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전라도 황토·미네랄 품은 해안
산란기 숭어떼 몰려드는 포구
명촌 구림에서 천년 가통이어
대동계 미풍양속 계승에 앞장

궁중 진미 “어란”… 천년 맛의 명가

상대포역사공원 전경

전라남도 영암 월출산 서쪽에는 신라시대부터 명촌으로 알려진 구림촌이 있다. 신라 말 도선국사 설화가 전해져 마을 이름이 구림(鳩林)이다. 이 마을에서 유약 바른 도자기 가마터가 발굴됐고(영암 구림리 요지, 사적 제338호), 중국 당나라를 오가는 사신선과 상선이 발착했던 국제항포구 ‘상대포’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택리지에 따르면 서해와 남해가 맞닿는 상대포에서 중국 태주 정해현까지 일주일 걸렸다고 한다. 황토 민물인 영산강 육수와 풍부한 미네랄의 서남해 해수가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해마다 5월이면 산란기 숭어떼가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 전통 명촌에서 세거하며 숭어알로 빚어 임금님 밥상에 진상한 ‘전통 어란 제조법’을 비롯해 선조가 남긴 전통유산을 가꾸고 지켜 온 영암 낭주최씨(朗州崔氏) 봉직공파 낭성공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 본다.

◇고려 상주국 최지몽 후손

낭주최씨는 신라 효공왕 때 원보를 지낸 최흔을 시조로 모신다. 그가 영암의 호족이었으므로 후손들은 낭주(영암의 옛이름)를 본관으로 세대를 잇고 있다. 그의 아들 최지몽(907~987,초명은 총진)은 구림촌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경서와 사서, 천문과 복서에 능통했다. 태조 왕건에게 삼한 통일을 해몽해 주고 ‘지몽’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핵심 참모가 된 후 60년 간 중신으로 봉직했다. 벼슬은 공봉, 사천관, 좌집정 등을 역임하고 상주국에 올랐고 홍문숭화치리공신으로 시호는 민휴이며 경종 묘정에 배향됐고, 국암사에서 추모한다.

낭주최씨가 통일신라시대부터 세거한 구림촌에는 국사바우(국사암)가 있다. 설화에 따르면 신라 827년경 낭주최씨 집안 처녀가 시냇가에 떠내려 오는 오이를 먹고 배가 불러와 가을에 아이를 낳았는데 괴이하게 여겨 아이를 바위아래 버렸으나 며칠 후 아이 울음소리가 들려 바위에 가 보니 비둘기에 둘러쌓인 아이가 건강하게 살아 있었고 범상치 않은 일로 여겨 아이를 키웠다고 한다. 그 아이가 풍수의 대가 선각국사 도선(827~898)이고 그 바위를 국사바우라고 불렀다.

◇불사이군 충절지킨 최안우 낙향

낭주최씨는 고려조 전객령을 지낸 최희소를 중시조로 계대를 잇고 있다. 4세 최안우(호는 죽계)는 문과 급제해 봉열대부 검교군기시소감을 역임하고 재상에 올랐으며 성리학에 밝아 이색, 정몽주 등과 교유했다.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 충절지켜 나주 봉황 도성산에 은거했다. 5세 최운(호는 덕암)은 조선조에 현감을 지냈고, 6세인 최양 대에서 분파했다. 지현을 지낸 최양의 후손이 봉직공파, 현령을 지낸 최창의 후손이 현령공파, 계공랑을 지낸 최상의 후손이 녹사공파, 찰방을 지낸 최영의 후손이 찰방공파, 최간의 후손이 함안파로 각각 나뉘어 진다.

11세 최노겸은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했고, 그의 아들인 12세 최정한은 훈련원판관을 역임했다. 13세 최진하(호는 묵암)는 성리학자로 국암사에 배향됐다. 국암서원과 국암사에서는 민휴공 최지몽을 주벽으로 하고, 죽계 최안우, 덕암 최운, 묵암 최진하, 양오당 최몽암을 배향해 추모하고 있다. 17세 최몽암(1718~?, 호는 양오당)은 최진하의 고손자로 문과 급제해 도정, 한성부우윤, 지중추부사를 거쳐 기로소 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을 역임했다. 16세 최화재(호는 낭성)는 낭성공 종가를 열어 10대를 있고 있다. 23세 최규보는 독립운동가로서 향약 집회소였던 회사정에서 1919년 기미독립만세운동을 벌여 옥고를 치렀다.

◇세계로 알려진 천하 일미 ‘어란’

낭주최씨가 세거하는 구림마을은 향약 집회소 ‘회사정’으로 유명하다. 조선조 구림대동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98호)는 임진왜란 등 전쟁으로 황폐화된 향촌사회에 미풍양속을 회복하려 마을공동체 자치규약과 교육실천을 간직한 전통문화유산이다. 구림촌은 고대 신라 국제무역항 상대포가 있던 바닷길의 요충지였다. 낭성공 종가에서는 조선조부터 궁중에 진상했던 최고의 진미음식 ‘어란’의 제조법이 전승되고 있다. 옛부터 500g 한 편(쌍)에 쌀 한 섬이라는 정찰가가 정해져 있을 정도로 귀한 어란은 와인의 본산지인 지중해의 보타르가와 비교되는 진미 음식으로 인정받고 있다. 2016년 이스라엘 기업으로부터 기술전수 요청을 받았지만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전통제조법은 영암 천혜자연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서해·남해와 영산강이 접점을 이루는 이 포구는 4월 말이면 1개월간 1m 크기의 숭어떼가 몰려드는 곳이다. 황토진흙과 갯벌에 함유된 풍부한 영양으로 인해 숭어의 산란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손수 낚아 올린 숭어 중 1m 정도 커서 큰 알을 품은 암숭어만을 골라 알주머니를 채취한다. 가전 비법으로 빚은 가양주와 300년 씨 간장을 사용하고 직접 기른 콩으로 짠 기름을 매일 바르며 해풍이 부는 그늘에서 6개월 동안 귀하게 빚어내 격조 높은 제품이 완성된다. 종가 후손 최태근씨는 조부모로부터 제조법을 전수받아 어란 명장으로 인정됐다. 그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숭어 산란 최적지인 이곳 천연자연에서 생산하고 조상의 지혜가 담긴 어란이기 때문에 천금을 준다해도 타국에 넘길 수 없었다.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도록 선조의 유산을 잘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국사암
국암서원
국암사
낭성공파종가
화강암으로 축조한 종가창고
최태근어란명장
호은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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