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남(남도일보 주필)

 

오치남 남도일보 주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1항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현재 정부와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네 탓 공방’ 을 넘어 ‘남 탓 공화국’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서울 이태원 참사, 역대급 폭우·폭염 피해 및 충북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한국에너지공대 감사 및 초대 총장 해임 건의 등 각종 대형 사고, 국책사업, 사회적 이슈 등을 놓고 서로 책임만 떠넘기고 있다. 책임 소재를 가려낸다며 검경과 감사원 등이 칼을 들이대지만 칼날은 무디다. 살갗 고름만 짜낼 뿐 폐부 깊숙이 막힌 ‘암 덩어리’를 도려내지 못한다. 덩달아 정부와 정치권도 법령과 제도 개선을 서두르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지만 임시방편에 그친다. 재발 방지는커녕 대형 참사가 되풀이되면서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그러나 책임지는 사람은 제한적이다. 사사건건 전 정부와 현 정부, 해당 지자체에 책임 떠넘기는 추태가 이어지고 있다. 네티즌까지 ‘네 탓 공방’에 편승하면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 분노와 절망감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8월 무더위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 이슈까지 터졌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의 파행 공방이다. 이번 잼버리는 최악이었다. 유치 과정부터 전북 새만금 야영장 조기 퇴영까지 부실 투성이였다. 4만 여 스카우트 대원들은 짜릿한 야외 체험과 다양한 문화 활동 대신 극한 폭염 속에서 생존체험을 했다. 1천억 원이 넘는 혈세를 투입하고도 ‘동네 축제’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온열질환자 속출과 위생·청결 미숙 등으로 세계적 망신을 사기도 했다. 급기야 새만금을 떠난 대원들이 지난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폐영식과 K팝 슈퍼라이브 콘서트 참가를 끝으로 공식 대회가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후폭풍이 거세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파행 책임을 전북도와 전 정부에 돌리는 데 치중하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현 정부의 책임이 더 막중하다며 각을 세우고 있다. 일부 언론의 시각도 지방 정부 무능론과 중앙 정부 책임론 등으로 갈려 있다. 잼버리 파행과 관련, 온라인을 중심으로 호남 비하·혐오 발언도 확산되고 있다. 오죽하면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이 지난 15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전북도가 성역이라는 것이 아니라 정부·여당이라고 하면 ‘내 탓이오’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SNS를 통해 “‘잼버리는 전라도 탓’이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되뇌이는 것이 (여권의) 전략인가보다”라며 “전라도 탓으로 원인을 돌려버리면 문제는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전라도가 대규모 국제 대회나 행사를 치를 능력과 자질이 없을까? 아니다. 여수시는 2012 여수세계박람회를 계기로 수산업·공업도시에서 ‘1000만 관광도시’로 탈바꿈했다. 박람회 개최에 필수적인 사회간접자본과 기반시설을 발판으로 우리나라 최고의 해양관광도시로 자리 잡았다. 인구 27만2천여 명의 작은 지방도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꿈을 이룬 셈이다.

광주시도 2015 광주유니버시아드를 ‘저비용·고효율 대회’로 치러냈다. 당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열악한 경기장과 숙박시설 등 각종 악조건을 딛고 이룬 성과여서 더 값지다는 평가를 받았다. 순천시도 10년 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202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통해 세계적인 생태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난 4월 1일 문을 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개장 84일 만에 관람객 500만 명을 돌파했다. 오는 10월 31일 폐장까지 목표 관람객 800만 명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여 흥행 대박도 예고하고 있다.

이번 잼버리 총체적 부실 운영 책임과 관련, 주무부처인 여가부와 집행을 맡은 전북도는 그 중심에 서 있다. 장관이 공동조직위원장으로 참여한 행안부와 문체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 총괄조직위원장을 중심으로 컨트롤 타워를 구성하지 않은 중앙 정부 책임도 크다. 민주당 이원택 의원이 지난해 10월 25일 국감에서 폭염과 폭우 대책 등을 주문했으나 묵살된 것도 컨트롤 타워 부재 탓이다. 이번 대회 파행 운영 원인과 책임 소재 등은 감사원 감사로 밝혀질 전망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세계 각국의 많은 잼버리 대원들이 K팝 콘서트와 폐영 후 한국 관광과 K푸드 체험 등을 통해 ‘새만금의 아픔’을 씻고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제 정치권은 이번 대회의 진상 규명 대신 ‘정치적 희생양’을 찾는다는 비판을 받아선 안 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제1야당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112석의 국민의힘은 최대 200석까지 늘려 국정 운영에 강력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 168석의 민주당도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을 유지하면서 정부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 그렇다고 유권자들이 ‘남 탓’만 하는 정당 후보에게 표를 주겠는가… “내 탓이오”를 즐겨 말했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사무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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