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신의 소설 ‘이카루스의 강’

<17·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그리고 죽음>-3

취기가 오른 순영은 춘삼의 어깨에 기대 준상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그의 신들린 사자후(獅子吼)가 막을 내리자 춘삼은 준상의 빈 잔에 술을 따르곤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님. 제가 오늘 뵙자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상의할 게 있어서요.”

“그러시게. 신중한 아우님이 왜 보자고 한지는 다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네. 그럼 보따릴 풀어 보시게나!”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 테이블에 졸고 있던 김 비서를 깨워 서류 봉투를 준상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에 내밀었다.

“형님 열어보세요.”

“자네 이게 무슨 서륜가?”

준상은 안주머니에서 돋보기를 꺼내 서류를 읽어 나갔다. 그동안 유리창을 거세게 내리치던 장대비는 그 기세가 한풀 꺾여 가랑비로 변했고 한참을 읽어 내려가는 준상의 얼굴은 놀란 토끼마냥 눈꼬리를 치켜떴다. 준상이 마지막 서류를 다 읽고서야 쓰고 있던 안경을 테이블에 조심스레 올려놓으며 춘삼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서류의 내용은 가히 폭발적인 내용이었다.

JR 그룹과 현삼건설 소유주인 춘삼과 해용이 소유한 지분의 9할을 가칭, JR 사회복지 재단 설립에 기부하며 복지재단 이사장에 평소 존경하는 이준상을 이사장으로 영입하고 전권을 위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의 구체적 틀은 세 가지였다. 그 첫째는 복지재단 내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과 같은 사회적 비영리 은행을 설립해 사회적으로 홀대받는 서민들에게 대부사업을 시행, 장기 저리의 대출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구체적 실천계획이 담겨 있었고 그 둘째론 자라나는 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민족의식을 고취시켜 다시는 이 땅에 비극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민족 학교를 설립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론 사회에 만연한 비정규직 문제를 없애는 연구소를 설립하는 것 등 구체적 실천사업이 적혀 있었다.

복지재단 설립의 자금 규모는 10조원이 넘었으며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자금 사용 내역은 각계 덕망있는 인사로 구성된 검증단을 통해 매년 언론에 공개한다는 게 이 계획서의 핵심 골자였다. 사실 이준상을 만나기 전 춘삼은 JR그룹과 현삼건설의 노조 집행부를 만나 재단 설립 취지와 기본 방향을 설명했고, 그들은 춘삼의 제의를 밝은 미소로 화답하며 일정 부분 기부와 전 직원의 동참을 약속한 상태였다.

“자네 정말 이런 세상을 만들고 싶나?”“형님. 형님이 도와주시면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작은 밀알이 되고 싶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 지금은 미약하나 뜻을 같이 할 이들이 각계에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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