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지면 죽는다”… 수 십마리 애벌레 집단 서식
벚나뭇잎 먹어치우며 배설물 잔뜩 쏟아내
방해 받으면 줄을 타고 내려왔다 다시 올라
나방은 흰날개 때문에 사람 눈에 쉽게 노출
날개엔 먹으로 무늬 그려 놓은 것으로 착각

사진-1 꼬마잠자리수컷(2013년 7월25일, 용암사)

 숲길을 걷다보면 보일 듯 말 듯 줄에 메달려 데롱데롱 흔들리는 애벌레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아주 작은 애벌레들이고 집단으로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 지난 토요일(10월 29일), 해남 두륜산 오소재 주차장에서 오심재, 노승봉, 가련봉을 올라 남녘의 가을을 눈에 담고 왔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애벌레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데 가끔씩 줄에 메달려 있는 애벌레들이 보였다. 너무 작아 어떤 애벌레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녹나무과 나무들이 많이 보이고 내륙지방보다는 기온도 높아 그런 것으로 추측해본다.

능주를 지나 한천면 쪽으로 가다보면 금전저수지가 보인다. 용암사를 지나서 계속가면 한적한 임도가 나온다. 야생화도 많이 피고 곤충을 만나기가 좋아 자주 찾던 곳이다. 임도를 따라 불암사쪽으로 가다보면 습지가 군데군데 있고 이삭귀개, 땅귀개, 물매화 그리고 해오라비난도 볼 수 있는 야생의 보고다. 특히 꼬마잠자리의 서식지로 몇 년째 찾아가서 눈맞춤하곤 했는데 지금은 태양열 발전소가 되어 버렸다. 꼬마잠자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로 지정되어 있다. 사유지인지라 뭐라 할수 없지만 정말 아쉽다.

 

사진-2 먹무늬재주나방애벌레 배설물(2015년 8월23일)

 2015년 8월 23일, 꼬마잠자리가 잘 있는지 궁금하여 다시 임도로 접어 들었다. 무더위가 극성을 부렸지만 숲속은 분주하다. 제법 큼직한 벚나무잎에 자잘한 배설물이 눈에 띈다. 엄청 많다. 누가 그랬는지 범인색출에 나섰다. 와, 이럴수가…

몸은 자주색이고, 머리는 검은색인데 수 십마리의 애벌레가 잎사귀에 나란히 붙어 열심히 먹고 있다. 다른 잎사귀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집단으로 모여 살며 나뭇잎을 먹어 치우며 배설물을 쏟아낸다. 먹무늬재주나방 애벌레다. 방해를 받으면 일제히 줄을 타고 죽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간다. 초령에서 중령애벌레로 보인다. 자라면서 흩어지는데 종령 유충은 검은 몸에 자주색 무늬가 있으며, 길고 흰 털들이 있다. 2022년 9월 8일, 광주천에서 종령애벌레를 만났다. 자전거도로를 횡단하고 있는 녀석이었는데 로드킬의 위험이 있어 조심스럽게 풀밭으로 옮겨 주었다. 먹이식물은 산사나무, 버드나무 등인데 용암사 임도길에서 본 녀석은 벚나무잎을 먹고 있었다. 산사나무나 벚나무는 장미과의 나무다. 버드나무는 버드나무과다. 먹이식물로 보면 협식성으로 봐야 할지 광식성으로 봐야할지 잘 모르겠다. 흙속에 들어가 번데기가 되어 이듬해 7월 우화한다.

 

사진-3 먹무늬재주나방애벌레(2015년 8월23일, 화순 용암사)
사진-4 먹무늬재주나방애벌레(2015년 8월23일, 화순 용암사)
사진-5 먹무늬재주나방애벌레(2022년 9월8일, 유촌동)
사진-6 먹무늬재주나방(2018년 7월14일, 입암산성)

 먹무늬재주나방은 날개를 둥글게 세우고 독특한 자세로 앉는다. 흰 날개 색 때문에 눈에 잘 띈다. 2014년 7월 26일, 가족과 함께 한 제주도 산방산에서 먹무늬재주나방을 만났다. 저녁을 먹은 후 이곳에는 어떤 나방들이 있는지 골목길 가로등 밑을 살피고 있었는데 흰 날개에 먹으로 무늬를 그려 놓은 것 같은 나방이 보였다. 수수하면서도 멋진 녀석이다. 어른벌레를 보면 금방 이름을 떠올릴수 있는 몇 안되는 나방이다. 인디언들이 이름을 지을 때처럼 쉽게 국명을 지으면 얼마나 좋을까 또다시 생각해 본다.

 

사진-7 먹무늬재주나방(2014년 7월26일, 산방산)

2018년 7월 14일, 장성 입암산에서 먹무늬재주나방을 다시 만났다. 녹색의 나뭇잎에 앉아 있으니 눈에 확 들어온다. 앞날개는황백색이며, 시정부 아래에서 후연 2/3 부근까지 날개맥으로 갈라진 금속성 흑자색 무늬가 선명하게 보인다. 같이 한 회원들에게 애벌레 이야기부터 어른벌레의 특징까지 설명하며 공유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나비는 좋아하지만 나방은 징그럽고 무섭다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집단으로 모여 나뭇잎을 먹어 치우는 광경을 보고 나무가 불쌍하다고 분개(?)하기도 한다. 녀석들에게 어쩔수 없이 먹히고 있지만 나무는 다시 잎을 피우고 살아난다. 이렇게 자연은 계속 나아 간다.

글·사진/이정학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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