 응원기금 명목으로 1차로 지급했다. 광주시민운동사에는 오랫동안 기억될만한 사례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성과는 지역 시민사회의 오랜 요구와 바람이 마침내 조례로 제정되어 결실로 나타났다.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가 광주에서 제정된 것이다. 그동안 문화예술의 도시 광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고충들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를 위해 2년동안 민관공동으로 TF회의를 구성하고 총 10차례의 정기회의와 수시회의 등을 거치면서 마침내 2023년 2월 광주시의회에서 조례가 시행·공포됐다. 전국 최초로 ‘광주광역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가 만들어졌다. 지역 예술인들에게는 자부심과 기대감에 부푼 희소식이었다. 문화예술의 도시로서 면목이 선 것이다. 그러나 남은 과제도 크다. 조례제정 이후 광주광역시의 집행이 담보되어야 한다.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을 위한 실태조사도, 영향평가도, 지원계획도, 심의위원회도, 권익지원센터 등도 시작되어야 한다. 광주시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 현재 예술인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광주에서 전국 최초로 예술인 지위와 권리보장 조례를 만들기까지 많은 예술인의 참여와 절박함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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