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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수원백씨(水原白氏) 기봉공파 기봉종가 <32>

장흥 수원백씨(水原白氏) 기봉공파 기봉종가 <32>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조명

명문장가 4형제 배출한 문인 가문

신라에서 유래 찾아 수원 백씨로 본관 단일화
기봉집 속 ‘관서별곡’,기행가사문학 효시
명시문 500여편 옥봉집, 시풍을 이끌어
문인 배출 남도 최대 고장으로 이끈 가문
백광홍 기양사 보존관리 지자체 관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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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양사 전경

전남 장흥 억불산 자락에는 조선의 대문장가 백광홍을 추모하는 기양사가 있다. ‘관서별곡’을 남긴 기봉 백광홍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영향을 미친 조선 기행가사 문학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한글 문화 창달에 기여한 가사문학을 주목하여, 저평가 되고 있는 호남의 가사문학에 대해 재조명이 필요하다. 수원백씨 기봉공파 기봉종가를 찾아 장흥에 세거하며 선조의 위대한 업적 기리고 16대를 이어 온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신라 중랑장 백창직, 중시조

중국 소주 출신 당나라 시인 백낙천의 사촌이며 이부상서를 지낸 백우경이 선덕왕 때 신라에 귀화해 대경 벼슬을 역임하고 학문을 보급했다고 백씨대동보는 전한다. 수원 백씨는 신라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870?~927?)을 중시조로 받들고 있다. 그의 9세손 백천장(?~?)이 고려 충선왕 때 원나라에서 벼슬에 나가 우승상을 지내고 귀국 후 수성백(수성은 수원의 옛이름)에 봉해져 수원과 연을 맺는다. 염포, 부여, 해미 등으로 갈라진 본관을 1997년 수원으로 단일화하며 수원백씨대동보를 발간했다. 다만 나머지 33개 본관에서는 아직도 백씨가 백제 이전부터 존재한 한반도 토착 성씨라고 주장한다.

◇고려 대제학 백장, 장흥에 정신재공파 열어

백천장의 증손인 중시조 12세 백장(?~?)이 공민왕 때 보문각 대제학을 역임하고, 조선개국 때에는 관직에 나가지 않으며 해미에 유배되었다가, 장흥으로 남하해 정신재공파를 열었다. 백장의 동생 백회(?~?)가 보성현감을 지내고, 장흥 기산에 집성촌의 터를 잡았다. 중시조 15세이며 백회의 증손인 백세인의 세 아들과 조카가 모두 명문장가로서‘일문4문장’이라 불리며 가문을 빛냈다.

◇평안도평사 백광홍, 명문장 가풍

중시조 16세 백광홍(1522~1556)은 일재 이항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고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정자, 평안도 평사를 역임하며 기봉종가를 열었다. 35세의 짧은 생을 마쳤지만, 가사문학 기행가사의 효시라고 일컫는 ‘관서별곡’과 기봉집을 남기고 기양사에 제향됐다. 관서별곡은 평안도평사에 부임하여 임지로 떠나는 심정과 관서 지방의 삶과 정취,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기행가사로서, 우리나라 국문학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시가로 평가되고 있다.

백광홍의 동생 백광훈(1537~1582)은 박순의 문인으로 양응정, 노수신 등에게 수학해 진사로서 학문에 정진했다. 명나라 사신이 오자 노수신을 따라 백의로 제술관이 되어 시재와 명필로 사신을 감탄케 해 ‘백광선생’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당나라 시풍을 갖는 삼당시인이며, 이이·최립 등과 더불어 조선 중기 ‘8문장계’로 칭송받는다. 청구영언에도 그의 시조가 전하고, 영화체라는 서체의 명필로 유명하다. 그는 500여편의 시문을 묶은 옥봉집을 남기고 강진 서봉서원에 제향됐다.(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1호)

백광훈의 아들 백진남(1564~1618)은 유희춘의 외손녀 해남윤씨 윤은우와 혼인한 문인이자 서예가이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휘하에서 군량과 의병 모집을 담당하는 활약으로 이순신이 난중일기에서 ‘백진사’라며 아꼈던 인물로 기록됐다.

◇문인 마을로 장흥 자부심 기여

화순의 학포당에서 양응정에게 공부하고 장흥 기산에서 후학양성에 전념했던 백광성(1527~1593)이 백광홍 형제들과 사촌이다. 백광홍·백광안·백광훈·백광성 4형제와 김윤·임분·임회·김회명 등이 기산8현으로 고장의 자부심이 됐다. 조선시대 내내 수많은 문장가가 기산에서 나와 장흥가단(長興歌團)을 이루었고, 현대에도 이청준·한승원·송기숙·한강(한승원의 딸이며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수상함) 등을 배출하면서, ‘남도 최대의 문인촌’이 되고 있다. 기봉종가는 그 한복판에서 산자수려한 기산에 16대를 세거하며 훌륭한 선조가 남긴 유산을 전승하는데 힘쓰고 있다. 다만 기양사 보존과 문집 번역 등 현창사업에 대한 자치단체의 관심이 절실해 보인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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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양사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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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양사 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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