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표 카탈루냐, 어떤나라인가?

중심도시 바르셀리나, 리오넬 메시 등 FC 바르셀로나 유명

스페인의 북동부도시 카탈루냐가 뜨겁다.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실시하며 스페인 중앙정부와 대립하고 있는 카탈루냐에 대해 연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카탈루냐 정부는 10월 1일 독립 의사를 묻는 비공식 주민투표 진행을 시도했다.

투표하는 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반 [EPA=연합뉴스]

카탈루냐 자치정부는 잠정집계 결과 90%의 압도적 찬성률로 투표가 가결됐다며 최종 결과가 나오는 대로 자체적으로 독립을 선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스페인 중앙정부는 처음부터 투표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며 카탈루냐의 독립 행보를 적극적으로 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어 양측의 대립이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스페인 헌법재판소와 국회는 위헌이라고 선언했다.

스페인 경찰은 투표를 불법으로 간주하여 카탈루냐 참여자를 공권력으로 제압했다. 고무 총알 발사 등 완력을 동원하여 수십명이 다쳤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 [EPA=연합뉴스]

한편 카탈루냐는 스페인 북동부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3각형 모양의 지방으로 북쪽으로는 프랑스와 안도라, 서쪽으로는 아라곤, 남쪽으로는 발렌시아, 동쪽으로는 지중해와 접해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하고 공업이 발달한 지방이며 중심도시는 바르셀로나이다. 우리에게는 리오넬 메시로 알려진 FC바르셀로나로 유명하다.

1137년 바르셀로나의 백작 라몬 베렝게르 4세와 아라곤의 페트로닐라 여왕이 약혼함에 따라 카탈루냐와 아라곤은 한 통치권하에 통합되었다.

13, 14세기에 카탈루냐는 지중해 서부지역의 무역권을 독점했다. 1410년 바르셀로나 백작 가문에서 남자 혈통이 절멸될 때까지 카탈루냐의 세력이 아라곤을 압도했다.

1412년 이후 아라곤의 새 왕조 트라스타마라에 대한 카탈루냐의 불만이 점점 커지다가 후안 2세의 재위기간 동안 극도에 달해 1462~72년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로 끝났다.

1469년 후안 2세의 아들 페르난도가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결혼함으로써 스페인의 통일이 이루어진 후 카탈루냐의 중요성이 감소했다.

1950년대 이래 공업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금속세공업·식품가공업·화학공업 등이 섬유업을 따라갈 만큼 꾸준히 발전해왔다. 바르셀리나 시에서는 섬유업, 제지업, 그래픽 아트, 화학공업, 금속세공업 등이 활발하다.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