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 전주이씨(全州李氏) 효령대군파 이필복 종가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태조 이성계 중시조·효령대군 파조
충효 풍속 권장 유적들 국가 안정 기여
즐비한 국보·보물 문화재 대대로 지켜
검증된 옹기효능 세계무대 진출 쾌거

[119] 항아리 유럽수출…천하제일 옹기장 가문

옹기를 생산·전시·교육하는 종택 전경

전남 보성 미력면 보성강변 도개리에는 9대째 이나라 강토의 고품질 흙으로 최고의 옹기를 빚어내고 있는 가마터가 있다. 형제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낮은 곳에서 덕업을 쌓았던 대군의 후예답게 만백성의 생활필수품 옹기를 만들며 더 질 좋은 흙과 소나무 풍부한 명소를 찾아 영암, 강진, 장흥을 거쳐 보성 미력에 터잡은 옹기장인의 가마터다. 전통방식을 고집해 생산한 옹기가 400점씩 3회 연속 수출선적해 유럽의 프랑스로 수송됐다고 한다. 첨단과학을 넘어서는 기능과 격조높은 조형미를 갖춘 항아리를 유럽 유명 레스토랑의 쉐프들이 애호하기 때문이다.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119회차는 보성 전주이씨(全州李氏) 효령대군파 이필복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위민정신 실천한 효령대군 후손
전주이씨는 신라말 사공을 지낸 이한을 시조로,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를 중시조로 모신다. 전주이씨 22세인 태조 이성계의 손자 이보(1396~1486, 효령대군, 시호는 정효)는 태종의 둘째 왕자이고 세종대왕의 형이다. 그는 명필·명궁은 물론 학덕과 효행이 높고 깊어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도왔던 존경받는 왕실종친이다. 그는 동생 충녕대군(세종)이 성덕이 있음을 알고 재덕과 학문을 숨기고 가부좌를 틀어 왕위를 사양했다. 숭유억불정책 하에서도 불교 보호에 앞장서 원각사 창건 조성도감 도제조로서 조형미와 조각기술 탁월한 걸작예술품 ‘원각사지 10층석탑’(국보 제2호)과 아름다운 종소리를 간직한 보신각종‘원각사 대종’(보물 제2호)을 만들게 했다. 한국불교 사상확립에 영향을 준 저술로 능엄경, 묘법연화경, 원각경·반야심경, 금강경, 선종영가집 등 언해집들을 남겨 각각 보물 제760호·761호, 제766호, 제771호, 제772호·773호, 제774호로 지정됐다. 그는 효(孝)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고 풍속으로 권장하기 위해 부모은중장수태골경합부(보물 제1247호)를 사경하고, 각지역 백성들의 자치규범으로 ‘향헌56조’를 제정해 강론함으로써 왕조 초기 국가안정기반 마련에 기여했다. 진취적 기상으로 위민정신을 실천하고 왕실의 정신적 지주가 됐던 그가 효령대군파를 열었다.

◇강진 병영 옹기장 가통 이어
25세 이채(1411~1491, 의성군, 시호는 호민)는 학문을 좋아하고 충효와 우애, 공경과 청렴의 도리를 깨닫고 실천해 세종으로부터 이름(채)과 서책을 하사받은 왕실 종친이다. 경서대의에 통달한 학덕으로 태조 어용봉안사, 세종 승하 시 대전관을 역임하고 정1품 현록대부에 올랐다. 그의 여섯째 아들인 26세 이이(1454~1526, 영신군)는 종실과 나라에 공을 세워 정의대부 영신군에 군봉됐으며 인천 부평에 낙향했다. 이이의 둘째아들 이옹(1499~1557, 함원군)은 경학에 밝아 임금에게 ‘치평지도’를 건의했고 청백한 생애를 마감하자 명종은 제문을 내려 애도했다. 이이, 이옹 부자의 묘역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3호로 지정됐다. 이옹의 증손자인 30세 이필복(1630~?)은 영암 금정에 터잡아 종가를 열었다. 이필복의 증손자인 33세 이우근(1690~?)은 강진 병영의 옹기장으로 활약하며 옹기장 제조의 장인정신을 가통으로 확립해 대대로 9대째 옹기장을 잇고 있다. 이현길(1714~?), 이득완(1749~?), 이우룡(1766~?), 이효범(1800~?), 이회춘(1823~?), 이평우(1855~?), 이상의(1882~1949), 이옥동(1913~1994) 등 종가의 후손들은 질 좋은 옹기를 만드는 최적입지를 찾아 강진, 장흥, 영암, 보성으로 가마터를 옮기며 옹기제조법을 유지 발전시켰다.

◇과학 입증 ‘숨쉬는 그릇’ 격조 높여
39세 이평우가 질 좋은 흙과 소나무 숲, 전통 유약 생산여건을 갖춘 통가마터를 찾아 보성 미력면 도개리에 정착했다. 41세 이옥동은 혼을 담은 전통옹기제조법을 인정받아 1990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96호 옹기장으로 지정돼 동생 이내원과 함께 제1대 옹기장을 역임했다. 이학수 종손은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옹기장 전수자(전남무형문화재 제37호)로서 전통채색화가인 이화영 종부와 함께 옹기체험교실과 민화학교를 열고 전통옹기제조법을 개선해 프랑스로 수출하는 명품으로 거듭나게 했다. 옹기장은 산화철을 품은 양질의 흙을 재료로 써서 두드려 빚고, 광명단을 쓰지 않으면서도 침엽수 낙엽 유기물로 재래식 유약(약토잿물)을 직접 만들어 바르며, 은근한 화력을 오래 지속하는 소나무를 연료로 통가마에서 1천2백도 고열에 구워 만드는 전통기법을 고집한다. 현대 과학에 따르면, 가문의 옹기제조법은 루사이트 미세기공에 의한 방수와 '통기성', 잿물 유약의 '정화기능', 납 등의 금속 유해성분을 제거한 '방부기능' 등 우수한 효능이 검증돼 발효식품 용기로 최적이라고 평가된다. 최근 이 항아리를 발효식품 열풍이 불고 있는 유럽에 수출했는데 주문이 이어지며 유명 쉐프들에게 각광 받고 있다. 화가인 종부는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미술가전람회 ‘르살롱전’에서 특별상을 받으며 한국전통 민화의 예술성을 입증했다. 종가는 전통색채 등 미적 요소를 더해 품격 높은 고품질 옹기 생산을 위해 장인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전승된 전통가마(좌측)와 종손이 신설한 흑벽돌가마
무형문화재 옹기장 이학수 종손(옹기제조 가마와 최상품 원료인 흙더미가 배후에 있음)
미력옹기 작품들(화재 시 사용할 물을 담는 ‘소래기’ 안에 다기세트를 전시함)
옛사랑채에서 건조 중인 옹기(종가 사랑채를 개조해 건조와 체험교육장으로 사용함)
종부인 이화영 전통채색화가의 작품 ‘연학도’(프랑스미술가전람회 ‘르살롱’ 2022년 특별상 수상작)
이화영 종부가 제작한 일월오봉도 병풍(조선조엔 임금 배후에만 설치했던 병풍임)
파리로 수출한 항아리(Hangari) 제품과 포장박스
효령대군영정(경기도유형문화제 제81호, 국가문화유산포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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