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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0)이삼만과 독사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0)이삼만과 독사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러니까 태조 이성계가 고려왕실을 멸망시키고 그 소경점쟁이를 수소문해서 찾아가 크게 후사(厚謝)를 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불러와서 점사(占辭)를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는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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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검은 수염 덥수룩한 중년의 사내가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 봉사여도 그 점쟁이 성한 사람보다도 더 뛰어나네. 왕 될 사람도 알아보고 그랴!”

늙은 사람 하나가 혀를 내두르며 말한다.

“어흠! 본래 그것이 세상이치라네! 도둑이야기에 왕 이야기를 들었으니 좋다! 나는 선비 학자 글씨로 이름 날린 명필 이삼만 선생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지”

유선각 가운데 앉아 산수화에 뉘 시구가 한자로 써진 커다란 합죽선을 살랑거리며 조용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책깨나 읽어 문자속량깨나 머릿속에 들었을 그 마을의 양반네 같은 수염이 허연 할아버지가 떡하니 나선다. 이쯤 되면 이야기는 너나 할 것 없이 자동으로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 명필 이삼만 이야기라! 그가 누굴까? 어디 한번 들어보자.

“으음!......... 명필로 이름을 떨친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은 조선 순조 때 전라북도 정읍현 동면 부무곡에 살았던 사람인데......”

이름자의 삼만은 세 가지가 늦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집이 가난하여 공부를 늦게 시작했다는 뜻이고, 그리하여 세상에 나가는 것이 늦었다는 것을 말함이고, 또 장가를 늦게 들어 자손을 보는 것이 늦었음을 말함이다.

가진 것 없는데다가 그를 끌어줄 사람 하나 없었으니 이삼만의 인생도 제 아비처럼 비루하게 흙이나 뒤집어 먹으면서 살아야할 운명이었다. 근근이 농사일을 해서 목숨 줄이나 겨우 이어가는 처지였으니 이삼만의 아버지 이지철은 가끔 산에 올라 약초를 캐 말려 팔기도 했다. 인생살이란 게 아무 일없이 그냥 그렇게 먹고 마시고 즐기다 운명대로 살다 가버리면 그대로 말일이었지만 이삼만이 사는 정읍 땅 부무곡에는 유독 독사가 득실대는 곳이었다. 이삼만이 19세 되던 해 초가을 아버지 이지철은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다가 불행히도 독사에 물리고 말았다. 한약방에 가서 독사의 독을 처방할 약을 지어와 달여 먹는데도 효험이 없었고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아버지의 죽음, 그것도 독사에 물려 죽은 아버지, 이 일은 온통 이삼만의 가슴에 기름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효성이 지극했던 이삼만은 독사를 원수로 생각했고 그 후로 독사만 보면 닥치는 대로 잡아서 껍질을 홀랑 벗겨 그 자리에서 통째로 질겅질겅 씹어 먹어버렸다. 이삼만이 독사만 보면 뭐에 홀린 듯 모조리 잡아 먹어버리자 독사들은 이삼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 지역에서는 정월 첫 뱀날 새벽에 쑥불 피워놓고 사(巳)자 써서 집 기둥에 거꾸로 붙이는 뱀뱅이 옆에 이삼만이란 이름을 함께 써 붙여 집안에 들어오는 뱀을 예방하려고 했다하니 이삼만의 독사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독사에게 물려죽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독사를 닥치는 대로 잡아먹은 이삼만은 그것이 아버지의 원수 갚음의 행위였을 뿐인데 그로 인한 결과는 참으로 예상 밖이었다. 이삼만이 늦도록 정력이 좋았고 또 그가 서예가로서 이름을 세상에 떨쳤던 그의 초서(草書)필체인 류수체(流水體-창암체라고도 함)가 누가보아도 마치 뱀이 꿈틀거리는 형상 같았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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