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강진 양산김씨(梁山金氏) 대종가 / 군자서원
신라 경순왕 후손 식읍 양산을 본관으로
천년전통 잇는 선비정신 군자서원에 펼쳐
유산 보존·충효관 건립 지역문화창달 앞장

 

군자서원 전경

전남 강진 작천면에는 군자서원이 있다. 현대에 이르러 추모, 강학, 교화 등 서원 고유의 기능을 활발히 담당하고 있는 서원이다. 매년 전국의 유림 인사를 초청해 강회·시회·상읍례 등 강학예절을 실시하며, 부설 호남선비문화원을 통해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음악회, 유교아카데미, 강연회, 서원스테이, 유물전시회 등을 개최하여 지역문화의 새로운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서원에서 추모하는 현인의 군자다운 삶의 행적때문에 군자리(君子里) 행의동(行義洞)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현인을 배출한 가문은 신라 왕족의 후예로서 양산에서 평양을 거쳐 전남 강진에 입향·세거한 양산김씨(梁山金氏) 가문이다. 선비다운 삶을 실천하기 위해 충효관 건립까지 추진하고 있는 강진 양산김씨 대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고려 사인 김연 시조
양산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후손으로 고려조에 통사사인을 지낸 김연을 시조로 모신다. 그의 손자 김맹(970~1030, 시호는 문정)은 문과급제해 벼슬은 좌습유, 이부시랑, 중추부사를 거쳐 태자소부, 참지정사에 올랐다.

그는 김훈·최질의 난을 진압한 공신이며, 1020년에는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고, 의춘현(옛 양산) 개국남에 책봉됐다. 그는 최충, 강감찬과 더불어, 고상한 절개와 정직한 마음으로 여러 왕대를 보필했고 백성에게 편안과 혜택을 준 공을 인정해 태자태사 문하시중에 추증됐다. 그가 의춘현을 식읍으로 받아 양산(양천)을 본관으로 가문은 천년의 세계를 잇고 있다.

4세 김덕부(1000~1082)는 아버지 김맹의 음보로 등용돼 태자빈객을 거쳐, 상서우복야, 수사공 상서좌복야에 올랐다. 19세 김치현(1450~?, 호는 분원)은 문과급제하고 벼슬은 교서관박사, 홍문관수찬을 거쳐 황해도관찰사에 올랐다. 그의 아들인 20세 김자정(호는 회원당)은 통덕랑을 역임하고 벼슬을 버리고 은거해 강진에 입향한 후 회원당공파를 열고, 양산김씨 중조가 된다.

◇군자다운 품격갖춘 문무 인재 배출
김자정의 손자인 22세 김양(?~1569, 호는 유항재)은 효성이 지극한 학자로서 내자시직장을 역임하고 낙향해 학문하며 지역 명사들과 도의로 교유했다. 자식에게 정의를 가르치고 후학에게는 심경과 근사록을 강론했다.

그가 옥봉 백광훈, 석천 임억령, 고봉 기대승, 고죽 최경창, 청련 이후백 등과 학덕과 도의로 사귀었기 때문에, 그가 사는 곳을 군자리 행의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역 유림과 후손들은 1820년 행정사를 창건하고 그를 주벽으로 추모했다.

김양의 아들대(23세)에서 습독공파(김응호), 해남공파(김응인), 직장공파(김응표), 판관공파(김응린)로 분파한다. 김양의 큰아들 김응호는 화원으로 천문습독관을 역임하고 1628년 광해군 복위모의사건에 연루돼 화를 입었다.(인조실록)

김응인(1532~?, 호는 양진당)은 문과급제해 해남현감, 문의군수, 무안현감, 능주목사 등을 거쳐 홍문관교리, 응교, 예조좌랑을 역임했다. 김응린(1559~?)은 무과급제해 내금위를 역임했다. 김응호의 아들 김경선은 호조참판을 역임하고 당쟁에 휘말려 유배를 당했다. 그의 손자인 26세 김여석(1700~?, 호는 호연정)은 무과급제해 수원수문장, 녹도만호, 사도첨사, 진해현감 등을 역임했다.

◇충의행적 기리는 선비체험 요람
김응인의 손자인 25세 김호광(1600~1624, 호는 절효)은 무과 급제해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금남 정충신과 함께 저탄전투에서 공을 세우고 그곳에서 꽃다운 나이에 순절해 진무원종일들공신에 녹훈됐다.

그의 동생 김신광(1608~1666, 호는 행정)은 무과급제하고 박천군수, 영천부사, 충주목사를 역임하고, 이괄의 난에는 친형 김호광과 함께 저탄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병자호란에는 임금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했고, 심기원의 역모를 방지해 영국원종일등공신에 올랐다. 그는 낙향해 망북정을 짓고 시문과 강론으로 여생을 보냈다. 형제의 충절과 의행은 군자서원에서 추모한다.

서원은 1820년 행정사(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로 창건해 1880년 훼철됐으나, 1962년 재건했으며, 2009년 강진향교 유림의 발의로 성균관유도회, 전남향교재단, 호남4장관, 성균관의 답통에 의해 서원으로 승격됐다. 군자서원 소장 고문서(강진 향토문화유산 제56호)는 202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347호로 지정됐다.

2012년 유물전시회 개최(장소:국립광주박물관)를 계기로 서원지를 발간하고, 서원스테이, 상읍례, 강회, 음악회 등 전통문화 확산을 위해 활동했다. 부설 호남선비문화원은 성심재를 갖추고 지역민·학생을 대상으로 선비정신을 계승하는 아카데미 등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습독공 소문중 후손이며 성균관청년유도회 중앙회장을 역임한 김득환씨는 강진 춘전리 보전마을에 사은정을 지어 주말시묘살이를 하며 부모를 기리고 인의예지 정신이 깃든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중요무형문화제 제 85호 석전대제 의례과정을 이수하고 훈장특급자격을 취득한 그는 충효관 건립에 관해 “불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 인성 회복을 바라는 뜻에서 충효관을 세우고 전통문화콘텐츠를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군자서원 강당 의춘당
행정사 사당
행정사 현판
보호수 향나무, 행정사 삼오문 옆
주벽인 유항재 김양 신위
군자서원 현판
사은정 전경
사은정 전경
사은정 현판
사은정 현판
건립중인 충효관
서원 서재인 망신재, 호남선비문화원 사무실
망신재 현판
성심재
성심재 현판
주자백록동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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