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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2)중국인 방문객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2)중국인 방문객
그림 정경도(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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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정경도(한국화가)

그런 눈으로 이삼만을 보면 그저 하잘것없는 가난한 농사꾼일 뿐이었다. 매화 같은 선비의 기품도 없었고, 장미 같은 화려한 재력도 없었고, 단풍 같은 배경도 없었으며, 백설 같은 권력도 없었다. 세상에 찌들어 살아가거나 취해 살아가는 모든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일 리가 없었다. 도무지 알아보는 이가 없으니 그저 진흙 속 옥구슬처럼 개흙 속 깊이 쳐 박혀 초라히 세월 속으로 초연히 사라져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기이하게도 그런 이삼만의 숨은 재주를 알아보는 특별한 눈이 있었으니 천재일우(千載一遇)가 아니겠는가! 그러고 보면 인재는 하늘이 낸다는 말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하루에 일천자를 쓰고, 벼루 열 개를 먹을 갈아 맞구멍 내고, 붓 천 자루가 뭉개졌다는 이삼만의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이삼만이 낮에는 논밭 일에 나무를 해다 나르고 밤에는 글씨를 쓰면서 학문에 열중하던 어느 날이었다. 정읍에 사는 머리가 허연 나이든 사람 하나가 술 한 병을 들고 이삼만을 찾아왔다.

“삼만이 집에 있는가?”

이삼만이 보아하니 전에 아버지가 약초를 캐와 말려 팔던 약초 상인이었다.

“예! 어르신,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이삼만이 공손이 인사를 하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 자네에게 부탁이 있어 왔네.”

이삼만이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약초 상인이 말을 이었다.

“사실은 내가 글씨를 모르는 까막눈이 아닌가! 그래서 말일세....... 당재(唐材)를 구할 물목기(物目記)를 좀 써주시게나.”

드넓은 중국 땅 온갖 약재가 많아 그곳에서 들여오는 당재(唐材)는 아주 귀하게 여겼다. 대구 약령시에서 중국산 약재 무역을 하는 한자를 모르는 그 약초 상인은 중국인 약초 상인에게 보일 약초를 구입할 물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삼만은 먹을 갈아 종이에 별 생각 없이 약초 상인이 부르는 대로 물목기를 써주었다.

그리고 몇 달 뒤였다. 정읍고을에 평소 볼 수 없었던 중국인들이 나타났다. 그 중국인들은 뜻밖에도 이삼만을 찾아왔다며 이삼만의 집을 묻는 것이었다.

도대체 중국인들이 무슨 연유로 논밭이나 일궈먹는 평범한 시골 사람에 불과한 이삼만을 찾아왔단 말인가? 밭에서 일을 하고 돌아온 이삼만은 중국인들이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동네사람들에게 듣고는 마지못해 몸단장을 하고 중국인들의 처소로 향해 갔다.

‘중국인들과는 일면식도 없는데다가 찾아올 아무런 까닭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중국인들이 자신을 찾아올 까닭이 없었던 이삼만은 참 이상도 하다고 생각하며 허탕 칠 마음으로 가볍게 발길을 옮겼다. 한참 후 중국인들이 묵고 있는 정읍의 어느 주막집에 당도하니 낯선 중국인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함께 온 세 명의 중국인들은 사나흘이나 그 주막집에 머물면서 이삼만을 수소문해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 새하얀 머리칼의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이삼만에게 말했다.

“이삼만 선생, 내 당신의 글씨를 받으러 여기까지 왔습니다.”

글씨를 받으러 중국인이 이곳까지 왔다니? 순간 이삼만은 깜짝 놀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더구나 이순이 넘은 듯 보이는 중국인이 나이어린 이삼만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존경하는 웃어른을 대하듯 공손했다. 전라도 깊은 산골에 묻혀 사는 이름 없는 하찮은 무명 필객인 자신의 글씨를 어떻게 알아보고 글씨를 받으러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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