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 같은 ‘멋스럽고 화려함’이 내려앉은~
고사리 먹고 고사리와 같은색 위장
머리~항문다리까지 옆에 가는 흰줄
종령 되면 등쪽에 까만 줄무늬 생겨
번데기 13일 후 우화…8월에 왕성
나방, 깃털 무성·밝은 청색 ‘눈길’

 

우리나라에 알려진 나방의 종류가 4천여 종에 이른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나 많아’ 하며 깜짝 놀란다. 나방을 연구하는 전문가나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는 대단한 사건이 아니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너무도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만 하다 하겠다. 강의를 다닐 때나 수업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두 쉽게 믿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산 자그마한 계곡 어디서든 고사리를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고사리는 360여 종에 이른다. 이중 약 80%가 제주도에 자생한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고사리가 있다는 사실에 필자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몇종의 고사리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사리는 복합적 강력한 독성을 지닌 덕분에 가축을 풀어 놓아도 거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한 산 습한 골짜기는 고사리가 완전히 점령한 상태다. 인간이 재배하는 고사리도 야생동물에 피해를 주거나 해충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고사리를 삶아 독성을 제거하고 나물 등으로 맛나게 먹는다.

지난 2022년 11월 15일, 광주 북구의 삼각산을 찾았다. 평소 애벌레를 보기 위해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고사리 전문가와 함께 동행을 하게 되었다. 서울에 사시는 분인데 고사리 연구를 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한두달씩 머무르기도 하신단다.

그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삼각산은 고사리의 성지로 불린단다.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아왔지만 처음 듣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다. 홍지네고사리, 진고사리, 큰진고사리, 개가지고비고사리, 왁살고사리, 설설고사리, 각시고사리, 사다리고사리, 실고사리, 꼬리고사리, 산쇠고비 등 처음 보는 이름의 고사리를 잠깐 사이에 만날 수 있었다.

이렇게 흔한 고사리류를 먹고 사는 애벌레는 없을까?

왁살고사리(2022년 11월 15일, 삼각산)
왁살고사리(2022년 11월 15일, 삼각산)
큰진고사리(2022년 11월 15일, 삼각산)
큰진고사리(2022년 11월 15일, 삼각산)
홍지네고사리(2022년 11월 15일, 삼각산)
홍지네고사리(2022년 11월 15일, 삼각산)

2016년 7월 28일, 서구 백마산을 숲해설가 회원들과 함께 찾았다. 여기 저기 고사리들이 많다. 고사리라곤 나물이나 육개장으로 먹는 것이 전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더더욱 고사리엔 관심이 없었는데 그래도 이 많은 고사리를 먹고 사는 애벌레는 어떤 녀석이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천천히 가면서 유심히 살피는데 어렴풋이 무언가 보인다. 몸통은 완전히 고사리와 같은 연두색인데 등쪽에 까만 모자같은 무늬가 줄지어 있어 애벌레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도감에서는 본 적이 있지만 실제 만나기는 처음이다. 더 많은 녀석들이 있을 것 같아 주변을 샅샅히 뒤진다.

또 다른 녀석이 보인다. 헌데 녀석은 등쪽에 까만 무늬가 없다. 그래서 더욱 발견하기가 힘들다. 고사리와 같은 색으로 위장하고 있다. 머리부터 항문다리까지 옆으로 가늘게 있는 흰 줄이 없으면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다. 아직 덜 자란 중령 애벌레다. 종령이 되면 등쪽에 까만 줄무늬가 생긴다. 얼룩어린밤나방 애벌레다.

잎 위에서 잎을 먹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기생을 많이 당한다. 아무리 잘 위장을 해도 천적을 피하기는 쉽지 않은가 보다. 다 자란 애벌레는 흙속에 들어가 고치를 만들고 번데기가 되어 13일이 지나면 우화한다. 고사리류가 가장 왕성하게 잎을 피우는 8월에 많이 보인다.

얼룩어린밤나방은 애벌레를 만나기 훨씬 전이다.

2014년 5월 25일, 무등산 용추계곡에서다. 가슴에 긴 털이 많고, 앞날개 후연에도 긴 털이 있으며 다리 중간 부분까지 긴 털이 무성하다. 군데 군데 밝은 청색무늬가 있고, 마치 추상화를 그려 놓은 듯 복잡한 선들이 있다. 앞날개 횡선들은 양쪽이 흑갈색 테로 둘린 황갈색이고, 뚜렷한 날개맥 때문에 무늬가 나뉜다. 앉아 있는 모습에서 멋스러움이 묻어난다.

나방의 종류도 많지만 고사리류 종류도 많음에 놀라고, 삼각산이 고사리의 성지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사실에 새삼 부끄러움을 느낀다. 고사리를 먹이식물로 하는 애벌레들이 분명 더 있을텐데 열심히 찾아 봐야겠다 다짐해 본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얼룩어린밤나방 애벌레(2016년 7월 28일, 백마산)
얼룩어린밤나방 애벌레(2016년 7월 28일, 백마산)
얼룩어린밤나방 애벌레(2016년 7월 28일, 백마산)
얼룩어린밤나방 애벌레(2016년 7월 28일, 백마산)
얼룩어린밤나방(2014년 5월 25일, 용추계곡)
얼룩어린밤나방(2014년 5월 25일, 용추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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