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이영란 조선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우리 집 강아지는 복슬강아지 학교 갔다 돌아오면 멍멍멍 어머니가 빨래 가면 멍멍멍 졸랑졸랑 따라가며 멍멍멍” ♬♬ 동요 가사이다. 이 동요를 듣다 보면 강아지와 인간이 얼마나 친근한가를 느낄 수 있다. 어렸을 때 학교 갔다 돌아오는 날 엄마가 집에 안 계시면 왠지 쓸쓸한 마음이 생겼다. 그럴 때 어김없이 반겨주는 제리가 있어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제리는 우리 집 강아지였다. 항상 나와 함께 뛰어놀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어릴 적 나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의 어린 시절의 절친이자 추억이다. 나처럼 주위에는 반려동물인 강아지와의 삶을 함께하고 있는 또 함께했던 사람들이 참 많다. 현재 반려 인구 1,000만 시대가 넘어가고 있다는 통계만 봐도 얼마나 인간이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힘을 얻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국제동물권리단체 페타(PETA·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려는 사람들)라는 동물보호단체에서 한국 강아지 공장의 처참한 광경을 영상으로 공개해 화제가 되었고, 뉴스, 신문에서도 중요 문제로 보도했다. 그 영상은 너무 처참했다. 특히 그 영상 중에 푸들 한 마리가 작은 철장에 갇혀 미친 듯이 양쪽 벽면을 이리저리 차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가슴이 미어졌다. 거기다 환경은 더욱 처참했다. 수백 마리의 강아지가 층층이 쌓인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살고 있고, 또 그 더러움 정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명 ‘강아지 공장’이라 일컬어지는 이곳에서 살며 기계처럼 번식을 반복하고, 그 일을 자행하는 인간은 어린 강아지가 죽든 어미가 아기를 낳다 죽든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애견숍에서 물건처럼 매매되고 강아지를 물건처럼 산 인간들은 또 그들을 물건처럼 여겨 쉽게 유기하는 일도 많아졌다. 어쩌면 인간이 저럴 수 있을까? 그 강아지는 얼마나 인간이 두렵고 무서울까? 인간은 동물에게 진정한 배려와 공감을 해야 한다.

이 지구상에는 많은 생명체가 존재한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공감과 배려는 현대 시대의 중요한 화두이다. 타인과의 공감과 배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감과 배려는 인간 대 인간에게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공감과 배려가 중요한 이 시대에 그 마음이 모든 생물에게 향하는 것은 지구에 살고 있는 한 모든 생명체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모든 생명체가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은 공존을 위한 당연한 귀결이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와의 공감 능력은 무엇보다 인간이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능력이다.

공감 능력이란 타자의 입장에서 이해하거나 타자의 입장을 생각해 보는 능력이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생각이 아닌 모든 생물체에 대한 이해와 감정을 헤아리는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모든 청각, 시각, 촉각 등을 동원해 타자를 이해하려고 살피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아닌 네가 되어 보는 마음, 그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피터싱어는 ‘동물해방’이라는 책에서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이야기를 첫 장에서 시작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라는 이 말을 마음에 갖게 되는 순간이야말로 공감과 배려의 시작이다. 과연 우리는 동물에게 평등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는 또 종차별주의, 즉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종의 이익을 옹호하면서 다른 종의 이익을 배척하는 편견 또는 왜곡된 태도도 말한다. 종차별주의를 뛰어넘으려면 다른 종의 종류에 무관하게 동등한 고려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동물 평등 그리고 종차별주의를 돌아보며 모든 생명체와의 적용, 그리고 인간 사회 안에서 ‘평등’이라는 개념이 적용되는가도 돌이켜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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