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3)300냥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저는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한 그저 깊은 산골에 박혀 사는 농사짓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의 글씨를 받고자 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초지종을 알길 없는 이삼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말하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변변하게 어디다 자신의 글씨를 내보인 적도 없고 또 내놓을만한 학문에 변변한 경력도 없기에 한편으로 몹시 당황했던 것이다. 더구나 중국인들이 자신의 글씨를 보았을 까닭이 도무지 없지 않은가? 저들은 도대체 이삼만의 글씨를 어떻게 알아보고 먼 중국에서 벽지 산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정읍 고을의 이름 없는 이삼만을 물어물어 여기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정읍에 사는 약초 상인에게 몇 달 전 써준 물목기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대구 약령시에서 중국산 약 재료를 가지고 온 하얀 머리칼의 중국 상인은 정읍에서 온 상인이 내민 물목기를 보고는 흠칫 제 눈을 의심하며 깜짝 놀랐다. 한 글자 한 글자 휘갈겨 쓴 글씨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꿈틀 기운차게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흐흠! 글씨의 필획에 기품과 기운이 넘치는구나!’

한동안 그 물목기를 바라보며 글씨를 감상하고 있던 기품 있는 얼굴의 중국 상인은 마침 약재 값으로 300냥을 치르려는 정읍의 상인을 보고 말했다.

“이 물목기는 누가 쓴 글씨인가요?”

정읍의 상인은 그 말을 듣고 별 이상스런 것을 묻는 중국인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우리 고향 정읍 산골에서 근근이 농사지어 먹고 사는 장가도 못간 노총각이 써준 것이라오.”

“흐음, 그래요. 그가 누군가요?”

중국인은 그 말을 듣고는 다시 유심히 물목기의 글씨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이삼만이라는 자요.”

약초 상인은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으음! 정읍에 사는 이삼만이라!....... 좋습니다. 내 오늘 당신이 약재를 산 약재 값 300냥을 받지 않을 테니 이 물목기를 내게 주고 갈수 있겠소?”

“뭐 뭐라고요? 그 그게 정말이나요!”

정읍의 약초 상인은 중국 상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귀를 의심하며 말했다. 대체 300냥이 얼마나 큰돈인데 그것을 저 하잘 것 없는 물목기와 바꾸겠다니 머리에 몽둥이라도 얻어맞은 듯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정말이오. 이 물목기를 내게 주시면 약재 값 300냥을 받지 않겠소이다.”

중국인은 다시 또릿또릿하게 말했다.

“아!”

정읍의 약초 상인은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도대체 이삼만이 쓴 저 물목기 글씨가 300냥이란 말인가!’ 본시 물목기는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렇게 글씨를 보고 약재 값을 받지 않고 물목기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중국인은 그 자리에서 정읍에 가면 이삼만을 만날 수 있는가를 물었고, 이렇게 하여 정읍의 먼 산골까지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이삼만을 찾았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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