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조선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이영란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여자와 남자가 만나 결혼하고, 가족을 이루는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은 하나의 이분법적 사고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결혼, 가족이라는 형태가 흐려져 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젠더 감성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젠더 감성의 혐오적 제도 중 일부다처제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에서 행해졌다. 중국의 일부다처제 시작은 갑골문자가 만들어진 은왕조로부터 시작하였다. 특히 춘추시기에 성행했던 ‘잉첩혼’이 바로 일부다처제로 해석할 수 있다. ‘잉’은 시집가는 신부를 따라가는 친여동생이나 조카딸로 첩(妾, 노예나 죄인 신분)보다는 높고 정부인보다는 낮은 중간의 신분이었다. 일부다처제의 형태인 잉첩혼과 같은 제도가 중국에만 존재하였던 결혼 문화는 아니다. 루이스 헨리 모건이 ‘고대사회’에서 언급한 ‘푸날루아혼’은 하와이에서 만난 원주민 가족을 통해 발견한 혼인 형태로 처를 공유하는 형제집단과 남편을 공유하는 자매 집단의 혼인 형태로 변모한 혼인문화로 역시 일부다처제라고 할 수 있다.

소동(蘇童·쑤퉁)의 소설 ‘처와 첩들’을 각색한 영화 ‘홍등(紅燈)’은 192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일부다처제의 문제점을 그린 영화이다. 송련(頌蓮·쑹렌)이라는 여자 주인공은 대학을 중퇴하고 어머니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부잣집 진(陳·천)나리의 네 번째 첩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이 영화에서 봉건적 사회 구조를 암시하는 두 가지는 바로 사합원(四合院)과 홍등이다. 중국 전통 가옥 사합원은 방이 동서남북 네 군데에 위치하고 가운데는 마당, 마당을 기준으로 방이 둘러싸여 있는 구조로 중국 전통의 폐쇄성을 보여준다. 또 마당에 걸려 있는 홍등은 의미가 있으니, 바로 등이 밝혀진 방의 부인이나 첩과 동침함을 의미한다. 진(陳)이 네 명의 부인 중에 매일 한 명을 택해 잠자리를 같이하는데 선택당한 부인의 처소에는 그날 밤 홍등을 밝힌다. 안마 기구가 발을 두드릴 때마다 거기에 달려있는 방울이 내는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그날 밤 홍등이 걸리고 진나리에게 선택된 방의 부인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나머지 부인들은 그 방울 소리에 괴로워한다.

영화에서 진나리는 항상 가려지거나 멀리서 비추어진다. 한번도 진나리 얼굴이 클로즈업되지 않는다. 이러한 설정은 진나리라는 특정한 인물을 넘어서 남성 전체를 대표하는 성격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남성 자신의 권력을 악용하며 여성을 종속적 존재로 다루는 그들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진씨 집안에서 여성은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대상이자 종족 번식을 위한 존재로 그려졌다.

그나마 셋째 부인 매산(梅珊·메이산)은 나가서는 안되는 폐쇄된 집안을 뛰쳐나간다. 완벽하게 갖추어진 완결된 구조로서의 진씨 집안에 대항하는 부정을 저지른 그녀는 누구도 근접할 수 없는 옥탑에 버려지면서 참혹한 징벌을 받는다.

1920년대 중국 여성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 ‘홍등’은 대부분 가부장제에 종속적 존재로서 살아가야만 하는 무력한 여성들, 그리고 일부다처제의 체제를 거부하면 죽음에 이르는 여성의 처절함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여자가 된다”라는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유명한 명제처럼 “여자가 된다”라는 것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요청받는 성역할을 수행하도록 훈육되고 사회화된다는 것이다. 또 이반 일리치((Ivan Dominic Illich) 역시 ‘성’이 만들어진 것이고 인간은 처음부터 ‘젠더’로 태어나서 자라난다고 하였다. 즉, 생식기만으로 구분되는 여자와 남자란 인류 역사에 존재한 적이 없었고, 인간은 처음부터 ‘젠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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