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한옥 찾아서 유럽 손님 열화정으로
파리와 전남, 사람으로 잇는 문화소통
광주이씨 양진재 가문 역사전통 깊어
온전히 보존한 하우스에 유럽손님 접빈

열화정 전경

1만km 머나먼 여행으로 전남의 농촌마을을 찾아오는 유럽인들이 있다. 1999년 4월 한국을 방문한 엘리자베스2세 영국여왕은 전남 담양의 ‘소쇄원’에서 자고싶어 했으나 의전 일행의 숙식 방안이 없어 경북 안동 하회마을로 방향선회 했다고 한다. ‘강골마을 이진래고택’으로 알려진 전남 보성 득량의 광주이씨 양진재공파 이이덕종가에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인들이 수개월 전부터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먼길을 찾아오고 있다. 유럽인들이 많고 많은 세계적 여행지를 두고 한국의 시골 한옥에서 하룻밤 자려고 찾아드는 이유가 궁금하다.
‘파리에 간 광주·전남 종가스토리’ 기획연재는 종가가 보존해 세계무대에 선보인 한국전통문화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유럽인들과 유럽 상황을 살펴 한국인 스스로 세계적 보편성을 갖는 요소들을 인식하고 한류 세계화 시대 준비에 도움이 되고자 했다. 반환점을 맞은 시점에 ‘파리에 간’ 어느 한국 청년으로 인해 파리와 프랑스가 한국적 매력에 물들고 있고 파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축구클럽이 한국방문경기를 추진하게 됐다. 파리에 간 광주전남 종가스토리 5회에서는 보성 강골마을의 이진래고택을 찾아 이곳을 방문하는 유럽인들의 숙박 상황을 통해 한옥의 매력이 발산되는 현장을 살펴본다.

◇이제는 파리에서 찾아오는 고택
최근 파리의 화제인물은 외가인 전남 강진에서 자란 슛돌이 이강인이다. 22세인 그가 파리를 연고지로 하는 축구클럽 생제르맹(PSG)에 입단하자 파리 현지에는 그의 유니폼이 매진되고 한국축구에 대한 유럽에의 관심이 고조돼 ‘k-풋볼’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급속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단숨에 생제르맹 중심선수가 된 이강인으로 인해 오는 8월 3일 생제르맹이 전북현대와 방한 경기를 열게 되고, 이에 따라 한국과 파리의 심리적 거리는 한결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6백만여명이 방한 했으며 그중 프랑스인, 영국인, 독일인은 각각 10만여명으로 집계됐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외래방한관광객의 재방문률은 64.7%, 만족도 92.7%, 타인추천의향 93%로 높게 나타났다. 대륙 끝단을 오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 수년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인의 방문과 숙박이 끊이지 않았고 4개월 예약이 가득했던 곳이 이진래고택과 열화정이다.
이진래고택은 광주이씨 양진재공파 이이덕종가의 종택으로 조선 후기 지방 사대부가 거주하는 주택 건축양식의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중요민속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된 가옥이다. 고택 좌우엔 이정래고택(국가중요민속문화재 제157호)과 이식래가옥(동 제160호)이 있다. 세 가옥 경계가 곡간채 등으로 구분돼 담장이 없는 이유는 당초 하나의 가옥이었기 때문이다. 이진래, 이정래, 이식래 3형제가 분가하면서 가옥이 분리됐다고 한다.

고택 안채 전경

◇학덕 가통이어 기록·종택·정자 보존
광주이씨 시조 이자성의 후손 이세정(1461~1522)이 전라도관찰사에 재직하며 보성 조성원을 순시할 때 임성부수였던 전주이씨 이언정의 집에서 머물면서 맺은 혼약이 인연이 돼 광주이씨의 보성 세거가 이어졌다. 이세정의 다섯째 아들 이수관(1500~1572, 호는 양진재)은 이언정의 외동딸 전주이씨와 혼인해 양진재공파를 열었다. 이수관은 사마시에 입격하고 곡성임실, 구례, 장성현감을 역임하며 하서 김인후와 도의로 교유했고 퇴계 이황과 더불어 경과 예를 논하며 석학들과 더불어 성리학을 강론하는 등 학덕을 쌓았다. 노년에 낙향해 학문하며 후진양성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의 아들 이유번은 강골마을로 입촌했고 손자 이응남은 정유재란 보성 송곡전투에서 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에 올랐다. 이수관의 고손자 이이덕은 선조의 학덕과 절의 정신을 계승해 원암종가를 열었다. 종택은 종가 4세 이진만이 1835년 건립하고 8세 이진래가 개축했으며 사당·안채·사랑채·대문채·중문채·곳간채와 솟을대문·연못·정원 등이 잘 보전돼 있다. 끊임없이 관리하며 보존한 고택의 공간 일부를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여 여행객을 접빈하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이 마을에 가면 선비다운 성리학적 삶의 면면들을 느낄 수 있다.

이진래고택 연못

◇강골마을 고택·열화정 방문해 보니
강골마을회관에서 고택 주차장까지는 매우 좁은 길이었다. 초가지붕으로 운치가 있는 이식래가옥을 지나면 아름드리 고목과 연못 옆으로 작은 주차공간이 있는데 바퀴 안전 지지대를 적당한 두깨의 통나무를 사용했다. 중앙에 베롱나무를 심은 하늘 상징의 원형 섬과 정방형 연못이 한국정원 원형을 떠오르게 한다. 통발 다섯개가 줄에 매달려 연못속 물고기를 전통방식으로 잡아 밥상 반찬으로 일용하는걸 짐작하게 했다. 솟을대문은 문간채와 담장으로 이어져 멋스럽다. 대문에 들어서니 너른 마당 건너에 중문채와 담장 앞 모란꽃이 고요함을 더한다. 평상에는 프랑스 손님 두 사람이 인근 한식당으로 식사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주일 일정으로 3박을 머물 예정이었다. 문간채 숙소는 깔끔했고 수납장, 거울, 도자기, 찻상과 다기 등이 고풍스러웠다. 달력마저도 한글 무늬였지만 에어컨, 냉장고, 대형TV, 시계 등은 현대식으로 아담했다. 화장실, 목욕실은 넓고 용품들은 최고급이었으며 깨끗했지만 문화재인 관계로 창고를 개조해 투숙객별 지정 욕실을 사용하게 해 불편함을 최소화했다. 오솔길 따라 열화정 계단을 오르면 둘러친 숲과 동백 등 정원수가 어우러지고 연못에 반사된 누마루가 영화속 주인공이 된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연기 그을은 아궁이가 2천년 온돌문화를 상징하고 마루에 올라 바다쪽을 보니 곡창으로 유명한 예당들판 하늘이 가슴을 탁 터준다.
숙소는 개조된 온돌방의 따스함과 쾌적함이 도톰한 이부자리에 적격이고 창호와 방문들은 뽁뽁이와 방충문으로 차단돼 아늑하고 평화로운 꿀잠을 청할 수 있다. 새벽녘 동창이 밝으면 참새, 뻐꾹이 등 갖가지 새들이 우지짓는 소리에 상큼한 아침을 연다. 고급 보성녹차로 차 한잔 하면서 마당을 바라보면 황금색 새들이 짝지어 마당으로 담장으로 노닐고 전통이 묻어나는 담장 한가운데 만들어진 소통창이 담장밖 우물을 사용하는 마을공동체의 미풍양속을 짐작하게 한다. 직접 한국에 가서 정원이 있는 전통한옥의 멋을 자신이 체험하며 느끼고자 하는 유럽인들은 고택에서 머물고 난 후 환상적이라고 말한다.

방에서 보이는 마당풍경

◇한옥에서 자려는 유럽인들의 생각
고택을 다녀간 유럽인들은 프랑스인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독일, 영국, 벨기에 등과 북유럽에서 찾아와 각국 사람들의 생활 습성의 강점과 약점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친절한 주인장으로 소문난 종가 종부는 “외국인 여행객들마다 태도와 생활 습관이 다른 것을 보고 외국 나가면 자신이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홍보대사라는 생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접근성 취약과 문화재보존 의무 등 손님 맞이 난관을 친절 접빈과 전통문화 품격 유지로 넘어서고 있었다.
아고다나 부킹닷컴에 표현한 후기를 보면 유럽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60여 후기 중 40여개가 외국인의 후기였다. ”Amazing Traditional Home(놀라운 전통적인 집)”, “환상적인 호스트와 함께 사랑스러운 한옥에서 평화롭고 아름답고 멋진 숙박”, “현대적인 편안함과 훌륭한 호스트가 있는 전통 가옥”, “나는 확실히 다시 거기에 머물 것입니다”, “Fantastic Experience in a Traditional House(전통 가옥에서의 환상적인 경험)” 등 나라는 달라도 한옥 숙박에 대한 느낌은 한결 같았다.
이진래고택은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으며, 주변환경과 조화가 아름답고, 종가의 정신적 배경과 문화적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광주·전남의 종가들은 그간의 대를 이어 보존한 노고가 세계인의 가치인정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 믿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진래고택 문간채
이진래고택 문간채 방안
공동체정신 실천한 마을우물과 소통창
연못에 설치한 재래식 고기잡이 통발어망
열화정
창고를 개조한 욕실3칸
이진래고 중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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