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태(전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이사)

 

윤원태 前 국제기후환경센터 대표이사

과학과 기술은 그 출발점이 다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지식을 테오리아(theoria), 프락시스(praxis), 테크네(techne) 세가지로 구분하였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테오리아는 이론 즉 과학에 해당되며, 실습은 프락시스, 기술은 테크네에 해당된다. 과학과 기술은 서로 다른 위상을 지닌 지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산업혁명과 함께 19세기 후반에 과학에 기반을 둔 기술이 등장하고, 20세기에 들어서는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과학과 기술이 융합한 과학기술 분야가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다.

20세기 초반까지 과학연구는 대부분 대학의 연구실과 실험실이라는 상아탑에서 이루어졌다. 아카데미즘 과학의 시대까지는 자연계의 진리를 탐구하는 일이 과학의 목적이었다. 그동안 다른 분야라고 여겨졌던 과학과 기술이 활발하게 융합하기 시작한 것은 1920~1930년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과학과 기술이 무기 개발에 깊이 관여하면서 그동안 고립되어 있었던 과학이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찾은 것이다. 과학기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을 개발한 오펜하이머의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국가가 주도하고 여러 분야가 참여하는 거대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된다. 이로서 아카데미즘 과학은 산업화 과학으로의 전환이 시작된다.

20세기 후반부터는 과학이 인공지능, 위성, 로봇 등 산업과 경제활동이 결합된 영역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보통 과학기술을 가치중립적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현대의 과학기술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몹시 다양하고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기에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현재는 이론적인 발견이 기술적으로 실용화되고 상용화 단계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매우 짧다. 그리고 미세플라스틱, 방사선 폐기물, 화학물질의 부작용 등의 사례처럼 선의로 개발된 과학기술들이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의도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은 너무 커져 버렸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우리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는 인위적인 사회 리스크의 한 단면이 되어버렸다. 과학기술이 가치중립만을 주장할 수 없는 이유이다.

현재의 우리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나 지구환경문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부터 출발한다. 유기합성 농약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화학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살균제, 살충제 등 농약으로 이용되었다. 화약약품과 합성물질의 남용은 예상하지 못했던 복합오염을 불러오고, 이는 현재 환경호르몬이나 지구상에서 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환경과 인체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인류가 넘어서는 안 되는 생존의 전제조건이자 한계선을 ‘지구 위험 한계선’ 이라고 한다. 지구는 외부의 충격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자정능력과 회복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회복력은 지구 위험 한계선 내에서만 작동한다. 지구는 현재 과학자들이 선정한 한계선 9가지 중 6개 분야(기후변화·생물다양성·토지이용·질소와 인·미세플라스틱이나 핵폐기물 등 신물질·생물이 사용할 수 있는 담수)는 이미 한계선을 초과하였다.

태풍이나 지진, 화산, 해일 등의 자연재해처럼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대부분의 위험은 인간의 의지나 책임과는 무관한 외부환경에 기인한다. 현대사회는 리스크 사회이다. 리스크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의사결정에 기인하는 사고, 즉 사회가 스스로 낳은 재난을 의미한다. 수 십 년 전에 방출된 온실가스가 오늘날 다른 대륙에서 기후변화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현대사회가 지니고 있는 위험성의 특징은 시·공간적, 사회적으로 영향 범위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피해의 보상이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대 사회는 잘 구성되어있지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정부나 지자체의 기능은 자본의 분배보다는 리스크 관리와 분산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인류는 지금 과학기술의 발달로 그 어느 시대보다 쾌적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에, 우리는 우리 문명이 이대로는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문명의 발달을 가져다주었지만 다른 한편에서 지구 위기를 초래하였고 지구 위기가 다시 문명 위기를 부르고 있다. 현재의 대량소비를 장려해온 경제체제 속에서 이를 지탱해온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재조명하는 집단지성이 필요한 때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자연을 해치는 문명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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